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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드’ 꿈꾸는 시니어②] “영화 한 편 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입력 2022.12.09 10:53 수정 2022.12.09 10:53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식당 주문도, 영화 예매도 모두 '기계'로

시니어층 디지털 소외 심각...자녀 손 빌려야

“우리는 기계 있으면 안 가부러. 사람이 갖다주는 곳으로 가자. 기계 못 만지면 돈 있어도 못 먹는 거 아니여. 뭘 눌러야 된다매. 근데 그게 내 맘대로 안 돼. 자존심 상하잖여. 진짜 우리에게 맞지 않는 세상이 돌아온가비다.”


유명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출연한 영상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의 한 부분이다. 평소에 호탕하고 거침없는 박 할머니지만 영상엔 키오스크로 햄버거를 주문하며 쩔쩔매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말례 할머니 유튜브 ⓒ박말례 할머니 유튜브

할머니는 작은 글씨를 읽지 못 해 마시고 싶던 콜라 대신 커피를 주문하고, 불고기 버거를 주문하고 싶었으나 키오스크에서 제공되는 버거의 그림이 너무 작아 불고기 버거를 찾지 못했고, 결국 다급한 마음에 치킨버거를 고른다. 먹고 싶었던 감자튀김도 ‘프렌치프라이’가 무슨 뜻인지 몰라 결국 사지 못했다. 그마저도 시간초과로 수차례 시도 끝에 겨우 주문에 성공했다.


“야 그거 먹을라면 돋배기 쓰고 영어공부 하고 의자 챙기고, 키 큰 사람들은 상관없고. 그리고 카드 있시야 된다!”라며 힘겨운 주문을 마친 박 할머니의 말에 사람들은 크게 공감했다.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기기들을 잘 다룰 줄 아는 청년층도 본인의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들이 노년층에 접어들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도태되지 않고 적응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충남의 한 시골마을에 거주 중인 한 부부는 최근 인천 딸 내외의 집에 머물면서 디지털화된 시대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박씨(64세·남)는 일주일에 두 번, 인천에서 서울로 오가야 하는 일정이 매우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순간부터 진땀을 뺀다”는 그는 “병원 지하에 있는 식당이 기계로 주문을 해야 해서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에 라면을 먹는 것이 속 편하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도전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박씨는 “대충 그림만 보고 메뉴를 선택하고 겨우 결제를 했는데 뭐가 잘 못 눌렸는지 같은 음식이 두 개가 나왔다. 또 한 번은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기계 앞에서 당황할까봐 줄에서 이탈해 편의점과 빵집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도 많다”며 키오스크 주문에 혀를 내둘렀다.


육아에 지친 딸을 위해 보양식을 직접 해주겠다는 조씨(62·여)는 집 근처 마트를 찾았다가 겪은 일화를 전해주기도 했다. 재료들을 모두 담고 계산대에 줄을 섰는데 “여기서 계산하면 더 빠르다”는 직원의 손짓에 따라 자리를 옮겼다. ‘셀프 계산대’였다. 조씨는 “대충 옆자리에서 계산하는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따라한다고 했는데 결국 직원의 도움으로 겨우 결제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뉴시스 ⓒ뉴시스

사위의 도움으로 미리 예매하고 간 영화관에서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미 과거 영화관 키오스크의 매운맛(?)을 경험했던 이 부부는 “사위가 미리 예매를 해주고 내 휴대전화에 영화관 어플을 다운받아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줬다”면서 “순조롭게 입장할 수 있단 자신감에 차있었지만 막상 어플에서 예매된 티켓을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알 수 없어 사위에게 몇 번이고 전화해 설명을 다시 들었다”고 했다. 결국엔 입장 직전 티켓을 검수하는 직원이 직접 찾아서 확인해준 끝에 원하던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이밖에도 주변 시니어층이 겪은 디지털 소외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더구나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필요한 만남은 온라인에서 진행한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편리한 디지털 서비스가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어려운 벽이 될 수도 있다.


음식점이나 카페, 영화관의 언택트 서비스 기기를 제외하고도 은행 업무나 병원 등의 서류 발급 또한 키오스크나 휴대폰 앱을 사용해 무인으로 전환된 지 오래이다. 콘서트나 야구 등을 보고 싶어도 자녀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예매조차 어려운 디지털 사회의 취약계층, 특히 고령층의 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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