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경기변동에 울고 웃는
천수답형 산업 패러다임 깨고
마스가. 핵잠, 함정수출, 북극해 등
新국제해양질서 개척 주역으로….
ⓒ 데일리안 DB
20세기 초 미국 대도시의 길거리를 차지한 교통수단은 말과 마차였다. 자동차는 극소수 부자들의 사치품이었다. 그 시대에 누구나 탈 수 있는 대중차를 만들겠다고 나선 인물은 헨리 포드였다. 훗날 ‘자동차 왕’으로 불린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하려 했다면 나는 더 빠르고 값싼 마차를 만들었을 것이다.”
한 세기가 흐른 2007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으며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까칠한 성격으로 소문난 그는 상투적 시장조사 관행에도 특유의 냉소를 날렸다. “고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직접 제품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혁신가들이 바꿔놓는 건 단지 제품이 아니다. 진짜 바뀌는 건 바로 ‘관점’이다. 대중의 인식과 시각은 고정된 틀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오늘날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경이로운 기술혁신이 일상화된 환경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익숙함’에 머물고 싶어 한다.
그런 인간 본성을 간파한 경제학자는 조지프 슘페터였다. 그는 경제발전을 ‘창조적 파괴’의 연속으로 보았다. 혁신은 단순한 효율의 향상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불편하게 해체하는 과정”이었다. 아마 그의 이론도 수요-공급과 시장균형 그래프에 안주하던 주류 경제학자들을 꽤 불편하게 만들었을 듯싶다.
슘페터는 혁신의 동력을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 불렀다. 물론 이는 기업인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정치인, 관료, 과학자, 예술가, 스포츠맨, 누구든 상관없다. 모든 도약은 안정된 균형이 아니라 불균형적 충격에서 나오고 그 충격의 주체가 혁신적 기업가정신이다.
그 슘페터의 시선으로 새해의 한국 해양산업을 한번 살펴보자. K-조선은 지난 한 해 동안 수많은 굿 뉴스에 환호했다. 친환경선박 중심의 슈퍼사이클 도래, 한미 조선협력(MASGA)과 핵추진 잠수함 본격화, 함정수출의 지평 확대, 북극항로가 예고하는 신(新) 대항해시대의 서막 등등.
이 변화의 물결은 올해 들어 더 구체화할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K-조선의 미래에 장밋빛 전망과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기저에 산업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조선업 호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혹은 ‘한국은 몇 년 치 일감을 확보했나?’ 같은 평면적 질문에 머물러있다면 너무 미흡하다.
지금 한국은 분명히 세계적 선박 건조역량을 갖추고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게 미래를 보장할 리 만무하다. 비 오면 풍년을 누리고 가물면 흉년을 견디는 천수답형 수주산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K-조선의 쇠퇴는 단지 시간문제다. 슘페터가 경고하던 진짜 위협도 불황이 아니라 안주였다.
오늘날 세계 경제질서는 슘페터가 활동했던 1940년대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복잡하지만, 그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통찰이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마술이 아니라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그림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지혜다.
만약 슘페터에게 K-조선의 미래를 묻는다면 뭐라 답할까. 한국은 ‘배 잘 만드는 나라’에 만족할 것인지, ‘국제 해양 질서를 개척하는 나라’로 도약하길 원하는지부터 반문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무엇을 파괴하고 무엇을 새로 창조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시오.”
세계 해양산업의 패러다임은 이미 거대한 전환기에 들어서 있다. 선박과 함정은 그저 덩치 큰 운송 수단이나 무기체계가 아니다. 첨단센서, AI, 에너지 시스템, 통신 기술이 총집결하는 해상플랫폼이다. 조선소는 철판을 자르고 용접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차원 시스템을 설계·통합하는 엔지니어링 허브로 진화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조선업 자체가 전통제조업을 넘어 국가전략산업으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온갖 현안에 눈코 뜰 새 없는 와중에도 무너진 미국 조선산업을 되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해왔다. 그 궁극적 목적이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인지, 국제 해 양질서의 주도권 회복인지는 자명하다.
새해에 더 진전될 한미 조선 협력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MASGA와 핵추진 잠수함 구상은 물량 협력이나 단기 이벤트가 아니다. 미국이 한국에 기대하는 것은 선박 건조역량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해양 파트너다. 따라서 핵심 관건은 미국 배를 몇 척 수주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중장기 국가전략자산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이다.
함정 수출을 둘러싼 환경도 마찬가지다. 현재 진행 중인 캐나다 잠수함사업(CPSP)에서도 드러나듯이 가성비만으로 승부하던 재래식 경제 논리는 전략산업에서 잘 통하지 않는다. 국가 차원의 신뢰와 협력, 장기적 안보 파트너십 같은 무형자산들이 판을 바꾸는 혁신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런 난해한 방정식은 특정 기업 혼자서 풀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슘페터라면 기업과 정부, 군, 연구체계가 결합된 ‘전략주체’를 기업가정신으로 무장시켜야 한다고 조언했을 법하다. 한국 해양산업의 미래는 지금부터 그 쉽지 않은 도전을 얼마나 영리하게 해결하느냐에 달려있다.
2026년 새해, 신해양시대를 향한 새로운 도약과 혁신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K-조선이 붉은 말처럼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다 함께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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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동주 한화오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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