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배당의 배신…곳간 빈 상장사·주주들 ‘궁지’

    [데일리안] 입력 2020.02.06 06:00
    수정 2020.02.06 07:28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LG화학·SK이노, 실적 악화에 배당금 최대 78% 축소

고배당 유지한 보험사들도 압박...“자본확충 부담 예상”

서울 서린동 SK이노베이션 사옥 전경.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서울 서린동 SK이노베이션 사옥 전경.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전통적인 배당주로 꼽혀온 기업들이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거두며 주주들의 배당금이 크게 줄어들었거나 축소될 예정이다. 저성장·저금리 시대를 맞아 배당성향에 집중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배당규모를 둘러싼 상장사들의 고심도 깊어질 전망이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고배당 업종으로 꼽혀온 정유·화학 기업들의 배당액이 올해도 감소되면서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3일 지난해 결산배당으로 보통주 1주당 2000원의 현금배당을 단행한다고 공시했다. 이는 2018년 결산배당 6000원 대비 3분의 1이면서 66.7% 하락한 수준이다. SK이노베이션도 작년 결산배당을 1주당 1400원으로 낮췄다. 2018년 보통주 1주당 6400원에서 78.1% 급감했다. 단 LG화학·SK이노베이션과 함께 국내 배터리 3사로 꼽히는 삼성SDI는 2018년과 동일한 주당배당액(1000원)을 유지했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지난해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로 부침을 겪으면서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각각 75.2%, 46% 줄어들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제 마진 하락에 따른 정유 사업 불황으로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96.1% 급감했다. 정유·석유화학 부문이 주축 사업인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배터리 사업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경쟁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 투자자들의 속사정은 더 복잡하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경쟁에서 먼저 앞서나간 두 업체에 비해 실적 개선 전망과 주가 회복이 더뎌지면서 투자자들의 속을 태웠다. 올해 들어 전기차 대표주인 테슬라 주가가 연일 폭등하고 있는 가운데 LG화학과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 수혜 기대감으로 연초 이후 지난 5일까지 각각 21.65%,35.34%씩 올랐다. 실적 악화와 배당 축소 등에도 투자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이러한 배터리 수혜 기대감도 배당정책에 대한 주주들의 실망감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사측이 최근 자사주 매입 계획을 빌표했음에도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연초부터 지난 4일까지 –12.62% 감소했다. 다만 5일 반등에 성공(4.69%)하며 남은 상승 여력이 주목되고 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예상을 크게 밑도는 수준의 배당이었다”며 “주주들을 달래기 위한 자사주 매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추세적인 주가 상승을 위해선 2차전지 사업부 소송 이슈와 실적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통적인 초고배당주였던 에쓰오일도 실적 부진에 따라 배당 규모가 크게 줄고 있는 추세다. 2016년 60%, 2017년 55% 수준에 달하던 배당성향은 2018년 34%로 대폭 줄었다. 배당성향은 당기순이익 중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총액의 비율이다. 지난해 실적은 배당이 크게 쪼그라든 2018년보다 부진해 30% 배당도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반면 보험업계는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고배당 정책을 유지했다.


삼성생명은 작년 결산배당으로 보통주 한주당 2650원을 배당하기로 결의했다. 배당금 총액은 약 4759억원이다. 총액 규모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지만 작년 연결기준 순이익이 전년 대비 39.3%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배당 성향은 45.2%로 1년 전 30.0%에서 15.2%포인트 높아졌다. 삼성화재 역시 보통주 한주당 8500원으로 총 3634억여원을 배당금으로 내놓기로 했다. 총액 규모는 줄었지만 순이익이 39.5% 감소해 배당성향은 45.7%에서 55.8%로 증가했다.


DB손해보험은 지난해 결산배당으로 보통주 1주당 1500원의 현금배당과 함께 3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작년 순이익은 2018년 대비 –28% 줄어 자사주매입을 고려한다면 주당배당금은 2018년과 동일한 수준이다. 올해까지 배당 수익률 3% 이상의 배당을 약속한 미래에셋생명 역시 최근 자사주 500만주를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어려운 환경에서 감익이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회사들의 노력이 돋보인다”며 “업황 개선이 요원한 가운데 주주환원정책에 적극적인 회사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대규모 자본 확충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최대주주 위해 ‘통 큰 배당’을 결정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사들은 오는 2022년 새 국제회계기준 도입에 따라 이자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데 고배당 정책은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 최대주주로 지분율 20.76%에 해당하는 4151만9180주를 보유하고 있다. 배당 결산에 따라 이 회장은 삼성생명에서만 약 1100억원을 배당받을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 삼성생명 지분 0.06%, 삼성화재 지분 0.09%를 갖고 있다. 이 부회장의 배당금은 약 6억9200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실적이 안 좋다고 배당 규모를 줄이게 되면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거나 증시에서 도태될 수 있고, 그렇다고 계속 고배당을 유지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하며 배당을 늘리는 것 자체도 긍정적이지만, 주주 가치·투자 여력을 둘 다 훼손해선 안 되기 때문에 기업과 투자자 모두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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