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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죽음에 매몰찼던 이재명, 이태원 명단공개가 추모인가 [김하나의 기자수첩]


입력 2022.11.15 07:02 수정 2022.11.15 07:04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군부 독재 시절 열사 죽음에 부채의식…빚진 마음이 사회 참여 원동력

민주화 이후 추모는 사회 저항운동…이태원 참사, 정치권이 유족 호명

'진지한 추모' 위해 이름, 얼굴 다 공개하라?…몰라도 시민들 추모 진지

이재명 충성 다한 고 김문기 죽음엔 매몰차…유족 "우리 이용하지 말라"

5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시청역 인근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 촛불' 집회에서 시민들이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5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시청역 인근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 촛불' 집회에서 시민들이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1987년 엄혹한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하다 죽음을 맞은 이들을 열사라고 부른다. 군부 독재 시절 나의 생존은 열사의 죽음과 별개일 수 없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열사의 죽음에 부채의식을 가졌다. 그 빚진 마음이 사회 참여의 원동력이 됐고, 결국 민주화를 불러왔다. 열사를 더 이상 호명하지 않게 된 민주화 이후에도 누군가의 죽음은 사회 변화의 도화선이 됐고, 집단적인 애도는 사회 저항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앞장서서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고, 야권 정치인들은 합세해 단식 농성을 벌이며 정부를 거세게 압박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정치권이 앞장서서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들을 호명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추모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휴대전화 속 '희생자 명단 확보' 관련 메시지가 포착됐다. 해당 메시지엔 "유가족과 접촉을 하든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전체 희생자 명단, 사진, 프로필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희생자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라며 촛불까지 거론하며 장외 투쟁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 대표는 명단 공개를 통한 '진지한 추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시청역 인근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5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시청역 인근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그러나 이름과 나이, 얼굴, 살아온 삶까지 모두 알아야지만 '진지한 추모'일까. 적어도 기자가 조문 현장을 찾아 만난 시민들의 추모 태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죽은 아이들이 모두 애달파 손자, 손녀 같다"며 추모를 위해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왔다는 70대도, 아이들이 불쌍하니 국화 대신 예수님 십자가를 놔주고 싶다며 훌쩍이던 80대도, 비가 쏟아지면 추모 물품이 젖을까봐 전날 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놓인 물품을 2시간 동안 비닐로 꽁꽁 감쌌던 자원봉사자 A씨도, 추모에 한없이 진지했다. 시민들은 단순히 숫자의 죽음을 애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태원 참사 추모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 대표는 정작 부하직원의 '극단적 선택'엔 상당히 매몰찼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불거지며 수사를 받던 중 숨진 채 발견된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처장의 유족은 이 대표가 "8년 동안 충성을 다하면서 봉사한 아버지 죽음 앞에 조문이나 어떠한 애도의 뜻도 안 비쳤다"고 말했다. 유족은 "아버지의 마지막 발인 날 이 대표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입고 나와 춤추는 모습도 보였다"며 "이 모습을 TV를 통해 보신 80대 친할머니가 오열하고 가슴을 치며 분통해 하셨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 의원총회에서 얼굴을 만지고 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 의원총회에서 얼굴을 만지고 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유족을 대하는 태도가 일관되지 못하다보니 언행의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한 이태원 참사 유족은 언론을 통해 "진짜로 (명단 공개를) 강행하면 국회를 찾아가서라도 뜯어말릴 것"이라며 "제발 정치권은 우리를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멋대로 '진지한 추모'를 요구하기 전에 유족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먼저다. 길거리로 나와 울부짖고 저항하는 유족을 기대하며 정치권이 유족을 호명한 것은 아닌지, 고인들의 삶이 하나하나 공개돼 추모 시민들의 슬픔이 정부를 향한 분노로 이어지길 바란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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