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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편견‧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삶


입력 2021.07.27 15:02 수정 2021.07.27 15:33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갈매기'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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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대중적인 감수성을 드러내고 사회문제를 끄집어낼 수 있는 도구이자 장르로 꼽힌다.


영화 속에서,이야기의 필연성이든 불가피하게 상업성을 추가하기 위해서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표현이나 여성의 육체를 전시하는 장면들은 빈번하게 등장해왔다.


최근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 성적으로만 여성을 소비하는 표현방식은 지양하고 있다. 더 이상 영화 속에서 여성이 성적, 혹은 일상에서 도구화되는 현실을 대중이 용납하지 않는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지난 해부터는 중년 여성의 삶과 갈등도 카메라가 담기 시작하며 중년 여성을 향한 인식 개선 유도를 이끌고 있다.


28일 개봉을 앞둔 '갈매기'는 일평생 스스로를 챙겨본 적 없는 엄마 오복이 같은 시장 상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극복 과정을 담으며 많은 점을 시사했다. 오복은 성폭행을 당했지만 남편으로부터 '여자가 응하지 않으면 성폭행은 성립될 수가 없는다'라는 말을 듣고 딸들에게는 쉽게 처지를 털어놓을 수가 없다. 가족처럼 지냈던 시장 상인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오복을 내팽개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가며 이름을 잃어버린 중년 여성의 현재 위치가 드러난다.


그동안 미디어에서 중년 여성들이 가족만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그렸다면 '갈매기'는 스스로가 자신의 편이 돼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존엄성을 되찾는다. 영화는 딸의 시선에 엄마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오복의 시선으로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정작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던 엄마의 삶은 성폭행이라는 험한 일을 겪은 후 난생, 처음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는 모습을 통해 '가장 외면하고 있는 존재가 사실 엄마인 중년 여성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갈매기'는 지난해 임선애 감독이 연출을 맡고 예수정이 주연을 맡은 영화 '69세'와 같은 결의 연장선이라는 인상을 준다. 영화 '69세'의 주인공 69세 효정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29세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긴 고민 끝에 주변에 알리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모두들 치매 환자로 매도하고, 법원 역시 나이 차이를 근거로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하지만 '69세'는 단순히 노인 여성의 성폭력 사건에만 무게를 두지 않고, 실화를 바탕으로 노년의 삶을 세밀히 들여보며, 한 단계 더 나아가 노년 세대에게 갖는 사회의 편견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옷을 잘 차려 입고 늘 단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효정에게 '노인답지 않다'거나 '처녀 같다'라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비추며 노인 여성에게 갖는 편견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또한 단순한 건망증도 노인이기에 치매로 치부되고, 노인이기에 남자와의 동거는 조롱의 대상이 되는 모습은 노인이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판단해버리는 현실의 무딘 시선도 지적한다.


김호정 주연의 '프랑스 여자'도 결혼과 꿈에 실패한 중년 여성 미라의 고독을 담아 눈길을 끌었다. 남편의 불륜은 점차 여성성을 상실하고 있는 미라의 신체적 변화를 상징했고, 꿈을 이뤄낸 선, 후배들과의 조우는 결혼이란 울타리 안에서 꿈을 외면하고 살았던 미라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프랑스와 한국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미라는 결혼과 직업이란 카테고리를 벗어난 40대 여성을 대변하는 캐릭터였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이 진지한 자세로 중년 여성의 위태로운 삶을 그렸다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유쾌하게 현실을 비틀었다.


이 작품은 영화 프로듀서로 일하다 감독이 돌연사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마흔 살 찬실의 정체성 회복을 담았다. 미혼에 마흔 살 여성 찬실은 청춘 바쳐 열심히 일했지만 함께 일했던 감독이 없는 이상, 자신의 필요성을 아무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새로운 무언갈 시작하기에 늦어버린 취급을 받고,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루저가 돼버렸다. 이는 사람의 가치를 직업 혹은 영향력으로 판단하는 사회를 꼬집음과 동시에 중년 여성이 얼마나 소외된 존재인지 강조했다.


이같은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현상은 주로 2~30대가 주인공을 맡고 그마저도 녹록지 않은 미디어 환경에서 여성 중년 배우의 무대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환영받고 있다. 강말금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제41회 청룡영화상 여자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예수정은 '69세'로 제21회 올해의 영화인상에서 연기상을 차지했다. 김호정 역시 '프랑스 여자'로 제 8회 들꽃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작품의 의미를 더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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