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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고발 영화의 현재②] ‘공론화 시키고 법도 바꾸고’ 그리고 그 후


입력 2022.05.05 14:30 수정 2022.05.05 12:23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도가니',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 '도가니법' 쏘아올려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 사무소 반경 3㎞ 내 4개 읍·면에서 13∼71세 여성 10명을 상대로 벌어진 일명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했다. 엽기적인 연쇄살인으로 기억되며 장기 미제로 남았던 이 사건은, '살인의 추억' 뿐 아니라 많은 미디어에서 다루며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2006년 4월 2일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에도 경찰은 관련 제보를 접수하고 증거를 가리기 위한 수사를 진행했고,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 나올 때마다 복기됐다. 그리고 33년 만인 2019년 진범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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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교육 시설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의 끔찍한 실체를 고발한 '도가니'는 2011년 개봉 후 460만 관객을 동원하며 전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냈다. 대중들은 당시 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했고 결국 해당 학교의 법인 허가는 취소,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도가니법'을 세상에 태어나게 만들었다.


2011년에는 장애인 대상 2013년에는 모든 성범죄에서 친고 죄(범죄의 피해자 또는 기타 법률이 정한 자의 고소·고발이 있어야 공소할 수 있는 범죄) 규정이 폐지됐다. 이 역시 '도가니'로 촉발된 관심 덕분이었다. 피해를 입은 장애인들이나 이들의 부모조차 장애인이거나 가난한 경우가 많아 친고죄가 적용돼 신고가 어려운 현실을 영화에 녹여낸 바 있다.


2012년 개봉한 '한공주'는 2004년 경남 밀양에 있는 고등학생 44명이 울산에 있던 여중생 자매를 밀양으로 불러내 1년간 집단 성폭행한 일명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조명했다. 이 영화를 통해 당시 사건이 다시 재조명됐으며 가해자 가족이 어머니와 이혼한 피해자 아버지와 접촉해 합의를 해주면서 가해자 대부분은 '공소권 없음'으로 풀려난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또 집단 성폭행 가해자를 옹호했던 A 씨가 2010년 경찰 채용 시험에 합격해 2014년 경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A 씨가 근무했던 경찰서 자유게시판에는 A 씨를 해임하라는 글이 도배되기도 했다. 당시 밀양 경찰서 사건 담당자들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2차 피해를 준 발언을 한 것 역시 밝혀지며 문제가 됐다.


이처럼 영화는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오래된 사건일지라도 계속 수면 위로 올려 아픈 상처를 잊지 않도록 만든다. 그러나 영화가 가진 한계도 존재한다. 개봉 당시에만 화제가 되고 마는 휘발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사회고발 영화가 조성한 여론을 통해 문제점을 직시하고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서서히 관심에서 멀어진다.


‘도가니’ 개봉 10년이 지났지만,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하루 평균 약 1건씩 장애인 성범죄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방송에서 한 BJ가 지적장애인 여성을 강제 추행해 논란이 됐다. 이 BJ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부는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지난해에는 한 장애인 교육 시설의 교장이 장애인 학생을 1년 가까이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울산판 도가니'라고 불렸다. 장애인 성범죄 관련 제도가 개정되거나 신설되는 등 해당 범행을 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지속됐음에도 계속 문제가 되자, 경찰은 지난해 장애인 시설 대상 성폭력 예방활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공주’ 이후 미성년자 범죄와 관련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쏟아졌지만, 해당 콘텐츠가 화제가 될 때만 사람들은 관심을 가졌다. 미성년자 강간, 학교 폭력 등의 문제가 여전히 뜨거운 이유다.


그러나 문제가 반복되고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며 시대와 발맞춘 콘텐츠들이 제작되는 흐름이 생겼다. 예로 ‘아이들 장난’이라고 치부하던 학교폭력이 ‘범죄’라고 여겨지기 시작하며 미화나 면죄부의 여지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2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년심판'은 촉법소년(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14세 미만의 소년으로, 형사책임 능력이 없어 형벌이 아닌 '보호 처분'을 받는 법)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점점 교활해지고 잔혹해지는 청소년 범죄 심각성을 내밀하게 그리며, 소년 범죄를 남일처럼 여길 문제가 아닌,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걸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만 12세까지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최근 법무부가 관련 내용을 검토해 추진하겠다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하면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화’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가 소년 범죄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소년들을 교육하고 선도하는 것에 더욱 무게를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은 던져졌고, 이 문제를 정치권과 사회, 일반 대중까지도 모두 관심 있게 지켜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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