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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대중문화①] 변방서 자기혐오·성적 소비→이제는 극의 중심으로


입력 2021.11.16 14:00 수정 2021.11.17 14:17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사회적 인식·정체성 드러내는 목소리의 움직임

BL 웹드, 젊은 세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과거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는 주인공의 독특한 주변인, 혹은 정체성을 고민하며 방황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미디어에서 여장을 한 개그맨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했고, 성소수자는 문란한 대상으로 소비됐다. 아예 그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또 주인공이 아닌, 그 주변 인물에서 그치며 극의 양념을 치는 도구로도 이용됐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마스카라', '내일로 흐르는 강', '다만악에서 구하소서', '이태원 클라쓰', '왕의 남자' 스틸컷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마스카라', '내일로 흐르는 강', '다만악에서 구하소서', '이태원 클라쓰', '왕의 남자' 스틸컷

그럼에도 퀴어물을 꾸준히 만드는 이들의 시도와 고민, 그리고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가 현재 퀴어물이 어느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닿아도 낯설지 않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미디어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성소수자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또 다른 창구로 변화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최초 퀴어 영화로 공식 기록된 작품은 1996년 개봉한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이다. '내일로 흐르는 강'은 서울을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모습이 재현되고 종로 뒷골목에 있던 게이바가 등장한다. 한국 퀴어 영화사는 성소수자들이 온전히 주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분기점을 '내일로 흐르는 강'으로 꼽고 있다.


'내일로 흐르는 강' 뿐만 아니라 고(故) 이훈 감독의 '마스카라'도 1990년대에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하리수가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예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전에 이훈 감독이 트랜스젠더 배우 하지나를 캐스팅해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인물의 연기를 시켰다.


이 시기는 성소수자 운동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93년 초동회라는 성소수자 모임이 결성됐고, 이 모임을 기점으로 남성 동성애자 인권연대 친구사이, 여성 동성애자 인권연대 끼리끼리가 출범했다. 이후 PC 통신 동호회를 중심으로 성소수자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화와 사회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에는 연예인 홍석천이 커밍아웃하며 성소수자란 존재가 사회에 조금 더 알려졌다.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압도적이었다. 홍석천은 출연 중이던 MBC '뽀뽀뽀'에서 퇴출당하고 3년 동안 방송활동을 하지 못했다. 이후 김수현 작가의 SBS '완전한 사랑'을 통해 복귀했는데, 동성애자 디자이너로 존재감은 확실했지만 활용에서는 아쉬웠다.


그래도 편견을 깨는 시도는 계속됐다. 이준익 감독은 연산군과 광대의 금기된 감정을 담은 '왕의 남자'로 2005년 당시 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김수현 작가는 2011년 SBS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게이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당시 시청자들이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불편하게 받아들이며 항의가 빗발쳤지만 다양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했다.


이외에도 영화 '쌍화점'(2008), MBC'개인의 취향'(2010), SBS '시크릿 가든'(2011) JTBC '선암여고 탐정단'(2015) 등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를 꾸준히 다뤘다. 지난해 JTBC '이태원클라쓰',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은 트랜스젠더, 게이 캐릭터를 극 중 핵심 인물로 등장시켰고 최근에는 tvN '마인'이 주인공을 레즈비언으로 설정해 서사를 부여했다. 특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극중 인남(황정민 분)이 목숨을 걸고 납치범에서 구한 딸 유민(박소이 분)을 트랜스젠더 유이(박정민 분)에게 맡기며 죽음을 맞는다. 이는 출산이 불가능한 트랜스젠더와 아이가 새 가족 형태로 재편되며 성 정체성을 향한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연대했음을 보여줬다.


ⓒ'나의 별에게', '마이 스윗 디어', '류선비의 혼례식', '컬러러쉬' 포스터 ⓒ'나의 별에게', '마이 스윗 디어', '류선비의 혼례식', '컬러러쉬' 포스터

지난해부터는 웹드라마에서 BL 장르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가 국내를 중심으로 동남아 시장에서 사랑받자 '나의 별에게'는 시즌1에 이어 시즌2까지 제작을 확정했다.


이외에도 '마이 스윗 디어', '컬러러쉬', 플로리다 반점', '새빛 남고 학생회', '류선비의 혼례식', '위시 유' 등이 10~20대들에게 인기 콘텐츠가 됐다. 성소수자가 억압을 받던 시대가 아닌, 이들을 평범하게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시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은 남자들의 사랑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열광했다.


성 정체성을 고민하며 방황하는 인물이 주가 됐던 흐름도 김조광수 감독이 신작 ‘메이드 인 루프탑’ 통해 변화를 줬다.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게이들을 취재했다는 김조광수 감독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거나 고민하는 등 자기혐오적인 모습들이 무겁게 그려졌던 과거와 달리 이미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연애를 고민하는 모습을 ‘메이드 인 루프탑’에 담았다.


분명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이들에게 많은 선택지가 놓여있는 건 아니다. 1996년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 개봉 당시, 성소수자들은 직접적인 키스신이 아닌, 손을 마주하는 모습으로 키스를 비유하는 장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동성애의 성행위를 재현하는 데 있어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었다.


26년이 흘렀지만 작품의 제목을 바꿔 현재에 대입해도 이질감 없는 뉴스가 된다. 2015년 방송한 JTBC '선암여고 탐정단'도 여고생들의 키스 장면이 전파를 타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 제5호,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 제1항을 위반했다는 다수 의견에 경고를 의결했다. 올해 2월에는 설 연휴 당시 SBS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TV 최초 방영하며 동성 키스신을 삭제해 성소수자 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SBS가 결정한 '보헤미안 랩소디' 키스신 삭제와 모자이크 처리에 대해서는 인권위원회가 "성소수자 집단을 향한 부정적 관념과 편견을 조장하거나 강화할 수 있으므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한다"라고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김조광수 감독은 "지상파에서 아직 지레 겁먹고 있다고 생각 한다"라며 “이성애 키스는 보여줄 수 있지만 동성애 키스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차별인데 그걸 차별로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사회적 분위기와 인식 개선에 따라 이들을 활용하는 의식도 진일보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성소수자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도 깨졌고, 이들의 캐릭터 빈도수와 비중도 늘어났다. 하지만 다른 이성애 캐릭터와 함께 조금 더 일상적으로 그려지고 다양한 장르 안에서 성소수자가 등장할 때, 한국 미디어는 차별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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