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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노예계약, OUT②] 연예인만? 여전히 ‘심부름꾼’ 취급받는 매니저들


입력 2023.02.08 11:01 수정 2023.02.08 11:01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획사 중 소속직원 근로계약서 미작성 비율 10% 웃돌아

연예인 매니저 직업 만족도 100점 만점에 28점

"표준계약서 의무화·업무 범위 조율 등 처우 개선해야"

가수 겸 배우 이승기가 전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와 법정분쟁을 벌이면서 대중의 관심은 오롯이 이승기가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또 후크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인 권진영 대표가 어떤 부정한 행위를 했는지에만 집중됐다. 그런데 이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승기 만큼 매니저도 노예계약의 피해자라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픽사베이이 ⓒ픽사베이이

권진영 대표는 이승기에게 소위 ‘갑질’을 하는 과정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는 도구로 매니저를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녹취록을 통해 권 대표가 매니저에게 폭언을 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도 ‘네(매니저)가 그렇게 하니까 승기가 그 모양이다’ ‘싫은 소리 안하고 동생만 하려면 나가라’ 등의 협박성 말도 서슴없이 쏟아냈다.


과거 5년여의 매니저 생활을 했던 A씨는 “이승기 사태가 보도되면서 매니저의 폭로와 녹취록 등이 공개됐다. 매니저 일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승기의 상황도 안타깝지만 매니저에게 더욱 몰입하게 됐다”면서 “대표가 매니저에게 지시하는 것이 매우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처우가 많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매니저들은 이 업계에서 ‘심부름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고 안타까워했다.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의 처우 문제는 꾸준히 이슈거리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9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매니지먼트 기획사 중 소속직원과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비율은 10%가 넘었다. 구두 계약도 3.3%였다. 일자리 포털 워크넷 직업정보시스템에서 연예인 매니저 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업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28점이었다는 결과도 있다.


이전보다 나아졌다지만 소속사마다 복리후생이 다르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소규모 엔터테인먼트사가 늘어나는 만큼 정산과 처우 역시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10여년간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B씨는 “로드매니저로 시작했을 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이후에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계약서를 쓰게 됐는데 표준계약서 기본 양식에 매니저 직업 특성상 시간외 근무 등의 조항이 따로 적혀 있었다. 자세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실상 서류일 뿐 지켜지는 건 없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tvN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tvN

또 다른 매니저 C씨 역시 “옛날에는 아예 근로계약서라는 게 없었다. 조그만 회사들은 대부분 지인들을 통해 소개를 받는 식이었다. 그만큼 연예계는 굉장히 폐쇄적인 집단이다 보니 대기업 수준의 큰 회사가 아닌 이상 계약서 작성은 없었다고 보면 된다”면서 “매니저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매니저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연예인이나, 소속사에게 패널티를 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문제는 무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에도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배우 소속사 매니저 D씨는 “스타급 연예인을 잡아야 하는 소속사 입장에선 연예인이 작은 불만이라도 내비치면 매니저를 해고하거나, 온갖 잡일까지 하도록 강요한다”면서 “매니저뿐만 아니라 일반 직원들의 처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소규모 엔터테인먼트의 경우는 직원의 수가 적기 때문에 업무 외의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마찬가지로 이의제기는 퇴사를 할 결심을 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은 한 목소리로 처우 개선을 외치면서도, 동시에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한 관계자는 “최근 엔터테인먼트의 연예인에 대한 갑질이 이슈가 된 것을 보고 업계 종사자들은 반가우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 사실이다. 스타급 연예인도 소속사의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데, 힘없는 직원들은 말을 꺼낼 용기조차 없다”면서 “뿌리 깊이 ‘매니저=심부름꾼’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만큼 하루아침에 환경이 개선되는 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도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의 업무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예인과 소속사와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직원(매니저)들도 엄연히 대중문화예술산업의 일원인 만큼 업무 범위를 공통적으로 조율하고,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는 등의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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