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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경사노위 떠나면 '민주노총 2중대' 된다 [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3.06.07 10:29 수정 2023.06.07 10:55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협상 테이블에서 근로자 권리 지킬 마지막 보루

경사노위 이탈해 '투쟁' 노선 밟으면 '합리적' 이미지 물거품

변별력 잃고 '민주노총 아류' 전락은 피해야

김동명 위원장을 비롯한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지난달 31일 전남 광양제철소 앞 도로에 설치한 높이 7m 철제 구조물(망루)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에 대한 경찰 진압 방식을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김동명 위원장을 비롯한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지난달 31일 전남 광양제철소 앞 도로에 설치한 높이 7m 철제 구조물(망루)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에 대한 경찰 진압 방식을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과의 충돌로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쇠파이프와 곤봉이 오가는 난투극 끝에 조합원이 머리에 피를 흘리는 모습이 전 국민에게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한국노총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비난 성명을 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뭔가 상징성을 갖는 행동을 보여줘야 조합원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으리라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내놓은 카드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이탈이다. 한국노총은 7일 낮 12시30분 한국노총 전남 광양 지역지부 회의실에서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중집위)를 열고 경사노위에 불참하거나 아예 탈퇴할지 여부를 논의한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이탈은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여성·청년·비정규직, 중소·중견기업과 소상공인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로 출범한 이래 양대 노총 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채 한국노총 홀로 노동계를 대표해 왔었기 때문이다.


경사노위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묵직한 카드를 정부에 내민 셈이다. 한국노총은 이걸 지렛대로 경찰과 충돌 이후 구속 상태인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의 석방과 정부의 공식 사과, 경찰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로서도 쉽게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불법시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지시해놓고, 불법시위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사과를 하거나 책임자를 처벌한다면 영(令)이 제대로 설 리가 없다.


‘강 대 강’이 맞붙는다면 결과는 파국뿐이다. 경사노위는 유명무실화되고 각종 노동 현안을 다룰 대화 창구는 닫히게 된다. 한국노총의 의도대로 가장 곤란을 겪는 쪽은 노사정 대화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정부가 될 것이다. 노사 대립이 격화되며 경제에도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방아쇠를 당긴 한국노총은 아무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동안 노동계를 향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은 주로 민주노총을 향한 것이었다. 귀족노조, 적폐, 불법시위, 파업 등 부정적 이미지는 민주노총에 집중돼 왔다.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타깃 역시 주로 민주노총을 향해 있었다.


한국노총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이미지였다.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되 합리성을 잃지 않는, ‘대화가 되는’ 노조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경사노위 참여는 그런 한국노총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정부와 사용자를 상대로 싸우더라도 협상 테이블에서 싸우는 게 한국노총이었다.


역으로, 경사노위 이탈은 한국노총의 강경 전환을 의미한다. 테이블을 떠나 ‘투쟁’의 길로 들어서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투쟁의 길에서는 이미 민주노총이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는다면 변별력을 잃은 ‘민주노총 2중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선언적 의미가 아닌 현실적인 근로자들의 권리를 대화를 통해 쟁취해온 노동계의 창구도 사라진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분노한 조합원들의 여론을 헤아려야 하는 한국노총 수뇌부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경사노위 이탈이 진정으로 근로자들을 위하는 것인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그래왔듯이 한국노총이 이번에도 현명한 길을 택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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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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