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천갯벌, 생명의 숨결을 지키는 땅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5.09.13 07:00  수정 2025.09.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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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자원관 개관 10주년 기념 기획전시

‘날개 아래 바다’ 통해 갯벌 소중함 전달

“바다를 다루는 방식·인식 전환 기대”

김현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 끝없이 펼쳐진 평원은 겉으로는 단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낮추면 전혀 다른 세상이 드러난다. 수많은 게가 구멍을 드나들고, 조개는 호흡을 위해 펄 위로 수관을 내밀며, 철새들은 쉬지 않고 먹이를 찾는다.


겉은 고요하지만 속은 끊임없는 움직임과 에너지로 가득하다. 이곳은 단순한 진흙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태계, 바로 충남 서천갯벌이다.


경계의 공간에 사는 주인들


갯벌은 바다와 육지 사이 그 경계에 놓인 독특한 공간이다.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며 바닷물이 드나들고, 그 과정에서 흙과 모래, 영양염이 쌓여 비옥한 땅이 만들어진다.


학자들은 갯벌을 지구에서 가장 생산적인 생태계로 꼽는데, 같은 면적의 숲보다 훨씬 많은 유기물을 생산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체의 먹잇감이 갯벌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서천갯벌은 금강 하구의 민물과 서해의 바닷물이 만나 독특한 퇴적 환경이 만들어져 저서생물과 철새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서만 대형저서동물 180여 종, 조류 110여 종 이상 확인된다. 저서생물들에는 서천갯벌이 고향이요, 철새들에게는 생명의 휴게소라 이야기할 만하다.


철새들의 쉼터


서천갯벌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철새 때문이다. 이곳은 동아시아와 호주를 잇는 철새 이동 경로상 핵심 기착지로, 도요·물떼새 같은 종들이 거쳐 간다.


멸종위기종인 알락꼬리마도요나 저어새는 시베리아에서 번식해 호주나 뉴질랜드로 이동하는 길목에 서천을 찾는다.


잠시 머물며 영양분을 보충하지 못하면 수천 킬로미터의 여정을 이어갈 수 없기에, 서천갯벌은 그들에게 생존을 위한 중간 기착지다.


이러한 이유로 2021년 서천갯벌은 고창, 신안, 보성·순천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한국의 갯벌, Getbol, Korean Tidal Flats)으로 등재되었다.


과학이 밝혀낸 서천갯벌의 비밀


서천갯벌은 다양한 저서생물 군집, 해양과 육지 생태계의 연결 고리, 특히,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갯벌 속 미세조류와 퇴적물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한다. 우리나라 갯벌은 약 1,300만t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으며, 연간 26만t을 흡수한다. 이 수치는 승용차 11만 대가 내뿜는 양과 비슷하다.



충남 서천 유부도 갯벌 모습.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또한, 갯벌은 자연이 선사한 정화 장치다. 갯벌에 사는 동식물이 육상의 오염물질을 분해하는데 서천갯벌의 저서생물만 해도 하루에 수십만 t의 물을 여과한다.


대합이나 맛조개는 하루에 자기 몸 크기의 20배에 해당하는 물을 걸러내며, 이 과정에서 영양염류와 오염물질을 최대 67%까지 줄일 수 있다.


강에서 흘러오는 오염물질은 흡착해서 정화하고, 미세한 플랑크톤과 미생물은 영양분을 순환시킨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갯벌은 거대한 자연의 실험실이자 지구의 정화조다.


갯벌과 인간 공존의 비밀은 ‘유부도’에 있더라


서천갯벌에는 사람들의 삶도 있다. 서천갯벌 가운데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유부도는 오랫동안 어민들이 조개를 캐고 게를 잡으며 물새와 함께 살아왔다. 주민들에게 갯벌은 삶의 터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찍이 유부도 주민들은 오늘 욕심내서 잡으면 내일 먹을 게 준다는 것을 알아서 늘 쓸 만큼만 잡았다고 한다. 오늘날 ESG(환경·사회·투명 경영) 전략에서 말하는 지속가능한 이용과 다르지 않다.


갯벌은 미래에도 꼭 필요한 자연자산


서천갯벌도 한때 위기를 겪었다. 374만여 평(약 1236만㎡)의 갯벌이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매립될 뻔했었다. 2007년 정부가 생태단지를 조성하고, 국립생태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을 건립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서천군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서천갯벌은 살아남았다.


해안사구와 모래갯벌이 발달한 서천갯벌은 보전가치가 뛰어나 2008년 ‘습지보호지역’으로, 2009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100년도 안 된 세월 동안 우리나라의 갯벌은 간척이나 매립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고, 이는 철새 감소와 해양생물 서식지 훼손으로 이어졌다.


한번 매립된 갯벌은 수천, 수만 년에 걸친 퇴적과 생태의 역사도 함께 묻혀버린다. 육지의 법칙, 경제법칙은 바다에서는 위협이 될 수 있다. 갯벌을 매립하는 것은 생태학적인 관점,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거액의 국부를 지출하는 행위이다.


어느 책에서 보니 생태학자들이 경제학자와 다른 점은 경제학자들은 사물의 미래가치를 현재의 가치로 할인해서 보는 반면, 생태학자들은 미래를 현재와 똑같이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생물다양성과 기후균형을 유지하는 완충지대인 갯벌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기획전시, 서천갯벌의 생명 이야기 ‘날개 아래 바다’를 통해 새삼 바다를 다루는 방식과 우리의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기획전 '날개 아래 바다' 포스터. ⓒ국립해양생물자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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