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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20대 끝자락에 선 권소현의 '그 겨울, 나는'


입력 2022.12.13 09:11 수정 2022.12.13 09:11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포미닛으로 데뷔

차기작 준비 중

자연스러운 베이지색으로 작품에 어우러지길 바랐던 지난 날, 스물 아홉의 권소현은 극에 스면들기 보다는 극의 정면에서 똑바로 서 있으려 한다. 포미닛 막내라는 이미지에 머물러 있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온 권소현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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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나는'은 내일을 위해 뜨겁게 공부하고, 오늘을 위해 열심히 사랑 중인 가난한 공시생과 취준생 커플의 애틋한 겨울나기를 통해, 지금 청춘들의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사려 깊게 응시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지난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메가박스상과 올해의 배우상(권다함), 왓챠상까지 주요 부문 3관왕을 거머쥔 화제작이자 오성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권소현은 극중 이제 막 취업에 성공한 혜진 역을 맡았다.


영화 '생일', '블랙머니', '감쪽같은 그녀', '런 보이 런' 등에 출연하며 기본기를 쌓아온 권소현의 첫 스크린 주연작이다.


"한국 영화아카데미(KAFA)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포미닛 이후 배우로 홀로서기 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까, 저의 이런 생각의 결과 부합하는 작품이 무엇이 있나 고민했는데 시나리오가 탄탄한 독립영화부터 차근차근 해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아카데미 작품 위주로 오디션을 봐왔죠"


극 중 혜진은 가난하지만 남자친구 경학과 알콩달콩 지내며 꿈을 키워나가지만, 빚으로 인해 경찰공무원 시험을 잠시 뒤로 하고 배달 일을 시작한 경학과 이견 차이로 서서히 멀어져 간다. 사회 생활을 먼저 시작하며 남자친구의 현실을 걱정하는 혜진과 그런 여자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한 취준생 경학은 각자의 자리에서 겨울처럼 시린 온도를 온몸으로 느낀다. 권소현은 힘든 현실 속에서 웃음을 앓지 않았던 혜진의 시들어가는 얼굴을 훌륭히 소화했다.


"감독님이 혜진이는 경학이보다 어른스러운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감독님이 스스로 고집스럽고 예민하다는 걸 아셔서 테이크를 스무 번 넘게 가도 이해해 줄 만한 배우를 찾고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꾸밈없는 혜진이를 보여주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오디션에서 제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보여드렸죠.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말투, 어미까지도 섬세하게 디렉션을 주셨어요. 가장 많이 주문하신 건 '진짜 같았으면 좋겠다'였죠. 그래서 저도 치열하게 고민해서 의견을 드리고 대본에 충실했어요."


권소현은 첫 주연, 첫 베드신과 담배를 피는 연기까지 '그 겨울 나는'을 통해 수많은 '처음'을 느꼈다. 자신의 이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권소현은 부담과 걱정도 됐지만, 잘 해내고 싶었다.


"도전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에 정말 잘 소화하고 싶었죠. 처음에는 담배 말고 다른 대체할 무언가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복합적인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도구로 담배 만한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연습을 했어요. 제가 팀의 막내 이미지 있다 보니까 귀여운 이미지가 계속 따라와서 베드신 자체가 큰 도전이었어요. 현실적인 스물 아홉 살의 혜진을 보여줘야 하는데 제 이미지가 겹칠까 봐 걱정했었죠. 다행히 그렇게 봐주신 것 같지 않아 좋은 시작을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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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현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동료들과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 한 걸음 물러나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제는 주체가 돼 영화를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감독님 뿐만 아니라 배우, 스태프들이 모두 의견을 내고, 그 아이디어로 영화가 풍성해지는 경험을 했어요. 어려서부터 활동해서 저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동반자로 바라보기 보다 윗사람으로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제 생각을 잘 이야기 하지 못했죠. 그런데 이 작품을 찍으면서 '내가 의견을 이야기 해도 되는구나, 월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 작품이 처음으로 나도 참여해서 함께 만들어간 작품이라고 느껴져요. 이제는 제 밑그림을 조금씩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다른 작품을 하게 되더라도 동료들을 어려워하지 않고 제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권소현은 혜진을 둘러싼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자신 역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골목길에서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혜진보다 어린 나이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자신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 때가 있었기에 조금 더 성숙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면서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괴리감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저도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이런 경험이 있었죠. 제 나이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저의 스물 셋 모습이 현재 스물 아홉의 혜진의 상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 저는 팀을 떠나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자리 잡아야 하는데 과거에 맺혀있는 게 답답함을 느끼고는 했거든요. 그런 과거를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상대역 권다함과는 현실 속에서 삐걱거리는 커플을 연기했다. 반대 성향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은 캐릭터를 위해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고, 친해진 후 스크린에 주변에 있을 법한 커플의 모양을 만들어냈다.


"둘의 성격이 너무 달라 서로가 생각하는 경학과 혜진의 모습이 잘 나오지 않아서 더 빨리 친해져야 했어요. 그래서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했고, 가까워지니 금방 또 편해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우리 모두 이 작품이 간절하고 중요했어요. 권다함 씨는 첫 독립장편 주연작이었고 저는 이미지 변신이라는 점에서 잘 해내고 싶었거든요. 감독님도 마찬가지고요. '우린 망하면 안돼' 이러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영화 속 혜진은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나가고 경학은 한 사건을 겪고 배달 일을 그만 둔 후, 공장에 취직한다. 뜨겁게 사랑했던 두 사람이지만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았고 결국 이별을 맞이한다. 낮엔 일을 하고 밤에 다시 책을 펴는 경학의 모습 속 올라가는 크레딧은 깊은 여운을 남기는 동시에 각자 이 커플의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다.


"저는 경학이가 경찰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20대 중반에서 후반이 제일 아프고 혼란스러운 시기잖아요. 그 때 큰 일을 겪고 회복을 하면서 치솟는 힘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포미닛이란 팀이 추억이 되고 제 1막은 끝난 상황이었죠. 그 땐 제 힘으로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 때 느끼는 벽들, 포미닛과 권소현은 상황과 위치도 모든 게 다 다르구나를 실감하게 살았어요. 그래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고생하는 거야'라면서 살아가기 위한 힘이 나오더라고요."


그는 이제 스스로 '배우 권소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자신이 정한 테두리에서 나오니 연기에 대한 재미와 욕심이 더 커졌고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게 됐다.


"최근에 한 경험인데요, 리허설을 하면서 진짜 감정이 실리더라고요.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저를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너무 짜릿하더라고요. 그리고 '진짜의 순간'을 카메라가 담아줄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부담을 가진 일을 해냈을 때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 순간이 자주 오지는 않지만, 너무나 짜릿하기 때문에 연기를 계속 하고 싶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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