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 경쟁 넘어 '불확실성 관리'와 책임 묻는 단계로
휴머노이드 상용화를 가르는 것은 '안전의 정의'
6일 서울 웨스틴조선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제1회 휴머노이드 테크콘'에서 로봇 안전 소프트웨어 기업 세이프틱스가 자사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다. ⓒ임채현 기자
"완벽하게 안전한 휴머노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6일 서울 웨스틴조선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제1회 휴머노이드 테크콘'의 분위기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됐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산업 현장 투입을 둘러싼 논의는 더 이상 성능 경쟁에 머물지 않았다. 업계와 규제, 표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은 하나였다.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로봇을, 우리는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날 기조연설에 나선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페데리코 비첸티니 프로덕트 세이프티 총괄은 "휴머노이드의 모든 오작동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상용화의 핵심은 불확실성을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관리하고, 이를 사용자와 투명하게 공유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제로 리스크'보다 '경계된 불확실성'이 현실적인 안전 기준이라는 메시지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휴머노이드 안전·신뢰성 표준 수립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 표준은 로봇의 오작동 가능성과 책임 범위를 계약과 기준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첸티니 총괄은 "현실 세계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며 "로봇을 조기에 현장에 배치해 실제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안전성 검증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행사 전반을 관통한 또 다른 메시지는 안전이 단일 기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엔비디아 측은 휴머노이드 안전을 AI 모델이나 하드웨어 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시뮬레이션·검증·배포까지 이어지는 전 생애주기 컴퓨팅의 문제로 정의했다. 안전은 기능 안전뿐 아니라 가용성, 신뢰성, 회복탄력성, 사이버보안, 시간 응답성과 얽혀 있으며, 이 속성들이 상호작용하는 구조 안에서 설계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리카르도 마리아니 엔비디아 부사장은 이날 화상 기조연설을 통해 "휴머노이드는 체화된 몸만 의미하는게 아니라 추론도 필요하고 연산 능력 등 여러가지 요소를 필요로 하는데, 그중에서도 안전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안전이라는 것은 폭넓은 의미를 가질 수가 있다. 더 큰 생태계를 위해 필요할 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하고, 시스템이 다운되지 않고 계속 서비스될 수 있어야한다. 피지컬 AI에 있어 안전이란 범위가 굉장히 넓다"고 강조했다.
국제표준 논의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ISO 로봇 표준을 담당하는 A3의 캐롤 프랭클린 이사는 "휴머노이드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며 "표준에서는 '동적 안정(dynamically stable) 산업용 모바일 로봇'이라는 범주로 안전 요구사항을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리 기반 로봇은 전원 상실 시 쓰러질 수 있다는 새로운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기존의 정적 안정 로봇과는 다른 안전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표준은 2028년 전후 발행을 목표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6일 서울 웨스틴조선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제1회 휴머노이드 테크콘'에서 로봇 안전 소프트웨어 기업 세이프틱스가 자사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다. ⓒ임채현 기자
국내 현실을 짚는 발언에서는 제도 공백이 반복적으로 언급됐다. 협동로봇이나 산업용 로봇과 달리, 휴머노이드에 특화된 명확한 안전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범위 확대 이후, 휴머노이드 도입 시 사고 발생에 따른 경영 책임 리스크가 커졌다는 점도 부담으로 거론됐다. 로봇 오작동의 예견 가능성과 책임 주체를 둘러싼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행사장 한편에서 진행된 실제 시연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김휘연 세이프틱스 사업이사는 "협동로봇이나 휴머노이드는 사람이 근처에 있어도 멈추지 않고 동작해야 하는 로봇"이라며 "그만큼 안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람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환경에서 운용되는 로봇일수록,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현장 적용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휴머노이드의 전면 도입보다 제한된 환경에서의 실증과 데이터 축적이 현실적인 해법으로 제시됐다. 수술 보조, 물류, 제조 보조 작업 등 특정 공정에 국한해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고, 안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접근이다. 오택수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정책기획실장은 "휴머노이드는 더 이상 상상 속 기술이 아니라 가능한 기술 단계에 도달했다"면서도 "현장에 투입되기 위해서는 안전과 신뢰, 운영과 책임이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페데리코 비첸티니 프로덕트 세이프티 총괄, 리카르도 마리아니 엔비디아 부사장, 투모로로보틱스의 장병탁 대표, A3 캐롤 프랭클린 이사, 법무법인 화우 박지훈 전문위원,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류요엘 책임연구원 등이 주요 연사로 참여했다.
6일 서울 웨스틴조선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제1회 휴머노이드 테크콘'에서 류요엘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이 기조연설에 앞서 공개한 영상. 로브로스 휴머노이드 '이그리스-C'가 광운대에서 롯데글로벌로지스 오토배거 실증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임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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