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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을 통해 다시 보는 ´섬김의 정치´


입력 2008.03.01 08:15 수정        

‘소년 박정희’ 작가 황천우 신작 ‘허균, 서른 셋의 반란’ 출간

사회적 한계 부딪친 허균·매창 입 빌려 차별없는 섬김의 정치 그려

허균과 매창. 명문대가 출신의 문장가와 명기였던 두 사람의 만남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매창이 부안 3절로 불리며 조선시대 대표적 여류시인이었다고는 하지만 ‘노류장화’라는 신분에 묶인 몸이었기에 두 사람의 인연은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허균, 서른 셋의 반란’(황천우, 이든북스, 300쪽) ‘허균, 서른 셋의 반란’(황천우, 이든북스, 300쪽)
‘허균, 서른 셋의 반란’(황천우, 이든북스, 300쪽)은 허균과 매창이 인연을 시작한 부안에서의 6시간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남녀가 6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더욱이 여성편력으로 관직을 박탈당한 전력이 있는 남자와 단 둘이 있는 상황이라면…그러나 ‘허균, 서른 셋의 반란’은 이상향인 율도국으로 상징되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허균의 혁명의 단초를 두 사람의 대화에서 찾는다.

이립(而立)을 넘어 여성이라는 굴레에 의해 꽃다운 나이에 쓸쓸히 진 누이 허난설헌과 서얼 출신으로 학문적 완성도에도 신분의 한계에 부딪쳤던 스승 손곡 이달의 한을 가슴으로 느낀 허균이 ‘혁명’을 꿈꾸게 한 또다른 인물로 매창이 등장하는 것.

물론 허균과 매창의 시작은 사대부와 기생이었다.

“나는 모든 인간을 똑같이 좋아한다오. 아니, 인간을 떠나서 이 자연을 이루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맞겠지요…(중략) 특히 여자가 자연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소? 남자란 족속들은 속물근성이 있어서 가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 하는데 반해 여체는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따르니 그 몸을 취함으로써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자 함이라 이거요. 여자의 몸은 바로 자연이라 이 말이오. 나의 정성, 나의 손길에 정확하게 반응을 보이는 자연 말이오. 그러니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해 그토록 갈구하는 것이라오.”

자신의 여성편력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소설 속 허균은 남성의 성에는 관대하나 여성의 성은 억압했던 조선조 사대부의 모습이 중첩된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느낌을 주는 매창, 명기로 이름난 매창에 대한 남성으로서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만남은 인간다운 세상을 바랐던 사람들의 자리로 농익어간다.

신분제의 벽에 의해 이루지 못한 정을 목격한 허균과 세상의 강요로 정인을 잃은 매창은 부조리한 조선의 폐해를 가슴으로 받아들였다는 공감대로 마음을 나누게 된다.

허균은 남성의 권력지향성과 여성의 순응을 대비하면서 영예의 헛됨과 순리를 따르는 자유를 역설한다. 육체를 통한 해방감 배설을 통해 온갖 마음속의 찌꺼기를 날려 버리고자 했던 허균의 현실도피는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미약한 항거였다. “바닷불은 원래 투명하지만 단지 바닥에 있는 물질들이 어떤 색깔을 띠고 있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리 보인다” “신념과 현실은 일치해야 한다”는 허균의 이상은 다만 메아리칠 뿐이었다.

형식을 벗고 시대에 앞서 인간을 사랑했던 허균에게 있어 시대에 의해 박제되고 생을 빼앗긴 누이의 다른 이름은 매창이었다.

조선시대 기생의 삶은 고단한 것이었다. 필 때는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지만 질 때는 세상의 외면을 받는 쓸쓸한 꽃, 그것이 기생의 숙명이고 굴레였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막힌 조선에서 기생은 당대 내노라 하는 사대부들과도 시문과 가무, 음률을 즐길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금지된 차별에 구애받지 않는 대가로 원치 않는 수청을 들어야 했던 서글픈 신세기도 했다.

매창은 허균에게 기생의 분칠을 벗고 한 인격체로서 자유를 갈망하는 소망을 솔직히 드러낸다. 여성에게 이름이 허학되지 않던 시대에 이름과 호를 갖고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 했던 그녀는 사대부의 나라인 조선에서 소외된 계층의 아픔과 한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인 뒤바뀐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매창의 부탁으로 신분상 대척점에 있던 두 사람은 자유와 평등, 인간다움과 새 세상으로 만나고 정신적 합치를 이룬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입증하려는, 남의 간섭을 견뎌낼 수 없는’ 매창과 ‘태어날 때는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돌아갈 때는 스스로 결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허균은 만날 수 밖에 없는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숭유억불 조선에서 불교를 숭상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자이자 실학의 선구자였던 허균. 사대부의 꽃인 기생과 서신을 주고받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남긴 조선의 이단아. 자신의 의도와 달리 행동을 해야 하는 자신을 속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솔직했던 허균과 매창은 색도, 권력도, 영화도 불필요한 진정성을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작가 황천우의 전작, ‘정희왕후’와 ‘소년 박정희’, ‘묘청’ 등이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담았던 것처럼 ‘허균, 서른 셋의 반란’도 이명박 정권으로 다시 시작하는 보수우파의 지향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면 ‘혁명’으로 끝났을 허균의 진취성과 존중받지 못하는 일반 서민 매창의 고충을 통해 ‘섬김’의 정치란 무엇인가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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