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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올드무비㊽] 영화 ‘마부’ 노래 ‘마부’…김승호·강진·장민호


입력 2021.07.12 13:35 수정 2021.07.12 13:37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마부' 스틸컷 ⓒ다음 영화정보 영화 '마부' 스틸컷 ⓒ다음 영화정보

영화 ‘마부’(감독 강대진, 각본 임희재, 제작 화성영화주식회사)는 1961년 작이다. 우리나라 영화 최초의 국제영화제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제1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특별상(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명칭 참조)을 받았다. 한국 사회가 전 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해 가는 사회상을 교통기관의 발달 속에 사라져가는 직업인 몸을 쓰는 마부와 부상하는 자본가의 대립으로 풀어낸 강대진 감독의 연출력, 타이틀-롤 마부를 맡은 배우 김승호의 열연이 큰 역할을 했다.


김승호가 맡은 하춘삼은 마주 황 사장(주선태 분)에게 말을 빌려 수레로 짐을 나르는 마부다. 하층민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국전쟁 후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식들을 건사하고 큰아들 수업(신영균 분)의 고시 합격을 목표로 집안의 부흥을 도모하는 인물인데, 배우 김승호가 인생 황혼에서도 쉴 새 없이 달려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익살을 곁들여 인상 깊게 연기했다.


영화 포스터 ⓒ이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영화정보 영화 포스터 ⓒ이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영화정보

그리고 60년 후, 2021년 5월 3일 노래 ‘마부’(노래 강진, 작곡 김영호, 작사 김병걸, 편곡 송기영)가 세상에 나왔다. 평소 흥행 곡이든 아니든 대한민국에 나와 있는 가요들을 전부 듣고, 마음을 파고든 노래의 작곡가를 찾아가 곡을 청할 만큼 ‘명곡 욕심’이 많은 가수 강진의 신곡이다.


세월 앞에 장사 있나 고장 날 때도 됐지

낡은 수레로 먼 길 왔구나 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길을 숨차게 허겁지겁 달려왔구나

해보고 싶은 일도 많고 많은데

세월에 꺾이고 세상에 꿇었다.

인생은 마부였던가, 가야 할 지평선 머리에 이고

석양에 버드나무 말고삐 메는 인생은 마부.

세월 앞에 장사 있나 고장 날 때도 됐지

낡은 수레로 먼 길 왔구나 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길을 숨차게 허겁지겁 달려왔구나

해보고 싶은 일도 많고 많은데

세월에 꺾이고 세상에 꿇었다.

인생은 마부였던가, 가야 할 지평선 머리에 이고

석양에 버드나무 말고삐 메는 인생은 마부,

인생은 마부.


노래 ‘마부’ 역시 고단한 인생길에 고장을 거듭하며 낡은 수레가 된, 변변한 휴식도 없이 숨차게 달려 인생 황혼길에 접어든 이들을 위로한다. 이제 말고삐 메어놓고 좀 쉬어도 된다고 말한다. 영화 ‘마부’의 하춘삼이 들었다면 눈물지었을 노래다. 가수 강진의 깊이 있는 음색, 풍부한 감성과 어우러져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듯 지나온 세상살이가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게 만드는 노래다.


노래가 발표되고 한 달 뒤, 지난 6월 3일 가수 장민호는 TV조선 예능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에서 ‘마부’를 불렀다. 출중한 댄스와 선한 느낌의 잘생긴 외모를 잊게 하는, 정통 트로트 가수의 가창 실력을 확인시켰다. 트로트 전성시대, 대세 장민호의 선곡은 보다 많은 이에게 선배의 신곡을 알렸다. 팬들은 미스터트롯 영탁이 부른 ‘막걸리 한잔’과 미스트롯 양지은이 부른 ‘붓’을 떠올리며, 가수 강진을 ‘명곡 맛집’이라고 엄지를 세우고 있다.


지난 5월 강진의 노래 ‘마부’를 들으며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어선지 부모님 생각이 났고, 노래의 제목과 주제 때문인지 영화 ‘마부’가 연상됐다. 오랜만에 영화 ‘마부’를 다시 봤다. 언제 봐도, 요즘 말로 시간 순삭(순간 삭제). 역시나 명작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쓰러진 큰딸 옥녀(조미령 분)를 윽박지르는 아버지 춘삼(김승호 분), 이를 말리는 큰아들 수업(신영균 분), 어쩔 줄 몰라 난처한 작은딸 옥희(엄앵란 분)와 막내아들 대업(김진 분) ⓒ 쓰러진 큰딸 옥녀(조미령 분)를 윽박지르는 아버지 춘삼(김승호 분), 이를 말리는 큰아들 수업(신영균 분), 어쩔 줄 몰라 난처한 작은딸 옥희(엄앵란 분)와 막내아들 대업(김진 분) ⓒ

춘삼은 전 근대적 인물이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강하지만 가부장적이고, 아들과 딸을 대하는 태도가 구시대적이다. 큰아들 수업이 잘돼야 집안이 잘되는 것이라 믿고 있고, 말 못 하는 큰딸 옥녀(조미령 분)를 철저히 출가외인 취급하며 “죽어도 시집간 집에서 죽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속 터지게 밉기보다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인물일 뿐이고, 마주 황 사장과 그의 부인(윤인자 분)이나 고리대금 하는 김 서기(김희갑 분)에게 천대와 박대를 당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천성은 따뜻한 사람이다. 큰딸이 자꾸 친정에 오는 이유가 실은 남편에게 맞고 쫓겨난 것임을 알았을 때는 한달음에 사위에게 달려가 혼쭐내기도 하고, 자신의 으름장에 친정에조차 오지 못한 딸이 한강에 투신해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는 누구보다 후회하고 통곡한다.


춘삼은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도록 열심히 살아왔건만 설상가상 되는 일이 없다. 집안의 희망 큰아들은 고시 시험에 벌써 세 번이나 낙방했고, 큰딸은 불행한 결혼생활에 명을 다하지 못했고, 작은딸 옥녀(엄앵란 분)는 언니보다는 당차게 신분 상승을 꿈꾸지만 부잣집 한량에게 농락당하고, 막내아들 대업(김진 분)은 공부에 뜻이 없고 도둑질을 일삼는다. 그것도 모자라 춘삼은 마주 황 사장의 자동차에 치여 다리를 다치는데, 사과와 배상은커녕 말을 반납시키고 밥벌이를 빼앗는다.


남 몰래 먹이는 밥 한 그릇에서 피어나는 연정 ⓒ 남 몰래 먹이는 밥 한 그릇에서 피어나는 연정 ⓒ

고달픈 춘삼에게도 인생의 낙이 있으니 황 사장네서 가사도우미를 하는 수원댁(황점순 분)과의 ‘황혼 로맨스’이다. 그저 수도꼭지에 입대고 목을 축이려는 춘삼에게 다른 마부들 눈 피해 보리차도 건네고 술도 권하는 정도의 풋풋한 로맨스지만, 쓰디쓴 춘삼의 삶에서는 다디단 보살핌이자 위로다.


생각해 보면 수원댁은 참으로 근대적 인물이다. 돈 많은 김 서기의 구애에도 가난한 춘삼을 택한다. 인생을 스스로 구상하고 개척한다. 평생 모은 돈을 과감히 투자해 황 사장네로부터 춘삼이 몰던 말 용이를 사서 춘삼네로 보낸다. 그 덕에 아버지 대신 취업을 고민하던 수업은 고시 공부를 계속해서 합격하고, 이제 집안의 새로운 태양이 된 수업의 제안으로 수원댁은 당당히 ‘어머니’가 된다.


젊은 시절의 배우 엄앵란(하옥희 역)과 황해(김창수 역)ⓒ 젊은 시절의 배우 엄앵란(하옥희 역)과 황해(김창수 역)ⓒ

김 서기의 아들 창수(황해 분)도 근대적이다. 아버지의 돈에 의존하는 대신 몸으로 뛰어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옥희의 헛바람 든 선택을 비난하기보다 수렁에서 건져내 빵 공장에 취직시켜 건강한 노동성을 회복시킨다. 두 사람의 미래 역시 핑크빛이다.


작은아들까지 방황을 끝내고 마음 잡고 공부하니 춘삼은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 쥐구멍에도 볕이 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해피엔딩인데, 1950년대 신파 영화의 막을 내리게 하고 사회적 풍조를 띤 1960년대 영화가 시작되는 시기인 것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어제를 보면 오늘이 보인다, 고전의 묘미 ⓒ네이버 영화정보 어제를 보면 오늘이 보인다, 고전의 묘미 ⓒ네이버 영화정보

영화 ‘마부’는 춘삼이네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인생고를 결코 어둡게만 그리지 않고 코믹의 리듬감을 얹어 즐거이 관람할 수 있다. 또 이제는 볼 수 없는 1960년대 초의 서울 풍경, 자동차와 마차가 공존하고 높은 건물이 없어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생경한 모습을 영화로나마 만나는 재미도 있다. 배우 김희라의 아버지인 김승호와 가수 전영록의 아버지인 황해를 비롯해 황정순, 김희갑 등 이제는 고인이 된 명배우들의 연기, 학사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엄앵란의 풋풋한 미모를 보는 감회도 새롭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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