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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이 하고만 친구할 거야”


입력 2022.09.19 07:07 수정 2022.09.19 06:52        데스크 (desk@dailian.co.kr)

합의하고 약속할 상대 따로 있지

“백날 천날 제재를 가해보라 하라”

안보 정책의 모호성 걷혀서 다행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2018년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데일리안 DB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2018년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데일리안 DB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워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한 말이다. 그 회담의 추진위원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의 생전·사후에 걸친 각별한 인연으로 대통령이 되는데 성공했다. 노 전 대통령의 충실한 후계자임을 과시하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문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이념적 코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이념공동체 이미지를 과시했다.

합의하고 약속할 상대 따로 있지

그는 2018년 2월의 평창동계올림픽을 김정은과의 화친을 위한 결정적 계기로 인식한 듯했다. 핵장난을 하다가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몰린 김은 문 전 대통령의 애절한 손짓에 호응,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당시)·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당시) 등이 이끄는 고위급 대표단을 서울에 보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성사됐고, 문 정권은 세상을 다 얻은 양 했다.


이후 남북관계, 정확히는 문·김 관계는 급속히 밀착해 갔다. 그해 4월 27일 판문점 우리 측 자유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경계선 앞에서 기다리던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손을 잡고 남북 양 지역을 넘나드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정상회담 후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화’, ‘연내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등을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렸다. 도보다리에서 두 사람만의 대화시간을 가지면서 그는 내용을 밝히지 않은 USB를 김정은에게 전하기도 했다. 그 회담의 환희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그는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행사를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도보다리의 산새들에게’까지 안부를 물었다.


그해 6월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까지 성사되자 문 대통령은 그 여세를 몰아 남북의 분단선을 일거에 허물어버릴 기세로 김정은에게 다가갔다. 9월 19일의 평양 5·1경기장 연설이 그에게는 그야말로 일생의 광영이었을 법하다. 15만 명에 이르는 북측 인민을 앞에 두고 연설할 기회를 갖게 되다니!


‘남쪽 대통령’으로 자처한 그는 감격에 겨워 김정은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 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

그 합의의 일환으로 ‘9·19군사합의서’라는 것을 만들어 서명하기도 했다. 핵심은 우리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군사분계선 일대의 정찰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핵 및 미사일 개발·시험 금지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우리의 손발과 눈귀만 묶고 가리기로 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후 퇴임직전까지도 ‘종전선언’을 국내외에서 주문 외듯 했다. 그런다고 개과천선할 김정은 집단이 아니다. 김정은과 북측 권력집단의 본질과 속성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그게 그 체제의 생존조건이기 때문이다. 그걸 몰랐을 리 없는 문 전 대통령이 왜 그처럼 기를 쓰고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려 했는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백날 천날 제재를 가해보라 하라”

김정은은 혹시라도 국제사회가 문 전 대통령처럼 자신을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지도자’로 오판할까봐 아예 쐐기를 박고 나섰다. 그는 74주년 9·9절(북한 정권 수립일)의 전날인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 물도 없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노리는 목적은 우리 정권을 어느 때든 붕괴시켜버리자는 것이다. 나라의 생존권과 국가와 인민의 미래의 안전이 달린 자위권을 포기할 우리가 아니다.”

“백날, 천날, 십년, 백년을 제재를 가해보라 하라.”

그날 최고인민회의는 핵무력 정책‘을 법령으로 채택했다.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김정은이 명령하면 어떤 경우에든 핵무력을 사용하겠다는 협박이다. 물론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러자고 수십 년을 고생해 가며 핵을 개발해 온 것이니까. 다만 종전보다 좀 더 명확히 의도를 드러내 보였을 뿐이다.


이런 판에 문 전 대통령은 18일, 윤석열 정부를 향해 북한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정상선언, 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 등은 모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역지사지하며 허심탄회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만들어낸 역사적 합의들이다.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들이다.”

“대화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모든 대화의 출발점은 신뢰이다. 신뢰는 남북 간에 합의한 약속을 지키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는 다음날(그러니까 오늘) 국회 한반도 평화포럼 주최로 열리는 ‘9·19 군사합의 4주년 기념 토론회’ 서면 축사에서 마치 우리가 합의나 약속을 저버린 양 훈계와 주문을 쏟아냈다. 그런데 ‘역지사지’라니? 문 전 대통령의 생각이 그랬다는 것인지 김정은이도 그런 마음가짐이었는지부터 분명히 할 일이다. ‘허심탄회’는 또 뭔지 모르겠다. 김정은이 핵문제와 관련, 터놓고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대화를 할 상대이던가?

안보 정책의 모호성 걷혀서 다행

북한과의 사이에 ‘대화’는 문제해결과 무관한, 별도의 의미 없는 프로세스이다. 그간의 경험이 입증해 준 바가 그것이다. 신뢰가 전제된 대화는 없었다. 우리는 애걸의 수단으로, 북한은 협박의 수단으로 대화의 테이블이라는 데 마주 앉았을 뿐이다. ‘역사적 합의’도 과한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7·4남북공동성명은 배경 여하 간에 ‘역사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 외의 합의들은 역대 좌파 정권의 일방적 양보나 약속이었던 것 아닌가? 왜 그 짐을 바뀐 정부더러 지라고 하는지 설명부터 좀 들었으면 좋겠다. 약속이나 합의라는 것을 상대방의 일방적인 의무로만 인식하고 행동해온 게 북한집단이다. 우리 정부가 뭘 이행해야 한다는 것인가.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은 좌파 대통령 3대의 대북 약속에 크게 구애되지 않을 것 같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미국과 함께 마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것으로 뉴욕타임스(NYT)가 18일 보도했다. 그는 지난 14일 이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확장된 억제력을 강화할 방안을 찾고 싶다. 확장된 억제력에는 미국에 있는 핵무기뿐 아니라 북한의 핵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의 패키지가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해 “교실 안에서 특정의 한 친구에게만 집착하는 학생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NYT는 그가 문 전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들을 ‘정치적 쇼’라고 평가해왔던 사실도 지적했다. 윤 대통령에게는 문 전 대통령의 안보 및 대북정책을 계승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주 다행스럽다. 김정은에게 헤픈 웃음을 보내는 것보다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월등히 유효한 안보정책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도사 같은 풍모(?)와 표정으로 ‘평화의 전사’연 하는데 이제껏 책임 져본 바 없고, 앞으로 책임질 수도 없는 일을 훈수하듯 압박하듯 하는 게 썩 안 좋게 여겨진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5000만 국민의 생사 문제를, 김정은과만 의논하고 합의하고 약속하겠다는 사람의 뜻에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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