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하고 싶다 [기자수첩-사회]

어윤수 기자 (taco@dailian.co.kr)

입력 2025.10.17 07:00  수정 2025.10.17 07:02

타살 혐의점 없지만 유서 필적감정 나선 경찰

조서 열람 거부하고 '셀프 조사' 나선 특검팀

민중기 특별검사.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모른다고, 기억 안 난다고 사실대로 말해도 계속 거짓이라고 한다. 계속되는 회유에 지치고 힘들어 강압적인 수사관에게 전혀 기억에도 없는 진술을 했다. 진술서 내용도 임의로 작성해 답을 강요했다. 나름대로 주민을 위해 열심히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자괴감이 든다."


지난 10일 명을 달리한 양평 공무원 A씨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고 나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의 일부 내용이다. A씨가 작성한 유서는 유족이 아닌 경찰이 쥐고 있다. A씨 변사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과는 사망 당일 현장에서 양평경찰서 경찰관이 유족에게 유서의 원본이 아닌 촬영본만을 열람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사흘 뒤에야 원본을 보여주고 사본도 따로 제공했다고 한다.


경찰은 사후 조치가 미흡했던 점은 인정하면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서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 이 때문에 세간의 이목은 A씨가 남기고 싶었던 말보다 유서의 진위 여부에 쏠리고 있다. 필적감정은 유서가 타살을 은폐하기 위해 가짜로 작성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 진행되는 절차다. 경찰 스스로 타살 등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필적 감정까지 나선 데 대해 다소 이례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인의 유서 공개에 대한 적절성은 차치하더라도 수사기관이 사인을 은폐 혹은 왜곡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스스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혹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유서 진위 여부를 부각하는 여론전을 돌파 수단으로 택했다면 방향이 한참 잘못됐다. 꼭 이 사건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숨기면 의혹과 불신만 증폭될 뿐이다.


양평군 공직사회는 A씨 사망 원인이 민중기 특검팀에 있다고 지적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 양평군지부는 이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 특검 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심리적 압박에 있음에도 특검은 언론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공익을 앞세워 출범한 특검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는 등 인권 침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양평 공흥지구 개발특혜 의혹을 들여다보던 민중기 특검팀은 이번엔 피조사자 사인을 직접 스스로 규명하겠다고 나섰다. A씨 진술 조서가 조작됐다는 의혹도 제기되는 가운데 '셀프 조사'에 착수했다는 게 특검의 입장이다. 그러면서 A씨의 생전 진술이 담긴 조서에 대한 유족 측 변호인의 열람은 불허했다. 이미 당사자가 사망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된 만큼 변호인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3대 특검은 지난 6월 무소불위 권력의 부정부패를 낱낱이 밝혀 청산하겠다며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아래 출범했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기소 이후 특검 수사가 본류와 다소 동떨어진 곁가지로 흐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건희특검의 '김건희' 없는 공소장이 수두룩한 것을 보면 지나친 비판도 아니다.


무리한 수사로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수사팀 구성이나 전략의 재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 모든 수사 상황과 방식을 면밀히 재점검하겠다고 밝힌 특검의 자성적 태도에 일단 기대 아닌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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