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과 시장 결합한 ‘브릭스 플러스’ 10개국
디지털 달러와 브릭스 페이 격돌 속 실리 외교 필요
KIEP, “소다자 협력이 생존 열쇠”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G7과 브릭스 플러스(BRICS+) 간의 지경학적 분절화 현상을 형상화한 그래픽. 금융 패권을 상징하는 달러(왼쪽)와 에너지·자원 패권을 상징하는 원자재 블록(오른쪽) 사이에서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실리 외교의 항로를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미나이
2020년대 들어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세계 경제의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설계하고 주도해 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근본적인 해체 위기에 직면했다.
과거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작동하던 자유무역 체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공급망 경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등 복합 위기를 거치며 사실상 보호무역주의와 경제 블록화의 시대로 빠르게 전환되는 흐름이다.
이러한 거대한 지경학적 변화의 소용돌이 중심에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통칭되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의 결집이 자리하고 있다. 그 세력 확장의 선봉에 브릭스 플러스(BRICS+)가 서 있다.
지난 2009년 중국과 러시아, 인도, 브라질 4개국이 서구권 중심의 국제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며 공식 출범한 브릭스는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가입 이후 오랜 기간 5개국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24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이란, 에티오피아의 정식 가입을 승인한 데 이어 2025년 1월에는 동남아시아의 경제 강국 인도네시아까지 합류하며 10개국으로 몸집을 불렸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표면전으로는 가입을 공식 보류하면서도 브릭스 플러스의 주요 활동에 참여하며 사실상 영향권 내에 머물고 있다.
이 거대 경제 협력체는 2023년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8.1%를, 세계 인구의 48.7%인 39억명 이상을 점유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이미 G7의 경제 규모를 추월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브릭스 플러스의 확장은 단순히 회원국 수의 증가를 넘어 국제 금융과 에너지, 원자재 시장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브릭스 플러스를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지속돼 온 달러 중심의 금융 질서에 대항할 새로운 대안으로 구축하려 시도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서방의 금융 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창구로, 중국은 자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과 위안화 국제화를 확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이 협의체를 활용하고 있다.
반면 인도와 브라질, 남아공 등 기존 회원국들과 신규 가입한 UAE, 인도네시아 등은 서방과 중·러 사이에서 자국의 실리를 극대화하는 헤징(hedging) 전략을 구사하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브릭스 플러스의 확장은 한국과 같이 수출 의존도가 높고 자원 수입이 필수적인 국가에 심대한 정책적 도전 과제를 던지고 있다.
미국 중심의 ‘디지털 달러’와 브릭스 플러스(BRICS+)의 ‘브릭스 페이’가 국제 금융 패권을 두고 격돌하는 모습을 시각화한 일러스트. 리튬, 코발트 등 핵심 광물과 원유를 포함한 자원 공급망을 장악하려는 신흥 경제 블록의 공세와 이를 방어하려는 미국 달러 패권 간의 첨예한 대결을 상징한다. ⓒ제미나이
자원과 제조업 결합한 브릭스 플러스의 지배력 강화
브릭스 플러스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은 강력한 자원 보유량과 제조업 생산 능력의 결합에서 나온다. 특히 원자재 시장에서 브릭스 플러스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에너지 부문에서는 러시아와 UAE, 이란, 그리고 협력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할 경우 세계 원유 생산의 약 43%, 천연가스 생산의 약 32%를 차지하는 거대 블록이 형성된다. 이들은 OPEC+ 체제 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국제 에너지 가격 결정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핵심광물 공급망에서의 지배력이다. 2023~2024년 기준 브릭스 플러스는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2%, 망간의 75%를 점유하고 있다. 2차 전지의 필수 원료인 흑연(91.1%), 정제 리튬(70.2%), 정제 코발트(78.4%)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중국은 전 세계 핵심광물의 제련과 가공 분야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브릭스 플러스 내부의 결속이 강화될수록 비회원국들의 공급망 리스크는 증폭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중국의 지배력이 두드러진다. 브릭스 플러스 전체 제조업 수출의 84.5%가 중국으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인도(6.1%)와 UAE(2.4%)가 그 뒤를 잇고 있으나 격차는 매우 크다.
이 과정에서 회원국 간의 전략적 의존성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2013년 21.5% 수준이었던 브릭스 플러스 내 에너지 상호 교역 비중은 2023년 44.1%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특히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중 68.1%가 브릭스 플러스 회원국으로 향하고 있다. 인도의 에너지 수입 중 52.8%가 이 블록으로부터 유입된다.
이러한 내부 교역의 활성화는 G7 국가들과의 교역 비중 감소와 대조를 이룬다. 글로벌 경제가 정치적 블록에 따라 쪼개지는 지경학적 분절화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브릭스 플러스의 전략적 확장과 글로벌 경제 질서의 재편을 한눈에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전 세계적인 경제 블록화 현상 속에서 핵심 광물 공급망의 지배력 강화,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 시장의 변화, 그리고 신흥국들의 실리 중심 외교 전략(Hedging Strategy)을 데이터 시각화로 나타내고 있다. ⓒ제미나이
미 행정부의 보복 관세와 디지털 달러 방어 전략
브릭스 플러스의 세력 확장에 대응하는 미국의 반격은 입법과 통상 압박이라는 양면 작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는 브릭스 국가들이 미국 달러화 대신 위안화 등 다른 화폐로 무역 비중을 높일 경우, 해당 국가에 100%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실제로 미 정부는 인도에 대해 러시아산 원유 수입 등을 이유로 25%의 추가 관세를 명령해 예상 기본 관세가 50% 수준에 달하는 등 브릭스 내 탈달러화 움직임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도 미국은 달러 패권을 디지털 시대에 맞춰 재설계함으로써 대응 수위를 높이는 추세다. 2025년 7월18일 미국 의회는 연방 스테이블 코인법(GENIUS Act)을 제정해 미국 달러에 연동된 결제용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고 명확한 규제 표준을 수립했다.
이는 브릭스가 추진하는 브릭스 페이나 mBridge 등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기반 결제망에 대응해 전 세계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달러 기반의 규범을 선점하려는 전략적 조치다.
스테이블 코인법을 통해 디지털 달러의 신뢰도와 편의성을 높임으로써 신흥국 국민들이 자국 통화나 위안화 대신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선호하게 유도해 브릭스의 탈달러화 동력을 약화시키겠다는 계산이다.
이러한 미중 및 미러 간 첨예한 갈등 속에서 한국은 수출 중심 경제 구조와 에너지·자원 대외 의존도라는 취약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브릭스 플러스의 블록화는 한국 기업들에게는 자원 확보 비용의 상승과 신흥 시장 진출 장벽이라는 위협으로 다가오는 반면, 미국 관세 보복과 기술 규제는 글로벌 공급망 운용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특정 블록에 편중되지 않는 중립적이고 실용적인 경제 외교, 즉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교한 대응이 시급하다.
한국이 인도, UAE 등 '글로벌 사우스'의 주요 거점 국가들과 소다자 협력(Minilateralism)을 통해 새로운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모습을 시각화한 그래픽. 스마트 농업, 방산, 녹색 에너지 등 한국의 강점 기술을 매개로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실리 외교 전략을 상징한다. ⓒ제미나이
소다자 협력과 공급망 다변화 통한 전략적 자율성 확보
KIEP는 한국이 취해야 할 대응 방향으로 네 가지 핵심 전략을 제시했다. 우선 분야별 소다자 협력(minilateralism) 확대다. 미국, 이스라엘, 인도, UAE가 참여하는 I2U2 모델처럼, 특정 블록 전체와 대응하기보다 이해관계가 맞는 국가들과 소규모로 결성해 기술력과 자본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과 첨단기술 및 방산 공급망을 결합한 패키지형 협력 모델을 창출함으로써 브릭스 내 온건파 국가들과의 관계를 심화해야 한다.
기후변화, 식량 안보, 보건 등 글로벌 의제를 통한 연대 강화도 필요하다. 브라질, 남아공, 에티오피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빈곤 극복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이들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 농업 기술, 녹색 인프라 전수 등 소프트웨어 중심의 공적개발원조(ODA)를 확대함으로써 한국의 우호 세력을 넓혀야 한다.
원자재 공급망의 실질적 다변화와 안보 협력이 우선돼야 한다. 중동 산유국 및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자원 부국과의 양자 협의체를 상설화해 에너지와 핵심광물 도입선을 상시적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또 인적 교류와 민간 네트워크 고도화를 통해 브릭스 플러스 내 신규 회원국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소프트웨어적 협력 확대가 요구된다.
강문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브릭스 플러스가 당장 기존 국제 금융 및 통상 질서를 전복할 만한 통일된 블록으로 성장하기에는 회원국 간의 극심한 이질성이라는 내부적 한계가 명확하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원자재와 신흥 시장을 매개로 한 그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제도화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브릭스 내 결속력이 강화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 연구위원은 이어 “우리나라는 브릭스 플러스라는 거대 블록과 정면 대결하거나 특정 진영에 매몰되기보다는, 개별 국가와의 소다자 및 양자 협력을 통해 한국만의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영리한 외교를 펼쳐야 한다”며 “이를 통해 한국의 경제 영토를 글로벌 사우스 전역으로 확장하고 다변화된 공급망 체계를 구축하는 전략적 자율성을 견지하는 것이 생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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