기업대출이라 쓰고 부동산이라 읽는다 [기자수첩-금융]

정지수 기자 (jsindex@dailian.co.kr)

입력 2026.04.15 07:03  수정 2026.04.15 07:03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속

정의 없는 '생산적 금융'

지난해 국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771조원을 넘어섰다.ⓒ클립아트코리아

최근 금융권에서 자주 언급되는 화두는 단연 '생산적 금융'이다.


자금을 가계 부채에 쌓아두지 않고, 산업 현장과 혁신 기업으로 흘려보내 경제의 혈맥 역할을 하겠다는 정부의 다짐이다.


그러나 최근의 통계는 이러한 생산적 금융이 보여주기 식에 머무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해 국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771조원을 넘어섰다. 전체 대출 중 주담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31.1%로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 심각한 건 기업 대출 자금의 향방이다.


지난해 기업 대출 잔액 중 21.6%인 310조원 가량이 부동산 및 임대업으로 쏠렸다.


우리 경제의 핵심인 제조업이 30%대를 차지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턱밑까지 쫓아온 수치다.


은행권이 가계대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기업 대출을 교묘하게 풀어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 대출은 크게 설비 투자를 위한 '시설자금'과 운영에 필요한 '운전자금'으로 나뉜다.


임대 사업자에게 건물 매입비는 수익 창출을 위한 명확한 시설자금이다.


문제는 증빙이 비교적 투명한 시설자금과 달리, 운영 과정에 쓰인다는 운전자금의 불투명성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시절에는 자영업자들의 생계가 어려워 보증서 대출이 생활비로 쓰여도 시기적 특수성을 고려해 눈 감아주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임대업자는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임대 사업자들이 법인을 세워 운전자금을 빌린 뒤, 이를 주택 매수 등 우회적으로 활용한 것이 부동산 가격 상승의 한 요인이 됐다"며 "이들은 예외를 적용받아야 할 생계형 취약계층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은행이 운영 지원 명목으로 내준 돈이 생산적인 곳이 아닌 부동산 투기의 실탄으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은행권은 여전히 생산적 금융의 성과를 홍보하기에 바쁘다.


근본적인 문제는 생산적 금융에 대한 명확한 공인된 정의조차 없다는 점이다.


정의가 모호하니 각 이해관계자들은 가장 편한 길을 택한다.


리스크가 큰 혁신 기업의 기술력을 평가하기보다, 확실한 담보가 있는 부동산 임대업 대출로 기업 대출 실적을 늘릴 수 있다.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 면허 사업자다.


위기 때마다 경제의 모세혈관에 피를 돌게 하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부동산에 크게 의지하는 태도는 금융 본연의 '리스크 테이킹' 능력을 상실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당국의 눈치를 보며 숫자로만 치장된 생산적 금융은 결국 거품에 불과하다.


진정한 금융의 힘은 담보의 가치가 아니라, 그 돈을 받아 세상을 바꾸는 기업의 가능성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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