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운 스타 배우들의 열연과 매진 행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서는 한국 연극의 뿌리인 소극장 생태계가 신음하며 무너져 내리고 있다. ‘쏠림 현상’으로 요약되는 현재의 기형적 호황이 일시적인 축제로 끝나지 않고, 한국 연극 전체의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한 근본적인 성찰과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대학로 거리 ⓒ뉴시스
업계에선 단기적인 지원을 넘어, 연극 생태계의 ‘허리’를 강화하고 대극장과 소극장이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소극장 관계자는 공공지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공공지원마저 흥행 가능성이 높은 대형 작품이나 이미 검증된 단체에 집중된다면,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만 낳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공공지원의 가장 큰 원칙은 시장이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 즉 예술의 다양성과 미래 가치를 보호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프로젝트 중심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소극장 운영 자체를 안정시킬 수 있는 ‘공간 기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예컨대 ‘서울형 창작극장’ 제도처럼, 공공이 소극장의 임차료와 대관료를 지원하면서 예술가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창작 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경우, 국립연극센터를 중심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하여 지역의 중소형 극장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이는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법률 및 행정 컨설팅까지 포함하며, 풀뿌리 연극 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추도록 돕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사실상 국내에선 이 같은 역할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인데, 그 민간에 대한 지원도 탄탄하지 못하다. 대표적으로 33년 역사의 학전 폐관은 한국 연극계에 ‘인재 배출의 요람’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제2, 제3의 황정민과 조승우를 키워낼 토양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신진 예술가 발굴과 창작극 개발을 위한 체계적인 인큐베이팅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한 소극장 대표는 “과거 선배 배우들이 소극장 무대에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성장의 과정을 지금의 신인들은 경험하기 어렵다”면서, 대극장과 스타 배우들의 사회적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대형 제작사나 스타 배우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신진 극작가나 연출가를 발굴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나 ‘창작극 개발 워크숍’을 의무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대형 상업극이 공공기금을 지원받을 경우, 수익의 일정 비율을 신진 예술가 육성 프로그램에 재투자하도록 하는 ‘수익 연계 환원 제도’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도 했다. 이는 스타들의 성공이 개인의 부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키워낸 생태계에 건강하게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식이다.
또 스타 배우의 개런티가 티켓 가격을 결정하는 현재의 구조는 장기적으로 연극 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을 수 있다. ‘이 배우가 나오니 11만원’이 아니라, ‘이 작품의 가치가 11만원’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브로드웨이, 오프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등 극장 공연 티켓 예매 플랫폼 ‘TKTS’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당일 남은 좌석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관객의 가격 부담을 낮추고, 잠재 관객을 극장으로 유인하는 역할을 하는 식이다. 이는 가격 저항을 낮춰 새로운 관객층을 유입시키고, 중소형 극장의 빈 객석을 채우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소극장 대표 B씨는 “스타 캐스팅이 연극 시장의 파이를 키운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넘쳐나는 물이 대극장이라는 거대한 저수지에만 고여 있다면, 주변의 작은 텃밭들은 모두 말라 죽고 말 것”이라며 “건강한 생태계는 소수의 거목이 아닌, 다양한 크기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의 ‘쏠림’ 현상을 ‘낙수 효과’로 전환시키기 위한 지혜로운 설계와 모두의 노력이 동반될 때, 비로소 ‘K-연극’의 화려한 르네상스가 지속 가능한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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