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기로에 선 삼성…美 으름장 맞서 강단 보여야 [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3.03.30 10:41 수정 2023.03.30 15:49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美 반도체 보조금 세부 지침 통해 웨이퍼 수율 등 영업기밀 내용까지 요구

기로에 놓인 삼성, 2년 전 경험 토대로 비밀유지·고객 신뢰 적극 어필해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반도체 패권 우위를 위한 미국의 안하무인적 태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보조금을 미끼로 글로벌 제조사들의 투자를 끌어들이는가 싶더니 막상 뚜껑을 열자 상당히 깐깐한 조항으로 기업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보조금 세부 지침을 발표했다. 보조금을 받고자 하는 기업들은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 비율), 생산 첫 해 판매 가격, 이후 연도별 생산량과 판매 가격 증감 등을 엑셀 파일에 입력해야 한다.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소재, 소모품, 화학품과 공장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 공공요금, 연구개발 비용도 포함된다. 수율, 고정비 등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내용까지 내놓으라는 식이니 보조금을 미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종속시키려는 의도가 빤히 보인다.


특히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이나 애리조나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TSMC는 당장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영업기밀 유출 우려를 감내해야 하고 그렇다고 받지 않으면 반도체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이목은 대미 투자가 한참 진행중인 삼성의 판단에 쏠려있다. 후공정 시설을 검토중인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다른 반도체 사업장 건설을 계획중인 다국적 기업들은 상당한 영향권에 놓인 삼성의 전례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대로만 무작정 끌려갈수도 없다. 일방적 희생과 양보라는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민감한 정보를 가급적 배제하면서 미국의 보조금 혜택을 최대한 받아내는 것이다.


미국은 2년 전에도 반도체 공급망 관련 자료를 요구하며 글로벌 기업들을 곤혹에 빠뜨린 적이 있다. 당시 미 상무부는 반도체 공급망 현황을 조사하겠다며 반도체 기업들에게 고객사 정보, 제품별 매출, 재고 수량, 주문 내역 등 총 26가지 문항을 자료 형태로 제출하라고 했다.


당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한·미 양국 정부와 협의를 거쳐 자료를 제출했다. 이 때 고객사 및 제품 재고 현황 등 내부적으로 민감한 항목들은 비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계약 당시 체결한 영업상 비밀유지 조항을 준수하고 고객과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는 이유였다.


반도체 패권을 자국 영토로 끌어들이고자하는 미국의 야욕이 2년 전 보다 거세졌고, 더 민감한 정보를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기업들의 부담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년 전에도 양국간 긴밀한 협의로 고비를 넘겼던 것처럼 이번에도 강단있는 민·관 플레이가 요구된다.


보조금 세부 지침 내용은 가혹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피할 구석은 있다. 미국은 보조금 사전 신청 제출시 엑셀(재무툴) 사용이 필수 요구사항이 아님을 서두에 명시했다. 운신의 폭을 허용한 만큼 정부와 기업은 외교력을 발휘해 민감한 정보는 상당 부분 공란으로 둘 수 있도록 미국의 전향적인 대답을 끌어내야 한다.


이같은 합리적 판단이 결국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을 확대하는 길이며, 한국 반도체와의 장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지름길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내달 한·미 정상회담은 중요한 기로가 될 수 있다. 공동성명에 단순히 전시적 동맹 구호만 넣을 게 아니라 반도체 동맹에 대한 상호 신뢰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을 명시해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안정적으로 입지를 굳힐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기자수첩-산업IT'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