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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닌텐도DS


입력 2009.02.07 12:26 수정        

<기자수첩>차라리 그런것을 개발할 인력을 양성하자고 했다면...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깊이가 없다. 그의 즉흥적인 발언이야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아직까지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열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건다.

그저께 과천청사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말한 ‘닌텐도 발언’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 닌텐도 게임기를 초등학생들이 많이 가지고 있던데 일본의 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개발해 볼 수 없느냐.”

이 대통령이 언급한 ‘닌텐도 게임기’는 일본 닌텐도사(社)의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로 지난 2008년 12월초를 기준으로 국내 판매량이 200만대를 넘어선 히트 상품이다.

기존 게임기와 달리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조작이 쉽고 간편한데다 재미있고 독특한 소프트웨어도 지속적으로 공급돼 성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닌텐도DS’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 전세계 누적 판매량은 지난해 9월을 기준으로 8433만대였으며, 최근 해외 미디어 및 조사기관 발표 자료에 따르면 1억대 판매 달성이 눈앞이라고 한다.

이 대통령이 이 게임을 해봤을 리 만무하겠지만 TV광고를 통해서나 오며가며 이 게임기를 눈여겨봤으리라 짐작된다. 혹시 대통령의 손자 손녀들이 이 게임기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대통령이 보기에 이 조그만 게임기가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국내 시장을 파고드는 모습이 여간 부럽지 않았을 게다.

세계경기 침체로 우리 기업들의 수출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 보다 한 차원 앞서는 ‘기술 혁신’이다.

세계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독특하고 유일한 제품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재패하는 길이 우리나라가 사는 유일한 길이자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최선의 방도다.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이 나가자마자 여론은 냉소적이다. 온라인상에선 ‘닌텐도’를 패러디한 ‘명텐도’라는 가상의 제품을 내놓고 이 대통령을 비웃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답답한 마음에 한 마디 한 것이다.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고 기업들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으니 오죽했겠는가.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십분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것은 그의 발언 속에 묻어나는 ‘조급함’이다. 뭔가 빨리 성과를 보고 싶어 하는 ‘초조함’이다.

우리라고 그깟 닌텐도 게임기 하나 못 만들겠나. 조선 기술은 세계 1위고 자동차도 일류수준에 도달한 나라다. 비행기, 탱크는 물론 인공위성까지 만들어 쏘아 올리는 나라다.

문제는 창의성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은 애써 걸어가지 않는 모험심이 있어야 한다. 도전정신은 기본이다. 그저 남들이 하는 것 베껴 가지고는 절대 일류가 될 수 없다.

정부는 그리고 지도자는 이런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수년 아니 수십 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과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 발언에는 이게 빠져 있다. 그래서 여론이 냉소하고 있는 거다.

기사가 나가고 네티즌 이정광 씨가 한 게시판에 짧은 글을 올렸는데 음미해 볼만하다.

“사실 대통령이 그런 산업에서 플랫폼과 표준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 그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지는 못했을 텐데요. 닌텐도가 지금 저렇게 되기까지 냉정히 말하자면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봐야 할 일입니다. 아마도 ´마리오´가 없었으면 닌텐도도 없었겠죠. ‘닌텐도DS’ 한번 만들어보자는 말은 대통령의 ‘토목건설족’ 이미지를 더 강화해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인력을 한번 제대로 양성해보자고 이야기했다면 점수를 받았을 텐데 말입니다.

걱정되는 것은 과천의 관료들이 대통령이 그런 말했다고 벌써 그런 거 개발할 태스크포스 만들지 않을까하는 것입니다. 주요 전자회사들에 공문 보내고 게임회사들 강제로 참여시키는 그런 사고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잡지를 보니 유명한 목수님에게 어떤 젊은 분이 전화를 했다는군요. 요즘 한옥이 인기를 끌어서 배워보고자 전화를 했던 모양인데 몇 달이면 배우냐고 물어서 그 목수님이 어이없었다는…….

어쩌면 우리의 생각 자체가 그런지도 모릅니다. 몇 달 과정, 속성과정, 길어야 6개월 1년 과정으로 대단한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모든 일에는 시간이 걸리고 고급인력 양성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우리가 무시하는 한 여전히 우리는 환율 900원대에서 산업의 경쟁력은 확보될 수 없겠죠.

만들고 싶다고 닌텐도 같은 제품을 뚝딱 만들 수도 없을 것이고 다른 모든 산업에서도 마찬가지겠죠. 대통령의 닌텐도 발언이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뻔하여 한번 적어 봤습니다.”

대통령도 이제 우리 국민 수준을 알고 한마디 한마디 해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데일리안 = 김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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