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올드무비⑫] 이미 삶은 결정됐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가타카’

    [데일리안] 입력 2020.09.27 09:38
    수정 2020.09.27 09:39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제롬이 된 빈센트(에단 호크 분) ⓒ제롬이 된 빈센트(에단 호크 분) ⓒ

“영혼에는 유전자가 없다.”(김한범)


“SF 영화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 형태. 철학적 질문들의 세련된 재단.”(탈지구 기원자)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너를 이긴 거야’라는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니, 인상적인 정도가 아니라 충격적이었다. 이런 자세여야만 한다.”(김성호의 씨네만세)


“기득권이 노리는 건 명확하다. 흑백논리…. 그러나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회색이 있다. 회색은 흑이 될 수도 백이 될 수도 있다. 경계는 경계일 뿐, 넘어서면 된다.”(윤제아빠)


“영화란 꿈을 주고, 좋은 영화란 거기서 나아갈 힘을 주는 것. 노력을 뛰어넘는 전력. 99명의 천재보다 1명의 노력가가 경이로운 이유”(지예)


“최고의 SF 명작이 아닌가 싶다. 차갑고 암울한 디스토피아 사회를 무덤덤하게 잘 그려냈다. 영화에 나온 일들이 정말 실현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더 와닿는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Floyd)


“최고의 영화다. 무기력한 나를 깨워줬다. 대사를 듣는 순간 미친 듯이 울었다. 내 삶을 바꾼 영화”(me_dia)


“10번, 100번, 1000번 볼 영화를 선택하라고 한다면.”(LSD)


왓챠에 올라온 ‘가타카’ 관람객의 평이다. 모두 옮길 수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영화의 핵심을 짚는, 공감 가는 글들이 많다.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극찬 일색일까.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

영화 ‘가타카’는 1997년, 20세기를 3년 남겨둔 시점에 세상에 나왔다. 가까운 미래, 21세기, 지금 우리에겐 현재인 21세기가 영화에선 유전자 과학으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암울한 세상이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유전자 검사를 받는다. 향후 어느 정도의 능력을 보일지, 어떤 질병을 앓게 될지, 수명은 얼마일지가 바로 도출된다.


사랑하는 순간 잉태된 아이가 가장 건강하고 똑똑하다는 속설과는 정반대로,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난 빈센트 프리맨에게는 근시에 심장병, 범죄자 성향, 31세 사망이 예고된다. 실망한 부부는 인공수정으로 딸 둘, 아들 둘의 수정란을 만나게 되고. 그 가운데 두 사람의 좋은 점만을 닮은, 최고로 완벽한 유전자 결합의 수정란을 택해 안톤 프리맨을 탄생시킨다.


'결함'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빈센트와 아이린(위)ⓒ

부모의 모든 기대를 독차지하는 안톤, 기대만큼 우수한 유전자의 능력을 확인시키는 동생의 그늘에서 빈센트는 성장한다. 하지만 영혼에는 유전자가 없다는 관객의 해석처럼, 빈센트의 영혼은 열정적이고 포기를 모른다. 예고된 유전자 운명에 굴하지 않고, 매사 열심이고 저 하늘 너머 우주에 가겠다는 꿈을 키운다. 아무도 기대를 걸어주지 않는 상황, 자신이 지닌 실재적 능력과 가능성을 봐주는 게 아니라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적격자’와 ‘부적격자’를 결정하는 사회에서 빈센트는 우주비행사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고 굴할 빈센트(에단 호크 분)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동생과 해 온 수영 시합,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패하는 대결에서 늘 고배를 마시던 형은 여느 날처럼 함께 뛰어든 바다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생을 구한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된 빈센트는 자신감 하나를 들고 집을 나온다. 청소부로 전전하는 ‘부적격자’의 삶, 어느 날 최대 우주항공사 ‘가타카’의 청소부가 된다. 가까이 오니 더욱 불타오르는 꿈. 해박한 우주에 관한 지식도, 예고된 수명을 넘어 건강하게 단련된 신체도, 누구보다 우주를 열망하는 의지도 빈센트를 ‘우주비행사 적격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입사시험에서 예의 진행되는 유전자 검사, 피 한 방울만 넣으면 ‘부적격’ ‘불합격’의 신세다.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난 제롬 유진 머로우(주드 로 분)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난 제롬 유진 머로우(주드 로 분) ⓒ

그런 빈센트에게 꿈을 향해 일명 ‘사다리’를 놓아줄 DNA 브로커가 다가온다. 우수한 인자를 지닌 전직 수영선수 제롬 유진 머로우(주드 로 분), 아무도 모르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그의 DNA 정보를 빌려 가타카 입사시험을 통과하는 작전을 제안한다. 빈센트 프리맨에서 제롬 머로우로의 변신, 방법은 아날로그적이다. 다행히 얼굴은 비슷, 헤어나 패션 스타일은 연출로 가능하고, 제롬이 받았던 치과 치료는 몰아서 해 넣으면 된다지만 타고난 근시에 5cm 모자라는 키는 해결이 어렵다.


근시를 감쪽같이 없애려면 수술이 필요하지만, 각막에 흔적이 남아 불가능. 컬러렌즈로 해결하는데 불시의 검문에서는 표가 나므로 빼버려야 하는데 안경을 쓸 수는 없으므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각오해야 한다. 고문과도 같은 수술로 키도 늘리고. 가타카 건물 출입 시마다 신분을 확인하는 피검사에 대비해 오른쪽 검지에는 가짜 피부 아래 제롬의 피가 들어 있어야 한다. 보안을 위해 불시 검사가 많기에, 사타구니에는 제롬의 소변이 담긴 주머니를 차고 다녀야 하고 상태 좋은 피도 항시 지녀야 한다.


그 모든 것을 다해서 입사와 근무를 완벽히 수행 중이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우주비행사에게 요구되는 극강의 체력과 지구력 테스트에서 최고의 유전자를 입증하기 위해 숨이 턱에 걸려 죽을 것 같을 때까지 ‘태연하게’ 달려야 한다. 빈센트는 선천적으로 심장병이 예고돼 있고, 제롬은 국가대표 수영선수를 할 만큼 우수하니까. 평생의 노력으로 축적한 우주에 대한 지식, 웬만해선 말릴 수 없는 우주 사랑으로 작성한 보고서는 상관 휴고(앨런 아킨 분)에게 채택되어 토성 출발 일주일을 앞두고 있다. 그야말로 어릴 적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상황, 이제 빈센트는 가운데 이름 유진으로 부르는 제롬 머로우보다 더욱 제롬 머로우에 걸맞은 인간이 된 것이다.


가타카 임원 휴고(중앙)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가타카 임원 휴고(중앙)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

호사다마라 했던가. 최하 등급 부적격자에서 최고 등급 우주비행사에 등극하기 직전, 결정적 순간에 가타카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토성 탐사 계획을 반대하던 감사관이 빌딩 화장실에서 살해된 것. 휴고는 아이린 카시니(우마 서머 분)에게 경찰의 사내 수사를 도우라 명하고. 제롬이 얼마나 토성에 가고 싶어 하는지를 아는 아이린, 모든 게 너무 완벽한 제롬을 의심하던 그는 살인까지도 의심하며 제롬의 서랍 속 빗에서 머리카락을 훔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다. 즉석에서 나오는 결과, 10점 만점에 9.3점의 인재, 검사관의 “대단하네요”라는 말을 들으며 아이린은 의심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경찰의 수사망은 점점 조여온다. 바람에 날린 눈썹, 무심코 청소부에게 준 종이컵이 빈센트를 압박한다. 경찰의 추적, 이를 모면하는 빈센트의 기지가 숨 막히는 긴장감을 형성한다.


영화에는 몇 가지 반전이 준비돼 있다. 형사반장의 정체, 살인범의 정체, 빈센트의 정체를 알고 있던 내부직원의 존재, 빈센트에게 육체의 DNA를 빌려주고 빈센트에게서 정신적 꿈을 얻은 유진의 선택. 이러한 요소들이 얽혀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확인해 볼 만하다. 무척 흥미진진하고 대단히 충격적이다. 에단 호크, 주드 로, 우마 서먼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마 서먼과 에단 호크(오른쪽)의 리즈 시절 ⓒ우마 서먼과 에단 호크(오른쪽)의 리즈 시절 ⓒ

유전자에 의해 인간의 사회적 운명이 결정된다는 신선한 공상, 이를 극복해내는 존재를 통해 ‘가타카’가 전하는 메시지는 익숙하다.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루고,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 하지만 반운명론을 계몽주의의 운명개척론처럼 ‘하면 된다’로 들이미는 것과 빈센트의 처절한 좌절과 부단한 일어섬을 통해 담담히 전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영화를 보노라면 여러 상황 속에서 좌절했던 나를 발견하며 빈센트에 공감하고, 쉽게 포기했던 나를 기억하며 반성한다. 묻고 싶다, 당신은 오늘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고’ 전력을 다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좋은 생각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예고된 심장질환에 먼저 포기하려는 아이린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산 증인’인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는 빈센트의 모습이다. 남녀 간의 어떤 사랑보다 뭉클하다. 마찬가지로 ‘부적격자’ 아들을 둔 아버지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모습, 그런 빈센트에게 숨겨두었던 배려를 드러내는 모습은 암울한 세상의 희망은 역시나 사람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공상과학, SF 스릴러를 통해 인간의 문제를 ‘낯설게’ 마주하면 본질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진심어린 사랑 ⓒ이상 출처=네이버 영화 정보 진심어린 사랑 ⓒ이상 출처=네이버 영화 정보 '가타카'

‘가타카’라는 놀라운 데뷔작을 선보인 앤드류 니콜 감독은 이후 짐 캐리가 주연한 ‘트루먼 쇼’의 각본, 톰 행크스의 ‘터미널’ 원안과 기획을 통해 세상 어딘가에 홀로 유배된 사람의 외로움, 그렇게 만든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렸다. 밥이든 옷이든 수명으로 지불하고, 노동과 돈으로 수명을 살 수 있고, 그러한 수명이 손목에 표시되고 숫자가 0이 되면 즉시 심장정지로 사망하는 세상. 죽지 않기 위해 수명을 훔치고 구걸하고 뺏으며 사투를 벌이는 디스토피아를 통해 빈부격차와 인간의 소유 문제에 대해 다룬 ‘인 타임’ 역시 ‘가타카’에 버금가는 충격을 안겼다.


뇌에 들어온 외계생명체 ‘소울’에게 감정을 빼앗겨버린 인류, 단 한 명 영혼을 지켜낸 멜라니(샤일샤 로넌 분)에게 걸린 지구의 운명을 그린 ‘호스트’, 에단 호크와 다시 만난 ‘드론전쟁: 굿킬’, ‘인 타임’의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재회한 ‘아논’ 등 신선한 스토리의 SF·액션 영화가 많지만 제일 먼저 데뷔작 ‘가타카’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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