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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주범 ‘엘’ 이외 공범 더 있다”…‘제2 n번방’ 수사 속도전


입력 2022.09.06 03:04 수정 2022.09.05 19:07        이수일 기자 (mayshia@dailian.co.kr)

8월 전담수사팀 꾸려…남구준 “SNS 협조 얻어 진행, 성착취물 소지자도 수사”

방통심의위, 엘 관련 성착취물 523건 접속 차단

온라인 수색 도입 필요성 제기…이원상 교수 “위장수사 단점 보완”

경찰청 ⓒ데일리안 DB 경찰청 ⓒ데일리안 DB

경찰이 해외 소셜미디어의 협조를 얻어 ‘제2 n번방’이라 불리는 ‘엘 성 착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계가 수사를 맡으면서 진행이 더뎠는데, 최근 경찰이 전담수사팀을 구성한 뒤 수사인력을 늘리며 용의자 추적에 속도를 내고 있다.


5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이 텔레그램·페이스북 회사에 협조 요청을 한 결과 텔레그램은 한계가 있었지만, 페이스북 측은 협조하기로 했다. 해외 SNS 미디어업체와의 협조를 통해 가해자 색출에 속도를 내기 위함이다.


이번 사건은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 피해를 본 한 미성년자가 지난 1월 추적단 ‘불꽃’ 측에 피해 사실을 알려오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추적단 불꽃 활동가인 원은지씨(활동명 ‘단’)에 따르면 미성년 피해자 수는 6명이며, 이들 이외에도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다른 디지털 성범죄 피해지원 단체 ‘프로젝트리셋’(ReSET)에도 피해 의심 사례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엘’은 2019년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뒤 300개 이상의 성 착취물 영상을 제작·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텔레그램을 이용해 여성들을 유인·협박 후 성 착취물을 제작한 ‘n번방 사건’과 유사해, ‘제2 n번방’으로도 불리고 있다.


문제는 피해자 중 1명이 지난 1월 경찰에 피해 신고했지만, 성 착취가 지속됐다는 점이다. n번방 방건의 주범인 조주빈·문형욱 등이 검거되던 2020년도부터 2021년까지 성 착취는 이어졌다.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경찰은 지난달 31일이 돼서야 전담수사팀(TF)을 꾸렸다. 수사팀은 기존 1개팀에서 6개팀으로, 수사인력이 6명에서 35명으로 늘렸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초로 파주경찰서에 신고 될 당시 유포와 관련한 정황이 명확하지 않아 여성청소년과에서 계속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성 착취물 제작 단계까지만 파악된 경우) 사이버수사팀과 여성청소년과 간 관할이 애매한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성 착취물을 다루는 텔레그램 대화방이 장기간 유지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개설됐다가 폐쇄되는 일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기존의 n번방 사건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보고 있다. 특히 주범 엘 이외에 공범이 장기간 조직적으로 범행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유포자뿐만 아니라 이를 시청하고 소지한 자들도 적극 수사하는 등 엄정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엘 관련 미성년 피해자 불법촬영 성착취물을 긴급심의해 지난달 31일부터 이날까지 엘 관련 미성년 피해자 불법촬영 성착취물 523건을 접속 차단했다. 해외 사업자에게 원 정보 삭제도 요청했다.


남구준(사진왼쪽)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남구준(사진왼쪽)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앞으로 경찰은 ‘제2 n번방’ 사건의 주범이 복수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협업해 피해자의 국선 변호인 선임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피해자 대책도 마련한 상태다.


학계에선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만큼, ‘온라인 수색’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온라인 수색은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스마트폰과 컴퓨터 같은 전자기기를 해킹한 뒤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해 실시간으로 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기법이다.


‘제2의 n번방’ 사건처럼 가해자가 경찰 수사를 피해 텔레그램 같은 SNS를 탈퇴하고 잠적해버리면 신분 위장수사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원상 조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비교형사법연구’ 7월호에 게재한 논문 ‘온라인 수색의 도입 필요성과 한계’를 통해 “범죄자와 연락이 불가능해 범죄 기회를 제공할 수 없거나, 범죄자가 범죄를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경우 위장수사를 할 수 없게 된다”며 “이런 단점을 온라인 수색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수색이 범죄자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어 ‘수사 밀행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도 봤다. 다만 온라인 수색이 기본권 침해 논란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충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상 교수는 “법원이 온라인 수색 등 특별수사의 시작과 끝에만 관여하는 것으로는 제대로 된 사법 통제가 어려울 수 있다”며 “법원에 특별수사에 대응하는 특별조직을 구성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온라인 수색의 적법성을 검토하는 연구용역을 지난 5월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온라인 수색 제도는 프라이버시 및 비밀침해 등에 대한 국민 우려가 큰 만큼, 법원 통제 절차 등 적절한 방법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일 기자 (mayshi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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