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소주’도 맘 놓고 못 마시는 정치 양극화


입력 2023.04.02 07:38 수정 2023.04.02 07:39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영복 글씨체 좋아하고 혐오하는 두 부류로 나뉘어

이름 때문에 눈치 보며 소주 마셔야 하나?

국정원 원훈석 서체 바꾼 박지원의 충성

문재인의 신영복 사상 존경과 글씨 사랑

문재인(왼쪽) 전 대통령이 지난 2021년 6월 4일 국가정보원 원훈석 제막식을 마친 뒤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함께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들고 있다.ⓒ청와대 문재인(왼쪽) 전 대통령이 지난 2021년 6월 4일 국가정보원 원훈석 제막식을 마친 뒤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함께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들고 있다.ⓒ청와대

대한민국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잣대들이 몇 개 있다.


소주의 선호도 그중 하나다. <처음처럼>이란 술을 아주 좋아하거나 최소한 의식적으로 싫어하지는 않는 애주가들과 그 술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사람들로 나라가 쪼개져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필자 주변의 열성 보수우파들은 이 술을 절대로 안 마신다. 소주 이름 글씨체 때문이다. 문재인을 비롯한 친북 용공 인사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신영복(2016년 74세로 사망)이 써서 유명해진 어깨동무 체라는 것이다.


1960년대 말 북한 지하 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 복역 중 전향서를 쓰고 20년 만에 출소했으나 거짓 전향이었다고 실토한 사상범이 신영복이고 문재인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한 인물이 그다. 이 사실을 들어 반(反) <처음처럼>을 토로하는 분위기 속에 그 술을 먹을 소신파는 많지 않다.


보수우파들은 그들이 없는 곳에서도 괜히 눈치를 보며 이 술을 마시게 된다. 별 희한한 양심의 가책이다. 반대로 문재인에 이어 이재명을 지지하는 진보좌파들은 오히려 진영주(陳營酒)라도 되는 듯이 즐긴다. 우스운 얘기지만, 서글퍼지는 현실이다.


글씨체 하나로 소주 먹기도 불편한 세상이 되는 건 비정상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이렇게 심각하고 무섭다.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기소돼 민주당을 떠난 전 의원이자 디자이너(로고 전문) 손혜원이 작명한 것인데, 경쟁 상품 <참이슬>도 그녀의 작품이다. 롯데는 신영복체 상품명으로 “주류 판매 일부 수익이 친북/북측 세력에 지원된다”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회사는 글씨체 주인공인 신영복 소속 대학(성공회대)에 장학금으로 1억원을 기증했을 뿐 다른 주장은 유언비어라고 부인한 바 있다.


신영복체가 우리 사회에 큰 이슈가 된 건 어느 날 갑자기 국정원장에 임명된 박지원이 취임 후 원훈석(院訓石)을 바꿔서였다. 대북 정보활동이 주업무인 국가 중앙 정보기관의, 학교로 말하면 교훈을 라이벌 학교 교훈 글씨체로 교체한 것이다.


그 사람을 임명한 대통령이나, 자기보다 10살도 더 어린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원장이나 난형난제(難兄難弟)다. 임명권자가 좋아하는 ‘간첩’의 글씨체를 간첩들 잡는 기관의 ‘교훈’에 썼으니 둘 다 제정신이 아닌 것 아닌가? 박지원에 대한 수사는 최근 그 직원들의 고발로 이뤄지게 됐다.


“(국정원의) 원훈석 수사 의뢰에 대해선 그 어디로부터 연락받은 게 없다. 나도 어떤 사안인지 모르겠다. 원훈석에서 내가 돈을 받았겠나? 그 무거운 돌덩이를 내 안방으로 옮겼겠나?”

박지원다운 어법이다. 원훈석이 박지원에게 돈을 줬다고 그 직원들이 전 원장을 고발했겠나? 장관급 고위직을 지낸 사람이 국민을 깔보는 말장난을 이렇게 함부로 한다. 전임 대통령은 이런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다.


“역사와 대한민국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제 입에서는 정치의 정(政) 자 한 자도 올리지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습니다.”

그가 문재인 퇴임 약 2년 전에 발탁돼 윤석열 취임 하루 만에 잘릴 때까지 ‘국정원 개혁’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신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첩보 보고서 무단 삭제는 크게 보도됐다.


그다음으로 사람들 입에 많아 오른 게 원훈석 교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


중앙 정보기관의 원훈으로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국정원이 왜 충성하는 곳이어야 하나? 게다가 그 글씨 모양은 평생 북한을 바라며 산 국보법 위반자의 스타일로 썼다.


이 원훈은 문재인이 2018년 국정원을 방문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 바로 국정원의 본령이다”라고 한 연설 문장에서 박지원이 눈치 빠르게 뽑아 내 쓴 것이다. 가히 아부의 천재다.


원훈과 글씨체 교체 과정에서 국정원 내부 직원들이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것으로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냈으나 묵살됐다. 국정원은 정권이 바뀐 지 10개월가량이 흐른 뒤 그를 직권 남용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반대 직원들을 부당하게 압박했다는 말이 있다.


신영복을 ‘사상적 스승’이라고 한 문재인의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 글씨도 신영복체다. 박지원은 이런 문재인의 마음을 읽고 그가 좋아할 문구와 서체를 골라서 새 돌에 새기도록 한 것이다.


박근혜 때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정한 지 불과 5년 만이었다. 이 원훈 속의 ‘대한민국 수호’라는 말이 더도 덜도 아닌 국정원의 사명이다. 이 좋은(적절한) 원훈을 문재인 좋으라고 박지원이 직원들 의견을 무시하면서 내팽개쳐 버렸다.


문재인은 그러면 왜 박지원을 국정원장에 앉혔는가? 정권 말에 다른 정당(민생당) 소속 인물을 국가 중요 기관장으로 부른 이 수상한 임명 미스터리도 언젠가는 다른 모든 의혹들과 함께 풀려야만 한다. 대북 정책 관련 모종의 역할을 위해 북한통인 박지원을 쓰려고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박지원은 원훈석 스캔들 말고도 수사와 재판받을 일이 쌓여 있다. 서해 첩보 보고서 삭제, 강제 북송……. 국정원장 자리 하사에 영광스러워했다가 80대 노구의 몸으로 또다시 그곳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의 없는 죄목 중 국민들에게 소주도 맘대로 먹지 못하도록 한 죄도 실정법 위반 못지않게 크다.

ⓒ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정기수 칼럼'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2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