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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땅서 고통받는 북한 어린이, 사랑합니다”


입력 2008.09.25 23:49 수정        

‘북한인권국민캠페인 콘서트’ 개최...시민들도 발걸음 멈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도 참석…“북 인권 개선 위해 같이 노력하자”

“여러분과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외모를 지닌 어린이들이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로운 삶을 박탈당하고 중국과 몽골, 동남아를 떠돌며 상상도 못할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헐벗고 방황하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비가 간간히 오던 25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 어린이 특유의 발랄함과 생기를 잃은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에 지나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췄다.

“북조선 사람은 무조건 잡아간다는 소릴 들었어요. 무서워요” “엄마랑은 9살 때 헤어졌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라요. 제발 어디서든 잘 있으세요” “(강제 북송되는 걸 보면) 나도 그렇게 될까 두려워요”

탈북 직후 엄마와 헤어져 혼자 중국에 살고 있는 13살 희수, 신분증이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한 16살 은혜, 5년 전 엄마가 북송된 뒤 중국에 남겨진 10살 인호...얼굴을 반쯤 가린 커다란 선글라스와 푹 눌러쓴 모자로 신분을 감춘 탈북 고아들은 애써 담담히 강제 북송의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히, 그러나 안타깝게 탈북 고아들의 고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2008 북한인권국민캠페인의 일환으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북한인권 콘서트’는 탈북고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염원과 마음이 읽혔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피랍탈북인권연대, 북한민주화위원회, 열린북한방송 등 국내 북한 인권 관련 단체들이 함께하는 2008 북한인권국민캠페인은 북한 인권이 이념이나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적 문제이며, 이의 조속한 해결이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2008 북한인권국제캠페인 유세희 공동대회장은 “서울에서 이같은 음악회를 하는지 북한 어린이들을 모르겠지만 우리의 사랑이 언젠가는 그들에게 전달되리라 믿는다”며 “북한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헐벗고 방황하며 상상도 못할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어린들을 향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자”고 말했다.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은 탈북자로 구성된 평양예술단의 공연을 신기한 듯 관람했다. 예술단 소속 탈북자가 “너무도 멀게 느껴졌던 남과 북이 이렇게 만나보니 한민족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남북 통일의 염원을 담아 춤과 노래를 보여드리겠다”고 말하자 낯설은 북한식 억양에 웃는 관객도 있었으나, 이내 박력 넘치는 군무와 아코디언 연주 등을 흥미롭게 보는가 하면 몇몇 관객들은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 미국 대사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스티븐스 대사는 첫 여성 미국대사로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심은경’이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지한파’ 외교관이다. 한국 음식, 특히 김치찌개 등을 좋아한다고 밝히는가 하면 부임하자마자 순두부를 먹으러 갈 정도로 소탈하고 한국 문화 등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티븐스 대사의 ‘깜짝 방문’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미 상원 청문회 당시 북한 인권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준이 보류되는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 스티븐스 대사는 지난 1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대사 후보로 지명받고 4월 인사청문회도 열렸으나, 공화당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할 것을 부시 행정부에 요구하며 인준안 처리를 늦춤에 따라 지난달에야 인준안이 통과됐다.

스티븐스 대사는 ‘북한 인권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우려를 씻고,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부임 이틀만인 이날 북한인권캠페인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정장차림으로 행사장을 찾은 스티븐스 대사는 오후 7시45분경 모습을 나타내 오후 8시 30분까지 45분간 자리를 지켰다. 평양예술단 공연과 탈북 고아의 고통을 담은 동영상 등을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주최측 관계자들에게 북한 인권이나 탈북자 문제 등에 관해 질문을 하고 경청을 하는 등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날 스티븐스 대사는 “(북한 인권 문제 개선을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말을 거듭 강조하면서 “이런 대화를 통해 북한의 상황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싶다. (한미 양국이) 동맹국가로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 자리에게 조만간 탈북자 정착지원 시설인 하나원을 방문하는 한편, 과거 미국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파견돼 영어를 가르쳤던 예산중학교를 방문하고 1980년대 야당지도자일 때 자주 만났던 김영삼 전 대통령를 예방할 의사도 밝혔다고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은 전했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 2008 북한인권국민캠페인 고문을 맡고 있는 이인호 카이스트 석좌교수, 탈북자를 소재로 한 영화 ‘크로싱’에서 아버지와 안타까운 이별을 한 북한 어린이역을 연기했던 아역배우 신명철 군 등도 탈북 고아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동영상 메시지를 전했다.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캠페인은 그동안 학술적 차원에서 접근해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어려웠던 한계가 있었다. 이번 행사는 좀더 대중적인 면을 부각시켜 북한 인권에 대한 공론화가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김윤태 사무총장은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실상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적지 않다”며 “북한 인권은 보수나 진보를 떠나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문화행사를 통해 북한의 현실과 북한 주민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민들도 ‘낯설지만 좋은 행사’였다는 긍정적 반응이 많았다.

신예나씨(19, 여, 경기도 분당)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은 잘 와닿지 않았던 탈북자와 탈북 고아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였다”며 “자신의 잘못도 없는데 머나먼 이국땅에서 괴로워 하는 북한 어린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김호윤씨(19, 여, 서울 신사동)도 “고등학교 때 탈북자 출신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해서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았었다”며 “그러나 그동안 북한 인권에 대해 사회적으로 무관심하다는 걸 많이 느꼈는데 개방된 공간에서 일반 시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이런 자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과 고통을 나누려는 마음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지영(15, 여, 서울 화곡동)양은 “사실 북한 인권은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도 없고 잘 몰랐었다”면서 “나보다도 어린데 혼자서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오늘을 기회로 앞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음악전문 케이블 방송 Mnet이 주관한 콘서트에는 탈북 고아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1부에 이어 이민우, 샤이니, 신지, 솔비, 구준엽 등 국내 인기가수들의 2부 공연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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