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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향기를 남기고③] “향수에 녹인 공연의 기억, 관객과의 영원한 매개체죠”


입력 2022.08.14 14:02 수정 2022.08.12 11:03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향수공방 ‘121르말뒤페이’ 김세훈 대표 인터뷰

서울 마포구 상수역 인근,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향수 공방 ‘121르말뒤페이’에는 자신만의 향수를 커스텀(custom)하기 위해 방문하는 손님들로 늘 북적인다.


향수 공방 '121르말뒤페이' 김세훈 대표 ⓒ121르말뒤페이 향수 공방 '121르말뒤페이' 김세훈 대표 ⓒ121르말뒤페이

100여 가지 이상의 향을 통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의 폭을 주고 싶은 고민에서 시작한 숫자 ‘121’, 그리고 향을 담는 향수병(香水甁,Perfume bottle)과 동음이의어의 향수병(鄕愁病,Nostalgia)의 프랑스어 ‘르말뒤페이’(Le mal du pays)를 합쳐 만든 상호명처럼 공방은 마치 ‘환상 속의 향수 도서관’인양 다양한 향을 담은 향수병들이 다양한 형태의 진열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놀라운 건 향수 공방을 운영 중인 김세훈 대표의 이력이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무대미술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 전공을 수료했다. 이후에는 ‘윤동주 달을 쏘다’ ‘화선 김홍도’ ‘필로우 맨’ ‘이방인’ ‘소리극 서편제’ 등의 뮤지컬과 연극, 무용, 창극 등의 무대 영상 디자인을 맡아왔다. 언뜻 보기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공연 무대 디자인과 향수를 두고 김 대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향도 보이지 않는 하나의 재료’라고 생각하거든요. 매번 새로운 예술재료에 대한 도전을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평면예술인 동양화를 했었고, 차차 입체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어 무대미술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어요. 그리고 무대가 갖는 시공간적 한계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영상디자인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다양한 매개체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를 더 배워보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요. 당시에 호기심을 가졌던 재료들로 제 영역의 소재를 확장시켰고 제 작업이 변경됐다기 보다 구체적인 재료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추상적인 표현 영역으로 작업을 확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지금 다루는 ‘향’이란 영역은 더 무형적인 재료로 발전한 것이고, 제 사회적 경험이 더해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공감할 수 있는 사업적인 영역으로 구체화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공연에는 미각, 촉각, 후각 까지 사용하는 오감의 재료로 시도되어진지 오래에요. 관객의 눈앞에서 음식을 만드는 공연, 관객이 직접 참여하며 만질 수 있는 퍼포먼스, 거기다 중요한 클라이맥스 씬에서 향기가 연출되는 공연이라면 관객에게 정말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121르말뒤페이 ⓒ121르말뒤페이

네이버 데이터랩 검색어 트렌드에서 ‘향수공방’을 검색하면 시기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2016년부터 2020년 사이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향수공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검색량 뿐만 아니라 나만의 향수를 만드는 향수공방의 숫자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어다고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특히 121르말뒤페이에는 국내 고객들뿐만 아니라, 해외 고객의 비중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해외 연예인은 물론 “오직 이 가게에 오고 싶어서 한국 여행을 왔다”는 관광객도 있었다. 가수 윤딴딴도 121르말뒤페이를 찾아 공연의 향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자신의 콘서트에서 직접 선택한 향을 사용하고 싶다는 의도에서였다.


“향은 공연의 주제나 캐릭터의 성격을 전달할 수 있는 아주 적합한 창작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의 기억을 후각적으로 생생하게 되새김 할 수 있는 좋은 재료이기도 하고요. 공연이 끝나면 사실 그 상황을 기억에만 의지해야 하잖아요. 만약 뮤지컬 등의 공연에서 중요한 장면을 향으로 연출하고 향수를 출시하게 하게 된다면 공연의 기억과 관객 사이에 영원하고 특별한 매개체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또 공연 캐릭터와 관객간의 보이지 않는 페르소나의 연결 역할도 담당할 수 있고요.”


손님 중에는 뮤지컬이나 연극, 그림, 게임, 소설 등에 대한 캐릭터, 내러티브 향수를 만들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의 비중도 적지 않다. 실제로 김 대표는 뮤지컬을 관극하고 그 기억과 감정을 토대로 향수를 제작하기 위해 방문하는 한 모녀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121르말뒤페이 ⓒ121르말뒤페이

“물론 한 분 한 분 소중한 분이기에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지만,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뮤지컬을 좋아하시던 모녀 고객이었어요. 세 번째 즈음 공방을 방문하실 때 조심스럽게 여쭤봤더니 조승우 배우의 팬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조승우 배우가 연기했던 뮤지컬 캐릭터의 이름, 예를 들어 ‘헤드윅’ ‘지킬앤하이드’ ‘스위니토드’ ‘돈키호테’ 등을 적어놓은 후에 어울리는 향을 하나하나 심사숙고해 맡아보시고 캐릭터나 장면에 맞는 향이 맞는지 따님과 이야기를 나누세요. 또 가죽라벨의 색상까지 캐릭터나 포스터를 생각하면서 꼼꼼히 고르시는데, 자신이 진심으로 애정하는 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몰입하신 모습이 정말 좋아 보이더라고요.”


121르말뒤페이는 올해 상반기에만 의류 브랜드, 화장품, 카페, 디자인 제품 회사 등 여러 곳의 제안을 받아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국방부의 의뢰를 받아 대한민국 국군 향수를 제작하고, 컬러 렌즈회사 ‘하파크리스틴’과도 레이어드 향수를 개발했다. 또 규영 작가의 ‘희망을 버려요’라는 그림책의 캐릭터에 대한 굿즈를 향수로 제작하기도 했다. 다양한 방면으로 협업을 해왔던 김 대표는 공연계와의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저 역시 공연을 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해요. 오래전부터 뮤지컬 공연을 보거나 서사가 있는 책을 읽을 때 그 장면에 대한 향을 떠올릴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공연에서 후각 효과를 사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상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관객의 무의식에 관여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공연의 콜라보 향수를 제작한 경험은 없지만 아마 이 인터뷰를 계기로 많은 공연계에서도 많은 제안이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 만약 추후에 공연의 향디자이너라는 전문적인 포지션이 생긴다면 제가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향수에 대한 신념과 향후 목표도 전했다.


“뭔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함, 답답함 같은 것이 더 심해진 시대 같아요. ‘121르말뒤페이’에서 현대가 지닌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과 갈증, 향수병(鄕愁病)에 대한 심상을 예쁜 향수병(香水甁)에 담아 해소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시대에 나를 위해 자신에게 무언가를 선물한다는 것, 나의 새로운 페르소나를 연출하는 향을 만들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구체적인 목표는 앞으로 온라인 쪽으로 커스텀 향수 사업영역을 넓혀보고 싶어요. 그리고 해외에서 저희 가게에 대한 관심이 많은 만큼 해외로의 진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지속적으로 구체적 방법을 모색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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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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