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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영화 뷰] 아이들 눈으로 본 전쟁의 비극, 누군가에게는 영화 아닌 현실


입력 2022.03.25 07:23 수정 2022.03.25 05:06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벨파스트', 케네스 브래너 감독 자전적 이야기

대중문화예술은 전쟁의 잔혹함과 잔인함을 다루면서 우리가 당연한 듯 살고 있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특히 전쟁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참혹한 비극을 가져다주는지 보여주기 위해 아이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는 보호 안에서 꿈을 먹고 자라야 할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으며 죄없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는 과정을 솔직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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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포함 7개 부문 노미네이트, 제46회 토론토영화제 관객상 등 전세계 영화상 38개 부문 수상을 수상한 '벨파스트'는 1960년대 후반 북아일랜드 도시 벨파스트 골목과 짝사랑하는 소녀, 가족이 전부였던 소년 버디(주디 힐)와 사랑스러운 한 가족의 이야기를 흑백 화면 속에 그려낸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은 비극의 한 순으로 알려진 벨파스트 종교 분쟁이 일어난 때다. 1969년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벨파스트는 당시 개신교와 천주교도들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종교 간 사는 구역도 나뉘어 있었고 서로에게 총과 대포도 쏘며 인명피해도 서슴치 않았다. 30년 동안 벨파스트 종교 분쟁은 3700명의 사망자를 낳는 상흔을 만들었다.

영화 속 주디 역시 이 때의 피해자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벨파스트란 도시가 가진 특성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아이들이 부모의 손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닌, 골목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손에 키워진다. 버디가 밥을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집을 가는 동안 어른들은 버디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으며 다정한 시선과 안부를 건넨다. 버디는 학교에 가서 짝사랑하는 소녀와 공부하는 것이 좋고,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서 학교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소년이지만 종교 분쟁으로 눈 앞에서 하루 아침에 망가진 벨파스트 골목을 목격하게 된다. 그래도 버디는 극장에 가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꿈을 키운다.


갈등이 끊이질 않자 버디의 아빠는 런던으로 이사 갈 계획을 세우지만, 버디와 엄마는 벨파스트 골목을 떠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버디의 엄마는 한 사건으로 인해 런던으로 떠날 결정을 한다.


이 작품은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유년시절을 담은 자전적인 이야기다. 벨파스트 출신인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어린 시절 목격한 종교 갈등 속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극장에 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꿈을 키운다. 영화는 흑백으로 진행하지만 버디가 보는 영화 속 세상은 다채로운 컬러로 연출됐다. 흑백은 지금의 어두운 현실, 영화는 버디가 꿈꾸는 세상을 은유하기 위한 설정이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실제로 벨파스트에서 보낸 자신의 유년 시절 추억과 벨파스트에 대한 향수, 그 곳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주인공 소년 ‘버디’의 시선으로 순수하게 그려내는가 동시에 시대가 낳은 피해자를 조명한다.


1997년에 제작된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도 세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명작으로 손꼽힌다. 극중 주인공인 아버지 귀도와 아들 조수아는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영문도 모른 채 수용소에 끌려간다. 귀도는조수아가 겁먹지 않도록 이 곳에 들어온 이유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우승자에게는 탱크가 주어진다는 거짓말을 한다. 조수아는 이 말을 끝까지 믿는다.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서 평범한 일상을 살던 귀도와 조수아가 학살의 피해자지만, 의지와 긍정, 그리고 유머로 이 고난에 매몰되지 않는다. 조수아가 아버지와 마지막 작별을 하는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으로도 꼽힌다. 아내를 찾아나선 아버지가 군인들에게 끌려가지만, 죽음 앞에서 게임이라고 믿고 있는 아들에게 사랑스러운 윙크를 한다.


이 영화는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로베르토 베니니), 음악상(니콜라 피오바니),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제5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히틀러로 인해 독일인들에게 학살당한 유태인들의 시점으로 그려졌다면, '줄무늬 파자를 입은 소년'은 독일인 소년과 유태인 소년의 눈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독일인 장교 아버지를 뒀지만 외로웠던 소년 브루노와 줄무늬 파자를 입은 소년 슈무엘이 철조망 사이로 우정을 나누지만, 시대는 두 소년을 정 반대로 위치로 가져다 놓는다. 서로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두 소년의 모습은 증오와 폭력을 반복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대비돼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들이 마냥 과거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건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24일 새벽,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면 무력 침공을 감행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러시아 군대는 우크라이나 유치원, 병원 등을 비롯해 민간인들이 사는 곳에 폭격을 가했고 많은 사망자와 사상자를 내고 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은 가족과 강제 이별을 하고, 주변인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지금의 비극의 컷을 외쳐줄 감독이 잆다. 전쟁 영화를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감상할 수 없는 이유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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