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축구장만한 붉은 황토 흙의 농성(農城)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입력 2008.09.17 16:38  수정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파란 잔디의 성벽에...가을이 익어간다

우리나라 웬만한 중소도시에는 이제 체육공원 시설이 수준급이다. 90년대 중순까지만 해도 빈 공터는 늘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물론 동네 청년들까지 늘 모여 축구장으로 이용했던 널직한 공터. 둘레가 300m에 사방이 언덕으로 막아져 그 높이도 7m나 된다. 축구장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성벽위에 남녀 학생들이 모여 있다.

농성(農城)이 그런 곳이다. 한때 흙으로 쌓은 작은 토성내부가 마을사람들의 축구장이었다. 이곳뿐만 아니다. 동네 어귀에 축성된 성벽들은 개구쟁이들의 곡예사 훈련장이 되기도 했다. 이제 성벽을 보는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아끼고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난 8월 하순. 농성의 파란 잔디가 깔린 성벽위에는 남녀중학생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애기 꽃을 피우고 있다. 농성이 말끔하게 정돈됐다. 축구장 흔적은 사라졌고 대신 성벽과 내부는 호젓한 산책길로 변했다. 감수성 예민한 학생들의 데이트 장소로는 적격이다. 성벽위에 오르면 보이는 건 드넓은 옥토뿐이다. 그 옛날 농성은 곡창지대를 수호하는 지킴이였음은 분명하다.

복원전 성내부 (1989녀)

농성의 남쪽성벽

농성은 평택에서 서해안 방향으로 5km 거리의 팽성읍 안정리 일곱메 마을에 있다.
너른 들판 중심에 타원형으로 축성한 토성이다. 농성 북쪽에는 안성천이 흐른다. 조선시대 중순까지 바닷물이 이곳까지 스며들었다. 동. 서쪽에 출입구인 성문도 있다.

성내는 겨울철에는 따뜻한 물이, 여름에는 차가운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다고 기록됐으나 현재 그 샘터는 찾기 어렵다. 농성 안은 붉은 황토 흙이다. 한동안 농지로 사용했으나 복원하면서 갈대숲으로 메꿔졌다. 지금 그곳에는 누렇게 가을이 익어간다.

농성의 축성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삼국시대 때 축성 설은 이 지방에 양곡을 훔쳐가는 도적이 들끓자 곡식을 보관하기위해 쌓았다는 설. 신성도승(神仙道僧)이 지맥을 가라앉히기 위해 쌓았다는 설. 통일신라 또는 고려 때 천민들의 집단 거주지였다는 설도 있다.

농성의 서문

고려시대 축성 설로는 고려의 성(城)이 조선시대보다 토성이 많고 규모도 작기 때문이다. 또한 인근 안중의 용성리성. 비파산성처럼 낮은 구릉에 자리 잡았다.

백종오(충주대 교수)는 ‘농성은 고려초에 축성하고 조선중기까지 성곽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백교수는 ‘1999년 경기도박물관이 평택일대 고대 관방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비파산성에서 ´乾德三年´(건덕3년. 고려 광종 7년<965>)이라는 제작연대가 적힌 명문 기와를 수습했고. 2004년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가 비파산성에서 출토된 ´車城´(차성)이라는 글자가 적힌 기와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차성´ 명문기와는 고려초에 제작된 것이다.

평택임씨의 시조인 (임팔급의 동상)
특히 이 지역이 고려시대 주요 교통로였기 때문에 물자를 보관하는 군창고로 쌓았을 것으로 추정도 하고 있다.

최근 평택 임(林)씨의 종친회에서는 시조인 당나라 임팔급이 830년경 이곳에 망명했다는 임씨 족보에 기록된 근거로 성벽 앞에 임팔급의 동상을 건립했다.

종친회가 세운 동상 설치에 대해 학계는 하나의 설에 불과할 뿐 임팔급 공이 농성을 세웠다는 임씨 문중의 주장에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2003년 농성을 조사한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는 성곽의 축조는 소규모의 성곽이라 도 국가의 정치·군사적 목적과 관련되기 때문에 일개 문중이 성곽을 축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더구나 출토된 토기편은 모두 고려시대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백교수는 ‘종친회의 변함없는 추진력 때문에 농성복원도 가능 했다고 했다.

농성의 초기축조는 다양한 설만 남아 있다. 일반 사람들은 축성시기에 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니 무지의 탓으로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것은 관계되는 학자들의 연구의 몫으로 남겨질 일이다. 다만 선조들이 남겨놓은 갑진 유적으로만 볼 뿐이다.

지 정 - 시도기념물 74호
소재지 -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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