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신·사회환원 '두 얼굴의 리더십'
세상을 바꾼 경영자, 사람을 남긴 리더
기술로 성장 이끌고, 문화로 공존 실천
산업의 거인에서 사회의 시민으로 —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앞줄 가운데) 생전 모습.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앞줄 왼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뒷줄 왼쪽), 홍라희 전 라움미술관장(뒷줄 오른쪽),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자료사진) ⓒ삼성전자
오는 25일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5주기다. 삼성 2대 총수인 이건희 선대회장은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삼성을 한국 대표 기업으로 만든, 대한민국 경제사에 큰 족적을 남긴 상징적인 인물이다.
산업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와 글로벌 경기 침체 및 중국 업체들의 발빠른 추격, 미-중 무역 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각종 외부 환경이 국내 기업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과거 저돌적인 추진력과 끊임없는 혁신을 보여줬던 이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이 주목받는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삼성
'초일류 삼성'의 설계자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혁신 드라이브를 걸었다. 당시 선진국을 따라잡는 가성비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던 수준에 그칠 수도 있었던 제조 기업 삼성은, 이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다.
그는 품질·기술·인재 중심의 경영을 토대로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전략을 주도하며 삼성전자를 세계 1위로 끌어올렸다. TV, 가전, 휴대폰 등의 분야에서, 양을 중시하던 기존 관행을 뿌리 뽑고 '질 중심 경영'을 앞세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까지도 유명한 1995년 '애니콜 화형식'이다.
아울러 개발도상국 직후의 국가 및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반도체 사업에도 적극 뛰어들어 1974년 처음 반도체 사업에 착수한지 10년 만인 1984년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1992년 이후 30년 동안 D램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반을 만든 것이다.
이 선대회장은 2012년 "5년, 10년 후 우리가 무엇으로 먹고살지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고 언급한 바 있을 정도로 위기 의식을 강조했다. 덕분에 삼성은 1997년 한국 경제 사상 초유의 IMF 위기, 2009년 금융 위기를 돌파하며, 그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체급의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 선대회장이 강조한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는 삼성의 경영이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룹의 방향타로 남아 있다.
삼성복지재단이 주최한 유아와 부모가 함께 전시를 관람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리움미술관 연계 패밀리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모습.ⓒ삼성복지재단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이건희 선대회장은 생전 “기업은 사회의 한 부분이며, 성장의 결실은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철학은 사후 유족의 결단으로 이어졌다. 2021년 유족들은 고인의 유지를 기려 ▲감염병 대응 인프라 구축 7000억 원 ▲소아암·희귀질환 치료 지원 3000억 원 등 총 1조 원을 의료공헌에 기부했다.
지난 2024년 10월 21일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 관련 '함께 희망을 열다, 미래를 열다' 행사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모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참석한 모습. ⓒ임채현 기자
이를 토대로 서울대어린이병원을 비롯한 전국 의료기관들이 모여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이 출범했고, 사업단은 전국 160여개 기관에서 1000명이 넘는 의료진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이 2028년 완공을 목표로 건립되고 잇으며 전국 어린이병원 네트워크를 통한 환아 치료 지원체계가 마련됐다.
또한 이 회장이 평생 수집한 미술품 2만 3000여 점이 국가기관과 지방 미술관에 기증되며 ‘이건희 컬렉션’이 탄생했다.국보 14건, 보물 46건을 포함한 이 기증은 국내 미술사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2021년 이후 전국 35개 박물관에서 순회전을 열어 3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았다. ‘인왕제색도’, ‘황소’, ‘여인들과 항아리’ 등 국민이 교과서로만 보던 명작들이 사회에 환원된 셈이다. ‘이건희 컬렉션’은 오는 11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을 시작으로 시카고미술관, 영국 대영박물관 등에서 순차적으로 전시된다.
지난 2024년 6월 4일 경기 용인에 위치한 호암미술관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팔상도' 중 한폭을 감상하는 모습. ⓒ임채현 기자
삼성 복지, 사회가 같이 누린다
이뿐만 아니다. 이 선대회장 유족들은 12조원 이상의 상속세도 꾸준히 납부하고 있다. 유족들이 부담하는 상속세 규모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역대 최고 수준이다.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상속 재산의 상당 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유족들은 유산의 약 60%를 사회에 환원했다.
이 선대회장의 취임 초기였던 1989년 설립된 삼성복지재단은 고인의 뜻을 이어 전국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한 ‘영유아 발달지원 사업’, 아동행동전문가 파견 등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지속 확대 중이다. 안내견 학교, 청소년 장학, 다문화 지원 등 그가 직접 구상한 현장형 사회공헌은 3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날(24일) 오전 경기도 수원 선영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한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다. 앞서 20일에는 이 선대회장의 5주기를 추모하는 음악회가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