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기억하다] 당산 아파트 상가 속, 극장 경험과상상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7.19 14:00  수정 2025.07.19 14:00

[다시, 소극장으로㉕] 서울 영등포구 경험과상상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극단 제공
아파트 상가 지하에서, 예술을 꽃피우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자리한 ‘창작플랫폼 경험과상상’은 단순한 공연장을 넘어 지역 사회와 예술을 잇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아파트상가 지하에 자리한 이곳은 2호선과 9호선이 지나는 당산역에서 도보 7분 거리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2017년 개관한 창작플랫폼 경험과상상은 경험과상상 문화예술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소극장으로, 약 64석 규모의 객석을 갖추고 있다. 객석은 관객의 편안함을 고려해 설계되어 공연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준다. 특히 폭 10.5m, 깊이 7m의 넓은 무대와 3.8m에 달하는 천고는 이곳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이러한 구조는 연출자에게 다양한 공간 활용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무대 연출의 제약을 최소화한다.


경험과상상의 입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독특한 철문과 목재 골조가 어우러져 시선을 사로잡는다. ‘경험과상상’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나무판은 지인의 따뜻한 선물로, 이곳의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지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 쾌적한 환경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


ⓒ극단제공
대학로 벗어난 극장, 단원들 손길로 완성된 공간


창작플랫폼 경험과상상은 2017년 개관했지만, 그 뿌리는 2014년 창단된 극단 ‘경험과상상’에 닿아있다. 한덕균 극장장은 “뜻과 결이 맞는 멤버들끼리 모여 대학로에서 술만 마시다가 ‘우리 공연도 해보자’는 생각에 극단을 만들게 되었다”며 시작을 회상했다. 소극장이 대학로에 집중된 상황에서 당산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한 극장장은 ‘비용’과 ‘독립성’ 두 가지를 꼽는다.


“꽤 넓은 공간이 필요했는데 대학로에는 임대료가 너무 비싸 엄두도 못 냈습니다. 대학로를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요. 대학로에 있다 보면 저녁에는 술만 마시게 되고, 주류 연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 극단만의 색깔을 제대로 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극장이 들어선 공간은 과거 동네 마트였다가 헬스장으로 사용되었고, 한동안은 버려진 채 방치되었던 곳이었다. 객석, 조명 시설, 분장실 등 모든 공간에 단원들의 손길이 닿아 현재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한 극장장은 “지금은 대관 팀이 와서 ‘이렇게 좋은 민간 소극장은 처음 본다’고 감탄하곤 하는데, 그럴 때 참 뿌듯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무대는 최대한 공연에 맞게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공연장에 공연을 하러 가더라도 ‘바닥에 피스 박지 마라’ ‘거긴 안 된다’ 등 깐깐할 때가 많았죠. 우리 공연장은 객석을 옮기든, 바닥과 벽에 피스를 박든 (물론 조금만 박아달라고 요청합니다. 하하.) 최대한 공연을 질 좋게 구현할 수 있도록 신경씁니다.”


“또 웬만한 중극장 사이즈의 넓은 무대와 조명 설치에 용이하도록 최대한 높게 만든 천고도 극장을 만들 때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습니다. 그리고 소극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불편한 객석과 낮은 단차로 인한 시야 방해도 개선하여 관객들이 편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고요. 비록 객석 수가 적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공연의 질과 관객의 편의를 우선시한 결과입니다.”


ⓒ극단제공
“사라져 가는 소극장들, 더 잘 버티고 싶어”


여느 민간 소극장이 그러하듯, 경험과상상 역시 운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었다.


“한 달에 임대료, 공과금 등을 내면 한 달 내내 대관해야 겨우 유지합니다. 이 극장에서 자체 공연을 하면 큰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죠. 지원사업이나 초청공연으로 돈을 벌어 메꾸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돈에 치여 있고 극단과 극장이 없어질 위기가 종종 찾아옵니다.”


“세월에 따른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곳이 오래되고 지하다 보니 장마철이 되면 항상 불안해요. 한번은 대관 공연이 끝나고 철수를 하는데 폭우가 쏟아지더니 무대 바닥 콘센트 틈으로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다행히 공연이 끝나서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습니다.”


2017년 개관 이후 햇수로 9년 차에 접어든 경험과상상은 그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수익이 날 때마다 공간을 꾸미고, 지원 사업도 꾸준히 신청하면서 질적 성장도 꾀했다. 이런 노력 덕에 단골 대관 팀들이 늘어나고, 이들로부터 ‘경험과상상만큼 좋은 극장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리가 하는 일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연극이나 뮤지컬 등 공연예술이 줄 수 있는 힘이 있고, 또 소극장만이 줄 수 있는 영역이란 게 있잖아요. 점점 소극장들이 없어지고 힘들어지는데 저금 더 잘 버티고 싶은 마음입니다.”


스스로 “정체성 없이 시작했다”지만 지금은 극장의 색깔이 뚜렷하다. 이들 극장은 ‘편안하고 건강한 공간’을 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색깔이 가장 잘 담겨 있는 것이 작년부터 시작한 ‘상상역 시민 단막극 페스티벌’이다. 한 극장장은 경험과상상 대표가 쓴 글 일부를 내밀었다.


‘이 페스티벌은 영등포 지역에서 최초로 개최된 시민 주체형 연극제로, 경험과상상은 전문가로서 기획 및 스태프 역할을 했고, 무대의 주인공은 모두 시민들이었습니다. 저희는 철저하게 시민들이 주인공이 되도록 뒤에서 돕는 역할에 집중했습니다. 우리가 돈은 없지만 정성과 실력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마음과 수고를 참가자들께서 100%, 200% 알아주시고 싶은 감사를 표해주셨습니다. 단언컨대,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시민주체형 페스티벌의 모범적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기울였던 정성과 수고는, 나비효과가 되어 유형무형으로 저희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대표의 이 글은 이들이 지역과의 연대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도 보여진다. 아직은 관객 중 지역 주민 비율이 적은 편이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한 극장장은 목표를 묻자 ‘돈’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돈은 단원들을 배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공간으로 예술인들과 관객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돈이 많아 대관비를 더 저렴하게 낮출 수 있고. 더 안전하고 좋은 설비와 장비를 갖추어 더 쉽고 빠르고 안전하게 공연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돈 보다 애초에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아닌 공연예술을 정부가 나서서 튼튼하고 올바른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공짜로 대관을 주기도 하지만 더 많이 그럴 수 있게 하기, 좋은 공연 엄선해서 이 극장에 오면 건강해 질 수 있는 공간 되기. 통제와 제약 없는 공간이 되어 맘껏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 되기, 항상 공연이 있어 사람들로 붐비는 공간 되기. 그러기 위해선 우리 극단이 잘 나가야 하는데 더 명작을 만들도록 노력 해야겠습니다(웃음).”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