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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의 저작권법은 선진국 수준인가?


입력 2021.12.02 13:03 수정 2021.12.02 13:04        데스크 (desk@dailian.co.kr)

최근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거나 G8의 반열에 올랐다거나 하는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성장했고 이제는 문화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니 일견 맞는 말 같지만 필자가 일하는 분야의 상황은 다르다. 후진국이라고 말해도 손색없을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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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3년에 가수로 데뷔해 작곡가 생활을 겸해온, 이른바 케이팝(K-POP) 업계의 사람이다. 그리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정회원으로, 협회 내의 분과 위원회 활동을 통해 한국의 음악저작권이 직면한 문제들을 수년간 보아 왔다. 특히, 저작권법 29조 2항과 105조 9항은 당황스러운 수준이다.


저작권법 29조 2항은 “청중이나 관중으로부터 해당 공연에 대한 반대급부를 받지 않으면 상업용 음반을 재생 할 수 있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쉽게 말하면 커피숍 등에서 음악 재생을 통한 다른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틀어도 된다는 이야기다.


이게 도대체 말인가 막걸린가. 장사하는 곳에서 음악을 트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장사에 도움이 되니까 트는 거다. 당연히 공연사용료(공공장소에서 음악을 재생할 때 내야 하는 저작권료)를 내야 한다. 참고로, 세계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인 S사는 이 법을 악용해 한국에서 저작권료를 1원도 내지 않는 신화를 만들었다.


공연사용료에 대해 무지 할 수밖에 없는 지인들은 간혹 이런 질문도 한다. 음원사이트에 돈 내고 음악 트는 건데 무슨 저작권료를 또 내냐고. 아무리 ‘내돈내산’ 음악이라도 그걸 공공장소에서 틀면 공연사용료를 내야 하는 게 전 세계적인 룰 인데, 그걸 일반 대중들이 알 리가 만무하다. 현실이 이런데, 나라가 법이라도 제대로 만들어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주어야 하는데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2018년에 와서야 매장의 음악 사용에 대해 공연사용료를 징수하라는 문체부의 결정이 있었는데, 그 가격이 또 놀랍다. 매장당 2000원. 포르투갈 같은 나라도 매장당 2만원에 달하는 공연사용료를 내는데 한국은 2000원이다. 경제와는 무관하게 축구 잘하는 나라일수록 공연사용료가 높은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저작권법 105조 9항은 음악저작권협회가 모든 일에 있어 문체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명시한 조항이다. 저작권협회가 회원들의 투표나 의결을 통해 정책과 징수 방안을 마련해도 문체부가 승인해주지 않으면 행할 수 없도록 해 놓은 것이다. 업계에선 이것을 ‘승인제’라고 부른다. 매장당 2천 원만 받으라는 문체부의 결정을 저작권협회가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우선 이 ‘승인제’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두 곳 있음을 알려드린다. 하나는 한국이고 하나는 중국이다. (부분적 승인제를 유지하는 일부 국가 제외) 사회주의와 독재, 코로나 등 연일 빅뉴스를 제공해주는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니 감회가 새로운 부분이다.


승인제가 버티고 있으니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 음악의 가격을 결정하지 못한다. 재밌지 않은가? 물건의 가격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음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버스요금이나 지하철 요금 등 공공재는 국가의 통제를 받기도 한다. 음악의 가격을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음악도 공공재인가보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국가는 왜 음악 작가들에게 국고보조금을 주지 않는가?’


저작권료로 수억을 번다는 것은 협회 내 정회원, 그중에서도 극소수의 이야기다. 저작권협회 4만 회원 중, 3만 9000여 명의 음악 작가들은 준회원이며, 대부분의 준회원 작가들은 곤궁한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어 다른 직업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지금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음악에 집중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많은 명곡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저작권법이 작가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케이팝의 위상에 맞는 엄청나게 진보적인 저작권법을 갖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다른 나라들만큼만. 딱 그만큼만 갖추어 달라는 말씀이다.


이시하 (더 크로스 멤버, 작곡가)


*외부인의 기고나 칼럼은 데일리안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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