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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입력 2021.12.10 08:46 수정 2021.12.10 08:47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나는 엄마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엄마를 돕지 않으면 난 사내도 아니지....”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이런 문구와 함께 시작된다. 과연 사내답게 사는 게 무엇일까. 이 영화를 연출한 제인 캠피온은 영화 ‘피아노’에서 19세기말 당시 자신의 삶에 결정권을 가질 수 없음은 물론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던 여성들의 주체적 사랑을 그려낸 감독이다. 이번에는 1925년 몬타나 카우보이 목장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성 정체성을 주제로 한 신작을 내놓았다.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구약 시편 22편, 20절”을 인용한 제목 ‘파워 오드 도그’는 개의 세력이란 뜻이다. 목장에서 소들을 관리하는 남자들의 무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당시 남자들의 거친 남성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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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는 필(베네딕틱 컴버배치 분)은 막대한 재력은 물론 위압적이고 거친 남성의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공포와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어느 날 그의 동생 조지(제시 플리먼스 분)가 식당을 운영하는 로즈(키얼스틴 던스트 분)와 그의 아들 피터를 가족으로 맞이하자 필은 이에 분노하고 피터를 볼모로 로즈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영화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라고 말한다. 필은 모든 카우보이의 우두머리이자 황야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최고의 리더로 마초 중에서도 상마초다. 제목에서 의미하는 바처럼 사납고 강렬하고 위험한 동물적인 본능을 지닌 인물이다. 목동들 앞에서 소의 거세를 거침없이 시연해 보이며 사람들에게 자존심 상할 거친 언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괴팍하고 거친 성격에 일자무식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문학과 예술을 탐미하는 예일대 출신의 지성인이다. 그리고 그는 내면에 존재한 또 다른 성정체성으로 피터에게 다가간다. 반면에 피터는 깡마른 몸에 연약하고 섬세하고 세심한 모습을 지녔지만, 의대를 진학한 그는 죽은 동물을 해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심지어 엄마를 괴롭힌 필에게 탄저병을 옮겨 복수한다. 우리는 겉모습만으로 성 정체성을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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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영화의 전형성을 벗어 던진 영화다. 지금까지 서부극은 전통성에 묶여 남성들의 전유물 또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장르로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최근 유명한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퍼스트 카우’와 ‘파워 오브 도그’ 모두 그동안의 서부영화와는 결을 달리한다. 특히 ‘파워 오브 도그’에서는 광활한 초원 위에 펼쳐지는 초극세사의 부드러움과 거친 카우보이들의 와일드함이 우아하게 직조되어 있다. 여기에 미국 몬태나의 광활한 초원과 황량하고도 드높은 구릉을 비추며, 영화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관객을 옭아매며 스릴러의 면모도 보여준다. 광활하고 압도적인 미장센과 지극히 섬세한 관찰이 동시에 엿보이는 새로운 타입의 대안적 서부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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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의 폐해도 보여준다. 동생을 유혹해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필은 동생의 아내인 로즈를 정신적으로 괴롭혀 결국 알코올 중독에 걸리게 만든다. 필은 가스라이팅을 통해 로즈 스스로가 타락하고 수렁에 빠지게 만든 것이다. 영화는 가스라이팅이 연인관계뿐만 아니라 군대, 직장, 학교, 가족 등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생존하자면 거칠고 위압적인 남성적인 성정체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는 외면과 다른, 섬세하고 약한 또 하나의 정체성이 있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경쟁적이고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을 조명하고 있으며, 개인보다 집단사고를 유도하는 우리 사회의 가스라이팅 위험성을 지적하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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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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