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에서 시작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한국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브로드웨이 최고 권위의 시상식인 토니상에서 뮤지컬 작품상(Best Musical)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에서 기획되고 제작된 작품이 토니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는 한국 뮤지컬의 제작 역량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입 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인데, 불가능에 가깝게 여겨지던 토니상까지 거머쥐며 K-콘텐츠의 저력을 뮤지컬 분야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얻은 결과가 아니다. 이 작품이 거둔 놀라운 성공의 배경에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기존의 작품을 단순히 해외에 ‘출품’하는 방식을 넘어, 작품 구상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치밀한 설계와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주효했다. 브로드웨이 관객들의 정서와 문화적 코드를 면밀히 분석하여 대본, 음악, 연출 등 모든 부분에서 현지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이러한 현지화 전략은 비단 ‘어쩌면 해피엔딩’에만 국한되는 성공 공식이 아니다. 이미 케이팝을 비롯한 다양한 K-콘텐츠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로 현지화 전략이 꼽혀왔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현지 아티스트와의 협업, 현지 팬덤을 고려한 마케팅 전략 등은 글로벌 진출의 필수 요소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이러한 성공 공식을 뮤지컬 분야에도 성공적으로 적용하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열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업계에 뜨거운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에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니다. 그동안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있었지만, 실제로 성공적인 모델을 찾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의 사례는 하나의 성공적인 레퍼런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뮤지컬협회 측은 “‘어쩌면 해피엔딩’은 초기 창작부터 디벨롭, 상업화, 해외 진출까지 뮤지컬 생태계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델을 구현한 것”이라며 “이번 성과를 계기로 한국 창작 뮤지컬은 더욱 발전하며 해외 진출의 길을 넒히고 K-콘텐츠 산업의 차세대 주력군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한국 뮤지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일회성 지원금 제공을 넘어, 해외 진출을 위한 전문 인력 양성, 해외 네트워크 구축 지원 그리고 창작 뮤지컬의 질적 향상을 위한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 현지화 전략을 위한 정보 공유 및 컨설팅 지원, 해외 유통망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 등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 ‘어쩌면 해피엔딩’ 토니상 수상의 주역인 윌 애런슨(작곡)과 박천휴(작사/극작) 콤비는 국내 최초로 딤프(DIMF,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가 추진해오고 있는 딤프창작지원작 ‘번지점프를 하다’(2012)로 처음 호흡을 맞췄고, 이 작품을 본 우란문화재단 관계자들이 이들의 ‘어쩌면 해피엔딩’을 2014년 기획·개발해 이듬해 우란문화재단 내부 리딩 공연,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쳐 최종적으로 2016년 DCF 대명문화공장에서 국내 초연을 올렸다. 2016년엔 뉴욕에서도 리딩 공연을 거쳐 지금의 브로드웨이 공연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 같은 민간 지원은 기업 실적 악화로 규모가 줄어들 위험이 있어 공공 차원의 체계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한 공연 관계자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한국 뮤지컬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라며 “이제는 이 성공을 발판 삼아 K-뮤지컬이 케이팝과 드라마, 영화에 이어 또 하나의 강력한 K-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민관이 협력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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