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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침묵하는 소녀, 코오트의 여름


입력 2023.06.09 14:08 수정 2023.06.09 14:08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말없는 소녀’

한반도의 1/3의 규모이고 인구도 500만명에 불과한 아일랜드는 역사적으로 40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845년부터 1852년까지는 감자대기근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당시 100만명이 굶어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떠났다.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달러로 영국의 5만달러를 능가하는 부국이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빈국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말없는 소녀’는 1980년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가난한 어린 소녀의 성장기를 그렸다. 아일랜드의 여류 작가 클레어 키건의 중편 소설 ‘맡겨진 소녀’가 원작인 영화는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37관왕을 석권하며 해외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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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 코오트(캐서린 크로울리 분)는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아이다. 어느 날 엄마가 다섯째 출산을 앞두게 되자, 집안 형편이 어려운 부모는 코오트를 여름동안 먼 친척에게 보낸다. 아이가 없는 에이블린(캐리 크로울리 분)과 숀(앤드류 베넷 분)은 코오트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낯설기만 했던 코오트는 친척 부부의 다정한 보살핌에 차츰 마음을 연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코오트는 새로 태어난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에 처한다. 코오트와 에이블린 부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는 아일랜드의 가난한 삶을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잘 담아냈다. 농사를 짓는 코오트의 부모는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한창 자라는 다섯 아이들의 식욕도 감당하기가 어렵다. 제대로 된 부모의 보호와 교육을 받지 못한 코오트는 점점 더 말이 없이 내성적으로 변하고 공부마저 또래보다 뒤처진다. 영화는 어떤 설명보다 농가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아일랜드의 푸른 정취를 한 폭의 회화처럼 담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80년대 아일랜드의 가난한 역사가 배어 있어 아름다운 시골 풍광이 애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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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는 육아와 가사에 지쳐 있고, 도박을 즐기느라 농사일에 소홀한 아빠는 자녀들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다. 말없이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코오트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친척 부부를 만나고 코오트는 변화된다. 점점 질문도 늘고 말이 많아지며 자신감도 되찾고 미소도 잦아진다. 부모는 자녀를 먹여 살리는 것은 물론 가정교육을 통해 인격을 형성시키고 성장시켜야 한다. 영화는 코오트를 대하는 두 부부의 모습을 통해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사랑의 힘이다. 어디 가나 항상 주눅 들어있는 아이는 새로운 환경으로 긴장한 탓에 오줌을 싼다. 집에서라면 꾸지람을 들었지만 에이블린은 전혀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꼬질꼬질 때묻은 손과 발을 정성껏 씻겨주고 머리카락도 자주 빗겨준다. 숀과는 농장 일을 함께 하며 가까워진다. 무뚝뚝한 성격답게 혼낸 뒤에는 몰래 쿠키를 건네고 우체통의 편지를 가져오는 일도 놀이로 만들며 둘만의 특별한 시간을 만든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던 아이가 점차 밝고 명랑하게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라나는 아이에게 애정 어린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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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는 풍요해졌지만 각박한 삶을 살면서 청소년 자녀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부모와의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서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TV에서도 청소년 상담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말없는 소녀’는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코오트에게 사랑을 베푼 에이블린과 숀 부부를 통해 우리 청소년 문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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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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