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행동계획안 저작권 논란…저작권법과 상충
AI, 저작물 ‘先사용 後보상’·옵트 아웃
문화·콘텐츠 창작자 “권리 침해” 지적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 RTO에서 열린 제5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에서 관람객들이 인공지능 관련 전시물인 기획향을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추진 중인 ‘대한민국 AI 행동계획(안)’(AI 액션플랜)을 둘러싼 AI 산업과 문화·콘텐츠 창작자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AI 학습을 위해 저작물을 사전 동의 없이 활용하고 보상하는 이른바 ‘선사용 후보상’ 방식과 옵트아웃 제도를 도입한다는 구상이지만, 창작자들은 저작권법의 근간인 허락권을 훼손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AI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한 정책이 기존의 저작권 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AI 시대 저작권의 경계가 시험대에 올랐다.
저작물 사용 ‘법적 불확실’…‘옵트 아웃, 선사용 후보상’ 대두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우주항공청·과학기술원·정보통신기술분야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5일 출범 100일을 맞아 AI 액션플랜을 발표했다. AI 액션플랜은 AI 혁신 생태계 조성을 핵심 목표로, ▲AI 혁신 생태계 조성 ▲범국가 AI 기반 대전환 ▲글로벌 AI 기본사회 기여 등 3대 정책 축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AI 혁신 생태계 조성’ 분야에는 ‘AI 학습에 필요한 원본 개인정보와 저작물 활용이 권리 침해나 이용자의 법적 불확실성 없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법제를 정비해 나간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AI 액션플랜 32번 과제인 ‘AI 학습·평가 목적의 저작물 활용 및 유통 생태계 활성화’다.
현행 저작권법에는 저작물의 공정 이용에 관한 면책 규정이 존재하지만,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모호해 AI 모델 학습에 사용되는 저작물이 공정 이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둘러싼 법적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AI 액션플랜을 통해 “저작권 데이터 활용에 한계가 지속될 경우 중소 AI 기업은 양질의 학습용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고, 콘텐츠 산업 역시 상생 기반이 부족해 산업 간 갈등과 불신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AI 데이터 유통 시장 형성을 목표로, 기존 창작물과 AI 생성물 간 권리 관계를 조정할 제도적 기준을 정립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해 AI 기업·개발자가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 없이도 저작물을 AI 학습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 마련이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아울러 법적 불확실성 해소 방안으로 선사용 후보상 제도와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거론했다.
옵트아웃은 창작자가 AI 학습 과정에서 자신의 저작물이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경우, 거부 의사를 표시해 학습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가장 큰 논란을 낳고 있는 것은 선사용 후보상 방식이다. 이는 저작권자의 사전 허락 없이 AI가 먼저 저작물을 학습에 활용하고, 이후 보상 여부와 방식을 논의하는 구조로, 기존 저작권 체계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창작자 “저작권법과 상충…옵트아웃, 창작자에 부담 전가”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창작자 단체와 문화예술계의 반발은 거세다. 이들은 정부가 제시한 방안이 저작권법의 근간인 ‘허락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현행 저작권 체계는 저작물 이용에 앞서 권리자의 명시적 동의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선사용 후보상 방식은 이 같은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일단 쓰고 나중에 보상한다’는 인식이 제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옵트아웃 제도 역시 문제 소지가 크다는 평가다. 창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이 AI 학습에 활용되지 않도록 일일이 거부 의사를 표시해야 하는 구조 자체가 과도한 기술적·경제적 부담을 창작자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비롯한 16개 창작자·권리자 단체는 지난 13일 공동 성명을 통해 “저작권법의 핵심은 창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보장함으로써 창작 동기를 제공하는 데 있다”며 “정부의 AI 육성 전략은 사기업의 영리 목적을 위해 공정이용의 범위를 과도하게 확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I 학습을 둘러싼 저작권 논란은 이미 현실화된 바 있다. 지난해 챗GPT를 활용해 이른바 ‘지브리 화풍’ 이미지를 생성하는 사례가 확산되자,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가 소속된 기구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에 관련 행위 중단을 요구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역시 자사 기사를 무단 활용했다며 AI 검색 서비스 ‘퍼플렉시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AI 학습에 따른 저작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획일적 규제에 나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병태 KAIST 명예교수는 “AI가 학습하는 행위를 저작권의 범위 안에 둘 것인지 여부 자체가 아직 국제적으로 결론 나지 않았다”며 “현재 각국과 시장이 해법을 모색하는 단계에서 정부가 이를 단일한 방식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AI 학습 이후 보상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한 결론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정부가 획일적으로 규제할 경우 AI는 충분히 학습하지 못해 발전이 제한되고, 창작자 역시 새로운 활용 가능성과 수익 구조를 함께 잃을 수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념과 기준이 정리된 이후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데, 정의조차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이 앞서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AI 학습 규범 갈린 세계…한국의 선택은 아직[AI시대와 저작권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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