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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김조광수 감독 "로맨스 뿐 아니라 액션·호러 등 다양한 퀴어물 필요해"


입력 2021.06.21 01:01 수정 2021.06.20 18:22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메이드 인 루프탑' 23일 개봉

감독으로서 8년 만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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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필름 대표로 제작자로서 '와니와 준하', '분홍신', '조선명탐정' 시리즈,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 '악질경찰'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든 김조광수 감독. 제작자로서는 다방면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자신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친구사이?',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해왔다. 8년 만의 신작 '메이드 인 루프탑' 역시 20대 성소수자들의 연애 이야기를 담았다.


'메이드 인 루프탑'은 이별 1일차 하늘(이홍내 분)과 썸 1일차 봉식(정휘 분)이 별다를 것 없지만 별난 각자의 방식대로 연애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퀴어물에 비해 통통 튀고 발랄하다. 성소수자란 이유로 녹록치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90년대생 하늘과 봉식이지만, 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건 사회의 편견이 아닌 연애다. 이미 정체성 고민을 마치고 20대 부터 자신들의 삶을 즐기려 하는 MZ 세대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반영했다.


"90년대생 게이들이 자기들의 영화를 만들어달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확실히 이전 세대들과 달라요. 지금까지의 성소수자들은 30대가 돼도 여전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삶을 짓누르고 있거든요. 과거 퀴어물에서도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들을 깊이 있게 다루다보니 톤이 어두웠죠. 성향이 달라진 90년대생 성소수자들의 특징을 다루다면 지금까지의 퀴어물과는 확실히 차별화를 둘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늘 역은 이홍내, 봉식 역은 정휘가 연기했다. 이홍내는 OCN '경이로운 소문'에서 악귀 역으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그런 이홍내는 '메이드 인 루프탑'에서 한 없이 귀엽고 발랄하다.


"이홍내는 원래 주목하고 있던 배우였어요. 방탄소년단 '컴백홈' 뮤직비디오를 보고 어떤 작업을 하는지 눈여겨 보고 있었어요. 정휘는 '팬텀싱어'에서 '알라딘' OST를 부르는 걸 보고 한 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봉식 캐릭터를 꽃미남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휘가 딱이다 싶었죠. 뮤지컬을 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스펙트럼이 넓기도 했고요."


이홍내는 김조광수 감독이 먼저 시나리오를 보낸 것이 아니다. 이홍내가 시나리오를 구해 읽고 김조광수에게 출연의사를 먼저 표했다.


"저에게 먼저 콜을 해줬다는 점이 정말 고마웠어요. 처음에는 하늘이란 캐릭터가 귀여워서 이홍내가 가진 강렬함이 그걸 만들어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만나보니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하늘이의 순박함을 이홍내에게서 느꼈어요."


이홍내와 정휘는 김조광수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각각 하늘과 봉식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감독이란 역할을 떠나 성소수자로 삶을 살아온 김조광수 감독 만큼 최적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없었다.


"이성애자 배우가 퀴어 연기를 할 때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했어요. 스스로 '이게 맞나'란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더라고요. 사실 이건 게이 연기 뿐 아니라 전문가 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죠. 제가 성소수자니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전형적인 성소수자 연기보다는 마음 가는대로 하라고 디렉션을 했어요. 다만 이성애자였다면 하지 않을, 게이여서 하는 고민들이 보여졌으면 했죠."


'메이드 인 루프탑'에는 이정은이 깜짝 출연해 재미를 선사한다. 김조광수 감독과 이정은은 한양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절친한 관계다. 하지만 김조광수 감독은 독립영화에서 역할이 크지 않은 순자 캐릭터를 이정은에게 제안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시나리오를 읽은 이정은은 흔쾌히 노개런티로 순자의 옷을 입었다.


"92년도에 졸업 작품을 이정은이 연출하고 제가 배우를 했었어요. 그 때 발연기하는 절 데리고 연출하느라 고생했었죠.(웃음) 인연을 이어오며 제 영화에 이정은을 꼭 출연시키고 싶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부탁하려니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순자는 이정은이 아닌 다른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영화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조광수는 배경을 이태원으로 선택한 이유는 순자 캐릭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제가 20대 때 이태원 옥탑방에 살 때 건물 아주머니께서 '남자친구 없으면 좋은 남자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분은 이태원에 30년 넘게 살면서 수많은 성소수자들을 봐온거죠. 그래서 편견이 없고 따뜻하게 품어주셨어요. 순자가 판타지같은 인물로 보이게 하지 않으려고 이태원의 분위기를 더욱 강조했어요."


김조광수 감독은 EBS '자이언트 펭TV'의 메인 작가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염문경 작가와 함께 했다. 염문경 작가는 시나리오 뿐 아니라 배우로도 '메이드 인 루프탑'에 손을 보탰다.


"염문경 작가는 '악질경찰' 조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어요. 얼굴을 다 가리고 눈만 나오는 연기였는데 맑고 강렬하더라고요. 시나리오 작업할 땐 정연 역을 제안할 생각을 못했어요. 그러다 탈고 할 때쯤 제가 좋아했던 염문경 작가의 눈과 정연의 눈이 닮았다고 느꼈어요. 게이 오빠를 둔 여동생의 감정전달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자신이 쓴 시나리오에 출연하는게 부담일 수 있지만 작업한 과정이 즐거웠는지 출연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역시나 눈빛 연기가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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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인 김조광수 감독은 시간이 지날 수록 사회적 편견이 개선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태원발 확진자가 나왔을 때 편견은 여전하구나를 체감했어요. '코로나19가 기승인데 클럽에 가다니, 그것도 게이들이'라는 시선을 느꼈죠. 여전히 성소수자 딱지를 붙이며 선제적으로 검사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2017년 발의한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은 것만 봐도 성소수자들이 살아가는 일은 아직도 녹록치 않아요."


퀴어물은 이제 더 이상 변방의 콘텐츠가 아니다. 성소수자가 '누군가의 친구', '주변인'으로 그려지던 과거와 달리 영화, 뮤지컬, 드라마 등에서 성소수자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김조광수 감독은 이같은 흐름을 반가워했다. 다만 지난 2월 SBS 설특선 영화로 방송된 '보헤미안 랩소디' 속 동성간 키스신 장면이 삭제된 것에 대해 "지상파가 여전히 겁을 먹고 있는 것 같다"고 바라봤다.


"극장에서 이미 천만 관객이 본 영화인데 그걸 겁낼 필요가 있을까요? 대단한 키스신도 아니었어요. 이성 간의 키스신은 보여주면서 동성애 키스신을 삭제하는 건 차별입니다. 그런데 이걸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죠."


김조광수 감독은 앞으로 계속 퀴어물을 연출할 예정이다. 현재 차기작으로 로맨스를 준비하고 있고 '퀴어판 미생'인 20대 청춘물도 기획 중이다.


"다양한 아이템은 제작쪽으로 풀어내고 제가 연출하는 영화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만들려고 해요. 저라도 꾸준히 만들어야죠. 호러, 퀴어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퀴어물이 나오길 바라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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