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펫과 영상이 빚어낸 경이로운 생존의 기록…‘라이프 오브 파이’ [D: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1.04 14:01  수정 2026.01.04 14:01

3월 2일까지 GS아트센터

얀 마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인간의 생존과 신념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소설에서 영화로, 또 무대로 옮겨진 이 작품은 2021년 웨스트엔드, 2023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올리비에상 5관왕, 토니상 3관왕이라는 성과를 내고 지난해 11월 29일부터 GS아트센터에서 국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에스앤코

작품은 인도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던 중 겪게 되는 조난 사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파이는 구명보트 위에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227일간 표류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무대 예술과 영상 기술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시각적 경이로움이다.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연출은 관객에게 단순한 관람 이상의 체험을 경험하게 한다. 특히 병실이라는 고정된 물리적 장소가 망망대해로 치환되는 과정은 현대 연극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무대 전면과 바닥을 가득 채우는 프로젝션 매핑 기술은 배경을 묘사하는 도구를 넘어 극의 정서를 주도한다. 바다의 거친 파도, 밤하늘을 수놓는 별자리, 신비로운 식인 섬의 풍경은 빛과 조명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입체적으로 형상화된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파이가 느끼는 고립감과 대자연의 위용을 동시에 체감하게 하고, 환상과 실제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퍼펫 예술은 이 연극의 미학적 정점을 이루는 또 다른 축이다.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구현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여러 명의 배우가 호흡을 맞춰 움직이는 퍼펫은 근육의 수축과 이완, 미세한 숨소리, 발걸음의 무게감까지 정교하게 재현한다. 극 초반에는 퍼펫을 조종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인지되지만,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관객은 퍼펫을 실존하는 생명체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철저한 신체 분석을 바탕으로 한 배우들의 숙련된 기술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무생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연극적 상상력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셈이다.


ⓒ에스앤코

파이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의 연기는 화려한 무대 장치들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핵심 주체다. 방대한 분량의 대사와 독백을 소화하며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물의 심리 상태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소년의 순수함이 생존 본능으로 인해 변모해가는 과정은 그의 섬세한 표정과 신체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특히 호랑이와 대치하거나 바다 위에서 허구의 인물들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집중력은 무대 위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구심점이 된다. 자칫 시각적 효과에 매몰될 수 있는 극의 흐름을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고통이라는 본질적인 지점으로 끊임없이 끌어올린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성찰을 요구한다. 표류가 끝난 뒤 구조된 파이는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동물들과 함께한 환상적인 모험담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잔혹한 본성이 드러나는 비극적인 현실이다. 작품은 관객에게 무엇이 사실인지를 묻기보다, 고통스러운 진실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여 삶을 지속할 것인지를 묻는다. 리처드 파커라는 공포의 대상이 역설적으로 파이를 살게 한 동력이 되었듯, 우리 삶의 시련 또한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3월 2일까지 GS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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