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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⑯] 참말을 해도 거짓말이 되는 영화 ‘내일의 기억’


입력 2021.10.13 14:01 수정 2021.10.14 13:33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서예지. 영화 '내일의 기억' 스틸컷 ⓒ이하 ㈜아이필름코퍼레이션·CJ CGV 제공 배우 서예지. 영화 '내일의 기억' 스틸컷 ⓒ이하 ㈜아이필름코퍼레이션·CJ CGV 제공

반전 있는 이야기를 싫어하기는 어렵다. 반전이 있다는 입소문에 영화를 봤는데 기대 이상, 상상 밖으로 전개되면 “재미있다”를 연발한다. 뻔히 예상되는 전개에 스스로 깔아놓은 밑밥을 영화가 끝나도록 회수하지 않는 무책임을 보이면 실망하다 못해 화난다. 영화 ‘내일의 기억’(감독 서유민, 제작 ㈜아이필름코퍼레이션·영화사 토리㈜, 배급 ㈜아이필름코퍼레이션·CJ CGV)은 어느 쪽일까.


블로그 의견이나 댓글을 보면 “설명이 너무 친절하다”며 아쉬워하는 분들, “그래도 떡밥은 제대로 회수했다” “심리 스릴러로서 충분히 재미있게 봤다”며 만족감을 표하는 분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다.


여자는 왜 남자의 말을 믿지 못 했을까 ⓒ 여자는 왜 남자의 말을 믿지 못 했을까 ⓒ

스릴러지만 두 사람, 수진(서예지 분)과 선우(김강우 분)의 상처에 새 살이 돋아가는 과정을 그린 심리 드라마인 만큼 관객과 두뇌게임을 벌일 정도의 파격적 반전만을 추구하는 것도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 의도했던 대로 제법 쫀쫀한 스릴러를 추구하면서도 출발선에서의 주제 의식을 잊지 않은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또 하나 만족스러운 지점은 ‘내일의 기억’이 스릴을 직조해 가는 방식이다. 무작정 숨기고 냄새만 풍기다 마지막에 한 방 터뜨리는 식도 아니고, 영상과 음향 등 시청각적 요소를 중심에 두는 것도 아니다.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의 선택에 시간의 뒤틀림을 더해 극에 긴장미를 부여하고 보는 이에게 혼돈과 착각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추리를 푸는 재미를 선사한다.


친절할 정도로 설명이 세세해서 김이 빠졌다는 분도 있는데, 과연 영화 초반부터 모든 이야기 설계 방식과 반전을 예상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추리에 능한 누구는 좀 더 빨리, 매 장면에 빠져 관람하는 누구는 조금 천천히 파악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충분히 재미를 즐길 만한’ 스릴러 장르의 미덕을 갖췄다.


기억의 수면, 여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지 못 했다 ⓒ 기억의 수면, 여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지 못 했다 ⓒ

먼저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부터 생각해 보면. 개인적으로는 시간대 트릭보다 훨씬 좋아하는 스릴 제조법이기도 하고, 심리 스릴러에 딱 맞는 방식이어서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 흔히 누군가는 거짓을 말하고 누군가는 참을 말하고, 우리는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모르므로 여러 가지 근거를 수집해 그를 찾아내 그의 말을 믿지 않는 방식으로 혹은 참말을 하는 이를 찾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비밀을 발굴한다.


그런데 ‘내일의 기억’은 모두가 참말을 한다. 이 중 누구를 믿어야 할지는 철저히 우리의 몫이다. 그 지점이 새롭고 오지게 재미있다. 모두가 참을 말하는데 누군가의 말은 거짓이 될 수 있는 배경에는 시간의 뒤틀림이 있다. 누구의 말을 믿을까의 선택과 시간대 트릭이 따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한데 얽혀 있는 게 이 영화의 묘미다.


시간의 뒤틀림 역시 알고 보니 하나의 시간대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시간대였다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시간대의 중첩은 기본, 공간과 인물까지 더해져 혼돈과 착각의 강도를 높인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영화 혼자 잘났다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수준으로 높은 건 아니고, 영화에 집중하면 그에 걸맞은 보람을 돌려주는 정도다. 원래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아른거리는 게 더 잡고 싶은 심리를 잘 활용했다.


배우 김강우, 스크린 안팎에서 '열일' ⓒ 배우 김강우, 스크린 안팎에서 '열일' ⓒ

참말이 시간과 공간의 상황에 의해 거짓말이 되는 작동 원리를 조금이라도 빨리 파악해 쏠쏠한 자부심을 챙기고 싶다면 대사에 집중하며 볼 수밖에 없다. 한 마디 한 마디 단서를 포착하는 마음으로 관람하다 보면 많은 명대사를 만난다. “네가 본 것, 다 진짜가 아니야”, “뭐가 진짜고 뭐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건지”, “항상 옆에 있을 거야,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항상”과 같은 대사들은 꼭 ‘내일의 기억’에 국한하지 않아도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어 있는 혼돈이고 사랑하는 이에게 주기를 또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뭐니 뭐니해도 ‘내일의 기억’ 명대사는 마지막에 있다. “그곳엔 저희의 기억이 있어요”. 이게 무슨 명대사냐, 어안이 벙벙하다고 항의할 수도 있다. 배우 김강우가 제안했다는 이 말을 눈시울 젖으며 듣고 싶다면 영화를 클릭하자. 영화 제목의 뜻, 과거를 기반으로 하는 기억이 어떻게 내일의 것일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웨이브(wavve), 티빙, 네이버 시리즈on 등에서 별도 구매해야 하는데, 대여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재미를 갖췄다.


기억의 창고. 내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 ⓒ 기억의 창고. 내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 ⓒ

전 남자친구의 소속사 이전 문제와 열애설 이슈 속에 가스라이팅 논란이 불거져 좋은 연기를 하고도 제대로 호평받지 못한 서예지, 언제나 열연을 펼치지만 아직은 흥행 운이 따라주지 않는 김강우, 남의 리듬을 탁탁 가로채 자신의 연기는 물론 영화를 맛깔나게 하는 박상욱, 차근차근 배우로 성장해 가고 있는 배유람,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김강훈의 어린이 시절까지 배우진도 탄탄한 ‘내일의 기억’.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는 건 어떨까. 인기 절정의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배우들을 만나는 보너스도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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