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용품 브랜드 '스테니' 전병규 대표 인터뷰
팔리는 상품을 넘어, 신뢰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시대. 브랜드 커머스의 중심에는 이제 자사몰이 있다. 자사몰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일군 창업자들의 여정을 들여다보았다. 성과보다 먼저 찾아온 망설임, 시행착오 속에서 내린 선택, 그리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쌓아올린 과정까지.
세상의 대부분은 익숙함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된다.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을 처음 쓰면 마주하는 ‘연마제’ 역시 그랬다. 몇 번이나 닦아내고, 뜨거운 물로 헹궈도 끝내 키친타월에 묻어 나오는 검은 가루. 그 정체가 바로 연마제다. 제품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마지막 공정에서 사용하는 성분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불편을 ‘원래 그런 것’이라며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떤 아빠는 그 당연함 앞에서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이걸 바꿀 수는 없는걸까?”
스테니는 그 질문에서 시작된 브랜드다. 아이를 키우던 한 아빠의 걱정은, 전 세계에서 단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던 무연마제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2024년 6월, 자본금 1억 원과 제작 수량 500개로 시작한 작은 도전. 누구도 만들지 않으려 했던 이 제품은 단 일주일 만에 전량 완판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스테니는 미국 수출을 본격화하며 누적 매출 30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스테니가 증명해낸 건 성장뿐만이 아니다. 고객의 불편을 ‘진짜 다르게’ 해결할 수 있다면 브랜드도, 시장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아빠의 불편함, 알고보니 모두의 문제였다
전병규 대표ⓒ
전병규 대표가 스테니 제품을 기획하던 당시 특히 주목했던 것은 ‘데이터’였다. ‘스텐 팬’을 검색하는 사람은 한 달에 약 2만 명. 그런데 ‘연마제 제거’라는 키워드는 무려 5만 건이 넘었다. 제품보다 불편함을 더 많이 검색하는 이 수치는, 전 대표에게 강력한 확신을 심어줬다. “사람들이 자기가 뭘 불편해하는지도 잘 모를 때가 많은데, 검색량은 그걸 명확히 보여주더라고요.”
그는 이 문제를 직접 풀기로 결심했다. 기술자는 아니었지만, 기획자로서의 습관을 십분 발휘했다. 논문을 찾아 읽고, 항공기·의료기기 표면 가공 방식까지 조사하며 연마제를 대체할 방법을 모색했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에 로고만 붙이는 방식으론 답이 없었다. 기성 제품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난관보다 더 어려웠던 건, 아무도 함께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군데 넘는 제조사에 연락했지만 돌아온 답은 “그건 안 돼요”였다. 한 공장은 “그런건 안만들어 봤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원래 남에게 부탁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 이 문제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어요.” 결국 한 곳에서 시도만이라도 해보겠다고 응했고, 그 작은 여지가 첫걸음이 됐다.
제작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어렵게 만든 샘플은 원하는 완성도가 나오지 않았고, 제조사는 포기를 권했지만 전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소재를 바꾸고, 가공 방식을 바꾸고, 테스트를 반복했다. 회사 자금 대부분을 쏟아부은 상황이었기에 제품 론칭을 앞두고는 초조함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했다. 시장엔 분명 불편함이 존재했고, 그걸 제대로 해결하는 순간 진짜 가치가 만들어질 거라고.
프라이팬 500개로 일단 시작…'작고 빠른' 스테니식 성장법
스테니 무연마제 통 5중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진짜 필요한 제품인지, 시장에 먼저 물어보자.’ 스테니의 첫 제품은 그렇게, 단 500개로 시작됐다. 전병규 대표는 ‘유별난 아빠가 만듭니다’라는 문구로 광고 소재를 직접 제작해 소액으로 메타 광고를 집행했다. 제품이 입고도 채 안 된 시점이었고, 리뷰도 하나 없던 상태였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첫 결제 알림이 뜨던 순간 전 대표는 환호했다. “첫 판매에 들떠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던 기억이 나요. 단순한 응원이나 지인 구매가 아니라는 건, 준비한 물량이 일주일 만에 완판되면서 확실히 알게 됐죠.”
이후 몇 달간은 입고되기 무섭게 품절되는 흐름이 반복됐다. 예상보다 빠른 반응에 팀은 놀랐고, 매번 “이만큼이면 괜찮겠지” 했던 수량도 연달아 품절됐다. 출시 이후, 반기 만에 매출은 50억을 찍었고 출시 1년을 조금 넘은 시점에는 누적 매출 200억을 달성했다. 이 같은 성장세라면 올해 매출 300억도 무리 없다는 게 전 대표의 자신감이다.
전 대표는 말한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하긴 어려워요. 중요한 건 작고 빠르게 실행해보고, 시장에서 배우는 거죠. 저희는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문제를 찾고, 핵심만 빠르게 해결하는 데 집중해요. 불필요한 걸 고민하느라 진짜 중요한 걸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스테니는 일의 규모보다, 무엇을 먼저 풀어야 할지 정확히 아는 것, 그 문제에 빠르게 답해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런 문제 중심의 사고방식이, 지금의 실행 중심 조직 문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실행 방식은 해외 진출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제품 론칭 1년 만인 2025년 6월, 스테니는 미국 시장 진출을 테스트하기 위해 법인도 없이 쇼피파이로 자사몰을 열고, 제품을 하나씩 우체국 국제 특송으로 직접 보냈다. 건당 배송비만 10만 원. “팔면 팔수록 적자였죠. 근데 그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먼저 확인하고, 나중에 구조를 짜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100개가 팔렸고, 가능성을 확인한 뒤에야 미국 법인과 유통망, 마케팅을 정비해나갔다.
스테니는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실행을 더 믿는다. 시장과 부딪히고, 고객의 반응을 듣고, 필요한 것을 빠르게 반영하는 방식. 그렇게 작고 빠르게 쌓아올린 선택들이 지금의 300억 브랜드를 만든 동력이었다.
“냄비는 없나요?” 고객이 묻는 곳에, 브랜드의 다음이 있다
스테니 공식 자사몰ⓒ
스테니의 제품 확장은 내부 전략 회의보다 고객의 말에서 먼저 결정된다. “냄비는 없나요?”, “웍도 만들어주세요.” 고객센터에 반복적으로 쌓이는 요청은 다음 제품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실제로 특정 제품에 대한 문의가 100건을 넘은 경우도 있었다. 전병규 대표는 말한다. “질문이 계속 올라오면, ‘이건 만들 때가 됐다’는 신호처럼 느껴져요. 내부 기획보다 고객 요청이 더 정확할 때도 많고요.”
스테니에는 따로 기획팀이 없다. 고객의 반응을 가장 가까이서 듣는 마케터가 제품 방향까지 제안한다. 고객의 불편을 해결하는 흐름 안에서 마케팅과 제품, 콘텐츠는 하나의 선상에 놓여 있다. “저희는 제품 단위가 아니라 문제 단위로 일해요. 고객이 뭘 불편해하는지 먼저 파악하면, 그걸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가 자연스럽게 나오거든요.”
그 흐름의 중심에는 실험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상세페이지 실험이다. 신제품을 론칭하면 전환율을 확인하며 이미지를 바꾸고, 문장을 다듬고, 텍스트 크기와 배치까지 매일 조정한다. “어떤 제품은 2~3주간 상세페이지를 매일 고친 적도 있어요. 고객은 내용을 꼼꼼히 읽지 않거든요. 평균 체류 시간은 1분 30초 정도밖에 안 돼요. 그 짧은 시간 안에 문제 해결의 확신을 줘야 하죠.”
이런 실험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자사몰이라는 공간이 있다. 제품을 어떻게 보여줄지, 어떤 메시지를 줄지, 고객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구매에 이르는지를 브랜드가 직접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 스테니는 아임웹 기반 자사몰을 통해 광고 성과는 물론 상세페이지, 쿠폰 위치, 버튼 배치 등 고객과의 모든 접점을 직접 설계하고 점검한다. “아무리 메타, 유튜브, 네이버에서 광고를 잘하더라도, 자사몰에서 전달력이 떨어지면 그 앞단의 모든 비용과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거든요.”
그래서 스테니는 지금도 자사몰을 실험실처럼 활용한다. 신규 입사자나 지인에게 사이트를 써보게 하며, 어디서 멈추고 어떤 구조에서 혼란을 느끼는지 관찰한다. 디바이스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CRM 메시지까지 꼼꼼히 테스트하는 이유도 같다. 브랜드는 결국 고객이 경험하는 방향으로 성장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편함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마음으로
전병규 대표ⓒ
스테니는 단순히 프라이팬 하나 잘 만든 브랜드에서 멈출 생각이 없다. 제품 라인업이 늘어나도, 진짜 중요한 건 늘 하나였다. 고객이 인식하지 못한 불편을 줄이는 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불편함, 익숙함에 묻힌 비효율. 그걸 발견하고 해결하는 일이야말로 브랜드가 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역할이라고 스테니는 믿는다.
이런 철학을 잊지 않기 위해 전병규 대표는 회사 이름도 ‘사각코퍼레이션’이라 지었다. 고객이 아직 인식하지 못한 불편, 시장의 사각지대에 브랜드가 먼저 질문을 던지자는 다짐을 이름에 담은 것이다. 실제로 스테니 외에도, 캠핑 브랜드 ‘마운틴웨일’ 등 다양한 생활 영역으로 ‘사각지대 줄이기’를 확장해가고 있다. 스테니는 이 확장의 중심에 서 있다.
“스테니가 단순한 제품 브랜드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테니니까 믿고 산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주방을 넘어 생활 전반으로 브랜드를 키워가고 싶어요.” 전 대표는 이 한마디에 브랜드가 향하는 방향을 담았다. 프라이팬이든, 냄비든, 그 어떤 제품이든 스테니가 품은 기준과 철학이 느껴질 수 있도록. 고객이 한 번 겪은 감동이 다른 제품에서도 반복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다음은 더 큰 무대다. 스테니는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한국 브랜드’가 되기 위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 대표는 말한다. “요즘 국내 제조사들 참 어렵잖아요. 결국 브랜드가 있어야 제조사들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뷰티를 제외하면 해외에서 잘 통하는 한국 제조 브랜드가 많지 않기도 하고요.” 국내 주방용품의 뛰어난 품질을 알리고, 정말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한국 브랜드’로 세계에 소개하는 것. 그것이 스테니가 오늘도 질문을 던지고, 제품으로 답을 내는 이유다. 조금 더 나은 일상, 조금 덜 불편한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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