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늘렸더니 부작용만…'자의 반 타의 반' 장고 들어간 한은

    [데일리안] 입력 2020.07.17 06:00
    수정 2020.07.16 15:58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통화량 역대급 증가에도 경기 침체 심화…부동산·주식에 쏠리는 돈

통화정책 효과 의문 속 추가 금리 인하 한계…동결 기조 유지될 듯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은행 본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한국은행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은행 본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한국은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잇따라 기준금리를 끌어 내리던 한국은행이 마침내 이에 제동을 걸고 장고에 들어갔다. 유래 없는 제로금리가 현실화하면서 시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이 풀렸지만, 이렇게 풍부해진 유동성이 경제적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않고 부동산과 주식 시장만 과열시키는 부작용을 낳으며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모습이다. 이로 인해 통화정책의 실효성을 둘러싼 의구심만 점점 커져 가는 가운데 한은은 당분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금리 인하 카드를 내려놓게 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한은에 따르면 전날 금융통화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 연 0.50%로 동결했다. 이로써 한은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유지하게 됐다. 한은은 올해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이어 지난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가 단행되면서 한은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한 상태다.


이 같은 초저금리는 코로나19 여파를 극복하기 위한 경기 부양 조치였다. 코로나19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까지 추락할 것으로 관측되자, 금리를 내려 시장에 좀 더 많은 돈이 돌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차원이다. 한은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0.2%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건 외환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1998년(-5.1%)이 마지막이다.


시장의 유동성 흐름만 놓고 보면 한은의 이 같은 제로금리 카드는 의도된 성과를 낸 듯 보인다. 기준금리 인하 이후 시중 통화량이 눈에 띄게 늘고 있어서다. 올해 5월 M2 기준 국내 광의 통화량은 3053조9000억원으로, 한 달 만에 35조4000억원이나 늘며 198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해 월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M2는 현금을 비롯해 요구불예금과 머니마켓펀드,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과 금융채 등 곧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단기 금융상품들을 포함한 것으로,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다.


이 같은 통화량은 1년 전과 비교하면 9.9% 급증한 규모다. 이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10월(10.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해도 7%대를 유지했던 전년 동기 대비 M2 증가율은 기준금리 인해 다음 달인 지난 4월에 9.1%로 뛰어올랐고, 이제 10%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M2를 중앙은행의 창구를 통해 발행된 돈인 본원통화로 나눈 통화승수는 3월 15.26배를 나타내다가 5월 들어 도리어 15.06배로 떨어졌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돈이 잘 돌지 않는다는 의미다. 통화량은 늘었지만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민간 소비 활성화나 기업 자금난 해소 등 저금리를 통해 진짜로 원했던 효과는 포착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에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3%로 0%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0.4%보다 0.1%포인트 더 떨어진 수치이자,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인 2.0%를 크게 하회하는 것이다.


기업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자금사정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0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가 몰아치던 2008년 12월(65)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는 자금사정에 대해 기업이 인식하고 있는 전망을 지수화한 것으로, 기준치인 100보다 낮을수록 이를 비관적으로 여기고 있는 기업이 낙관하는 곳보다 많아졌다는 뜻이다.


불어난 유동성은 부동산 시장과 증시만 과열시키고 있다. 코스피는 약 5개월 만에 2200선을 회복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증시 대기 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달 말 기준 46조1819억원으로 지난해 말(27조3937억원)에 비해 68.6%(18조7882억원) 급증했다.


또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규제 대책에도 집값은 꺾이지 않고 있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심리도 작용하고 있지만, 풍부해진 유동성이 이를 더욱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지난 달 발표한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은 오히려 더 오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7월 첫째 주 서울의 주간 아파트값은 0.11% 상승해 지난주(0.06%)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이 같은 상승률은 12·16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7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에 정부는 이번 달 추가 대책을 내놨지만 약발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오래도록 지속돼 왔기 때문이다. 지난 달 수도권 주택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는 5월(120.6)에 비해 20.3포인트 오른 140.9를 기록했다. 해당 심리지수는 95 미만은 하강 국면, 95 이상~115 미만은 보합 국면, 115 이상은 상승 국면으로 분류된다.


이 같은 상황 탓에 한은 통화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한층 커지고 있다. 답답하기는 한은으로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현재의 기준금리가 실효하한까지 떨어진 상태여서다. 앞선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는 측면과 더불어, 한은이 추가 조정을 가져가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실효하한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국가의 경우 사실상 기준금리를 0%까지 내릴 수 없다는 측면을 감안할 때 감내할 수 있는 금리 마지노선을 일컫는 표현이다. 이에 따른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실효하한은 최저 0.50%로 추정된다. 기준금리를 지금보다 더 내리게 되면 곧바로 실효하한을 밑돌게 되면서 통화정책의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당분간 현재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시장 과열로 금융 불균형 위험이 확대되고 있고, 실효하한 수준으로 낮아진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한은 통화정책은 당분간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훈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향후 국내 성장경로가 한은이 가정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라면 추가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재차 커지긴 어려울 전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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