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정책 호응부터 친정부 인사 영입까지
중국·웨어러블 로봇 등 사업 확장 고려한 행보인 듯
형지그룹 "정부 정책에 최대한 협조가 원칙"
패션그룹형지 최병오 회장(오른쪽)이 방중 경제사절단 일정 중 한∙중 비즈니스 포럼 자리에서 청위췬 CATL 회장(왼쪽)과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 한∙중 비즈니스 포럼 자리에서 패션그룹형지 최병오 회장(왼쪽)과 TCL과기그룹 리동성 회장(오른쪽)의 모습. ⓒ패션그룹형지
패션그룹형지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유독 정부와의 접점을 넓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패션업계 전반이 정치권과의 접촉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형지는 친정부 인사를 영입하는 등 접점을 늘려가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형지그룹은 작년 6월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이후 정부 기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시선을 끌었다.
형지는 지난해 7월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지급되던 당시, 적극적 환영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형지는 당시 언론 배포 자료를 통해 소비 쿠폰 효과로 대리점 매출 상승이 기대된다는 메시지를 냈다.
백화점이나 대형몰에 본사 직영점이 입점하는 타 기업과 달리 가두 대리점 중심으로 브랜드를 전개해 수혜를 얻을 것이란 기대를 표했다.
이에 당시 패션그룹형지는 소비쿠폰이 지급되는 시기에 맞춰 민생회복 소비쿠폰 이외에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시기에 맞춰 추첨을 통해 10년간 매달 100만원 상당의 의류를 제공하는 ‘패션연금제’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작년 8월에는 대표적 '이재명 테마주' 기업으로 불리는 코나아이와 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당시 양사는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를 위한 사업 협력을 추진해 시너지를 창출하기로 했다.
코나아이는 야권에서 그동안 이재명 대통령과의 각종 유착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던 기업이다. 코나아이는 지역화폐 플랫폼 개발 기업으로 2019년 이 대통령의 경기도지사 시절 지역화폐 사업자로 선정된 기업이다.
친정부 성향 인사 영입도 이어졌다. 형지는 지난해 7월 대통령실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함께 근무한 이력이 있는 이상협 전 네이버 대외협력실장을 형지글로벌 경영자문으로 영입했다.
작년 9월에는 대한민국 첫 여성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전 장관이 계열사 형지엘리트와 형지글로벌의 고문으로 합류했다. 강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시절에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 총괄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 대통령 취임 후에는 대통령 프랑스 특사단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장기 성장 전략을 담당하는 미래사업총괄에 이준길 사장을 영입하기도 했다. 이준길 사장은 1992년 행정고등고시(법무행정)에 합격해 제36기로 연수원을 졸업한 뒤 경제기획원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했으며, 14년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근무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이형일 기재부 차관 등과는 행시 36기 연수원 동기로 알려져 있다.
공직 이후에는 두산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약 10년간 임원으로 재직하며 신사업 확장과 글로벌 사업 재편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형지 관계자는 “이준길 사장의 M&A 역량과 공정거래 전문성은 형지가 추진하는 AI 기반의 웨어러블 로봇과 신기술 및 신재생 에너지 등 미래사업 전반의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것”이라며 “특히 형지엘리트의 신사업 확대에 강력한 시너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과 접점 늘리는 형지…왜?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형지의 최근 행보를 보다 장기적인 경영 전략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제기된다.
형지 그룹의 후계자로 꼽히는 최준호 총괄부회장은 취임 이후부터 줄곧 글로벌 진출을 모색했다. 2021년 형지글로벌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골프복 브랜드 '까스텔바작'의 미국 진출을 위해 현지 법인을 세우기도 했다.
2023년 LA웨스트 할리우드 멜로즈 지역에 1호 플래그십스토어를 열고, 미국 골프클럽 프로 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도 불태웠다. 최 부회장은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맞춰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 당시 10조원 규모의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을 겨냥해 미국 연방 조달청 계약관리시스템(SMA)에 등록하기도 했다.
군복, 전투화 등 각종 군용품 미군 군납을 추진하며 향후에는 유엔(UN) 조달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실질적 미국 사업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해당 법인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형지가 다시 주목한 지역이 중국이다. 중국은 계열사 형지엘리트가 이미 2016년부터 개척해 온 시장이다. 형지엘리트는 2016년 현지 기업 보노와 중국법인 상해엘리트를 세우고 중국 프리미엄 교복 시장을 공략해 왔다.
이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형지는 작년 중국 내 조달 시장 진출을 확정했다. 이를 위해 형지글로벌은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함께한 보노와 ‘한중 복장조달’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중국 교복 시장에 진출해 입지를 다지고 있는 형지엘리트와 함께 형지글로벌은 유니폼 등을 공략하며 중국 단체복 시장에서 형지그룹의 영향력을 넓혀 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신사업에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형지는 패션을 넘어 시니어 웨어러블 로봇,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사업 영역 확장을 시도 중이다. 특히 웨어러블 로봇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분야다.
실제로 형지는 이번 이재명 정부의 방중 일정에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동행해 중국 기업들과 로봇 분야 협력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병오 형지 회장은 지난 5일 중국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방중 경제사절단 일정에서 패션·웨어러블 로봇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이재명 대통령·허리펑 부총리가 주관하는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어 인민대회장에서 시진핑 주석이 주최한 국빈만찬에도 자리해 양국 주요 첨단기업 회장들과 교류를 펼쳤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CATL의 청위췬 회장, 글로벌 가전·디스플레이 기업 TCL과기그룹의 리동성 회장 등과 만나 웨어러블 로봇 사업 관련 구체적인 비즈니스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형지는 이번 경제사절단 일정 중의 비즈니스 교류를 통해 CATL과 TCL과기그룹은 물론이고 중국에서 전략적으로 육성 중인 로봇 관련 기업 및 기관들과도 긴밀히 교류하며, 고령층의 활동을 돕는 보조 기능 중심의 스마트 의류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형지의 일련의 행보는 향후 사업 전략과 맞물린 흐름으로 읽힌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중국에 대한 비교적 우호적인 외교 기조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또 웨어러블 로봇과 같은 신사업을 보다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로봇·헬스케어 등 신산업은 해외 협력, 기술 검증, 규제 환경 등에서 정책적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정부 기조와 보조를 맞추는 전략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부담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처럼 정치권과 보폭을 넓히는 형지의 행보에 우려의 시선도 제기된다. 소비자 브랜딩에 집중하는 타 패션기업과는 다른 행보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략이 오히려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형지의 최근 행보는 중국 사업과 신사업 추진 과정에서 정책 환경과의 정합성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며 “다만 일반 패션 기업과는 다른 행보인 만큼 성과로 이어질지는 중장기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형지 관계자는 “회장은 패션업계의 원로로서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경제사절단에 수차례 참여해 왔다”며 “정부 정책에 협조한다는 기조는 특정 정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이어져 온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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