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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감독탐구①] 늦깎이 감독 양우석과 미카엘 하네케

    [데일리안] 입력 2020.07.31 16:23
    수정 2020.08.05 14:48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양우석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양우석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란 진리를 위한, 혹은 진리를 찾기 위한 1초당 24개의 거짓들이다.”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말이다. 독일 태생 오스트리아 국적의 하네케 감독은 평론가, 연극과 TV드라마 작업을 거쳐 48세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는 ‘퍼니 게임’ ‘히든’ 등의 영화를 통해 미디어의 폭력성을 고발했고, ‘하얀 리본’ ‘피아니스트’ ‘아무르’ 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일상에 숨어있는 권력과 폭력, 욕망과 인간관계의 비애를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늦깎이로 데뷔, 그 나이와 경력에 걸맞게 우리 사회에 해야 할 얘기를 주저하지 않고 하는 감독이 있다. 바로 양우석이다. MBC프로덕션에서 일을 시작한 뒤 스토리 기획과 개발에 힘쓰고 만화작가로 활동하다 45세에 영화감독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영화의 결은 다르지만, 불혹을 한참 넘겨 영화감독을 시작했고 한눈팔지 않고 직진하는 모습은 같다.


미카엘 하네케의 데뷔작 ‘7번째 대륙’은 기존 영화문법과 그에 따른 관객의 기대를 파괴, 본 적 없이 ‘새롭게 불편한’ 연출방식으로 파란을 일으켰는데 양우석의 데뷔작 ‘변호인’도 만만찮다. 어려움에 직면한 누구에게나 필요한 변호인, 직업적 변호사가 아니라 인간적 변호인에 관한 이야기. 그 안에는 이제는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계형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가 되는 과정이 담겼고, 누구나 아는 실화는 아니지만 덮이지 말아야 하는 과거 ‘부림사건’이 배경에 깔렸다. 결코, 흥행을 목표로 기획된 블록버스터가 아니었지만 1137만 관객의 가슴을 두드렸다. 데뷔작으로 천만 관객, 2013년의 일이다.


'강철비' 현장의 양우석 감독(가운데)과 곽도원, 정우성 ⓒ ㈜NEW 제공

스토리 창작에 생의 시간을 보내며 책을 쓰고 만화 이야기를 지어온 사람답게 양우석 감독의 품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보따리가 있다. 그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일찌감치 자신이 쓴 만화 ‘스틸레인’의 영화화를 예고했고 그것은 현실이 됐다. ‘변호인’으로부터 4년 뒤 ‘강철비’, 그리고 다시 3년 뒤 ‘강철비2: 정상회담’. 두 작품이 만화의 내용 그대로는 아니다. 남과 북, 하나의 민족이지만 스틸레인, 뚫고 전진하기 어려운 강철비로 가로막혀 둘로 나뉘어 있는 한반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은 그대로다.


1편과 2편으로 같은 ‘강철비’ 제목 아래 묶였지만, 여느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외양을 지녔다. 1편에선 정우성이 북의 최정예요원 엄철우, 곽도원이 남의 외교안보수석 곽철우였는데 이번에는 뒤집혔다. 정우성이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제, 곽도원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호위총국장 박정우로 분했다. 1편은 액션의 골격에 휴먼드라마를 입혔다면, 2편은 정치스릴러로 시작해 블랙코미디를 지나 잠수함액션으로(엔드-크레딧과 함께 오르는 쿠키영상은 판타지지만) 마무리된다. 분단 물이라는 것, 주연배우가 같다는 것 외엔 장르도 다르고 배우들에게 맡겨진 역할도 전혀 다르다.


이토록 다른 두 작품을 통해 양우석 감독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이었을까. 미카엘 하네케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고 친절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하고자 하는 얘기의 지향점이 분명하고 누구나 쉽게 꺼내는 얘기는 아니라는 점은 공통적이다. 기자는 바로 위 단락에서 주인공들의 국적을 쉽사리 적지 못하고 ‘북의 임철우’ ‘남의 곽철우’로 표현했다. 현재 우리에게 있어 북한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전쟁이 잠시 중단된 정전 상태에서 미수령지역에 불과하다. 북한 역시 우리가 편의로 부르는 이름이고, 미국이나 영국처럼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이 아니기에 ‘양국’이라는 표현조차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은 출발한다. ‘정전’을 ‘휴전’으로 바꾸는 평화협정 체결, 북한이 외국이 되는 ‘분단’이 명확해지는 것이 통일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통일하자는 게 아니라 통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기 위한 ‘선결 요건’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린다.


'강철비2' 4인의 주역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글로 적어도 쉽지 않고 딱딱한 이야기를 영화로, 그것도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 그것도 진지하기만 영화가 아니라 웃음과 액션, 긴장미를 겸비한 상업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이 배짱은 어디에서 왔을까. ‘변호인’을 1137만, ‘강철비’ 445만 관객이 사랑했다고 해서 그 사랑이 이번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 제작 ㈜스튜디오게니우스우정,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에도 보장되는 것은 아니잖은가. 지난 29일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양우석 감독은 담담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자신감이라기보다는 누군가는 가야 하지 않겠나, 싶은 거예요. ‘변호인’ 끝나고 보니 제 친구는 은퇴하고 있는데 저는 새 직업이 생겼잖아요. 감독으로서 어떻게 포지셔닝 할 것인가, 고민이 커지더라고요. 남들만큼 많이 찍을 수 없는 나이에 (영화감독을) 시작한 거고, ‘변호인’에 주신 사랑을 갚기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갚지? 설왕설래가 있더라도 어떻게든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나, 마음먹었습니다. 상상력을 펼치는 건 웹툰이라는 창구가 있으니, 영화로는 우리한테 ‘필요한 얘기’를 하자! 힘들지만, 힘이 들 때 역으로 힘이 돼요.”


늦은 나이에 시작했으니 갈 길이 더 바쁠 수도 있고, 시작부터 흥행과 성공에 욕심이 날 법도 하건만. 기대 이상의 큰 사랑을 관객께 받고 그 보답의 방법으로 결심한 답이 ‘우리에게 필요한 얘기를 하겠다’라는 양우석 감독.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건 길을 만들며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하는 일, 그 힘든 일을 양우석은 자청했다. 힘이 드는 일이니까 도리어 힘이 된다는 선문답 같은 말을 하며 웃는다.


핵잠수함에 갇힌 세 정상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핵잠수함에 갇힌 세 정상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우석이 누군가. ‘변호인’ ‘강철비’를 되짚어 보라. 쉽지 않은 얘기를 쉽게 또 재미있게 풀어내는, 만화영화로 치면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지닌 ‘호호아줌마’ 같은 연출가다. 이번에는 남과 북, 미국의 세 정상을 한자리에 모여 앉혔다. 그것도 동해 바닷속 핵잠수함 ‘백두호’ 안이다.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세 정상의 캐릭터가 아니다. 각국 정상 또는 국가의 과거로부터 현재의 특성 또는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상향을 담아 완성했다. 앵거스 맥페이든이 연기한 미국 대통령 ‘스무트’ 캐릭터에는 세계의 경찰을 자청해 온 팍스아메리카의 전형도 보이고 막무가내 정치꾼 트럼프도 보인다. 정우성이 연기한 ‘한경제’ 대한민국 대통령에는 남북평화에 힘을 기울여온 현 정부의 모습이 담겼다. 역대 북한 최고지도자의 모습은 유연석이 연기한 ‘조선사’ 위원장과 곽도원이 연기한 ‘박정우’ 호위총국장 캐릭터로 나뉘어 담겼다.


캐릭터를 이렇게 설정해 놓으니 4인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때로는 일촉즉발의 긴장을 형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골계미 듬뿍 담긴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는 관객의 심장을 쥐었다 놨다, 맥박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남북과 일본, 미국이 뒤엉킨 해전을 향해 항해한다. 숨 막히는 긴장을 간간이 풀어 주는 세 정상의 코미디와 관련하여 양우석 감독이 알고 보면 쏠쏠한 팁을 전했다.


“또 담배는 핵, 방귀는 유엔제재를 의미해요. 북 위원장이 담배를 자꾸 피우죠, 미국 대통령은 방귀를 자꾸 뀌고요. 그걸 놓고 좁은 방에서 계속 승강이를 벌여요. 그러다 스무트가 잠수함에 꽉 박힌 철제 책상을 뜯어내 옮기니까, 힘을 과시하는 거죠, 조선사가 두 손을 들며 ‘이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해요, 핵 포기죠. 해방 후 분단 거쳐 한국전쟁 후 냉전까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결과로 북한이 핵개발에 몰두한 30년, 그리고 최근의 미국과 중국의 대결, 이 3가지 측면이 한반도 정세에 작용하고 있는데. 3가지 상황을 쉽게 얘기하려다 보니 은유와 대유를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역 개그의 달인, 배우 전영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통역 개그의 달인, 배우 전영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통역 개그 역시 감독으로서 틈을 찾을 수밖에 없어요, 관객분들이 긴장 풀고 보시게 하려면요. 심각한 얘기 나오면 반드시 유머코드를 넣었어요. 영화에서 제일 어려운 이야기가, 북은 30년 동안 핵을 개발했는데 이제 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국 편인지 미국 편인지가 중요해진 시대가 온 거예요. 낙담의 상황이죠. 이 대목이 제일 아이러니하게 웃겨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고, 그 막중한 역할을 전영미 배우가 너무 잘해 주셨어요. ‘강철비’로 이정은 배우가 돋보였는데 전영미 배우, 연기에 대한 감을 갖고 있어요. 현장에서 립싱크만 한 거거든요, 후시녹음으로 완성했고요.”


현장에서 립싱크만 했다고? 설명을 듣다 보니, 영화가 다시 한번 보고 싶어졌다. 그 포복절도할 코미디가 립싱크였다니. 양우석 감독의 연출법은 대담하기 그지없다. 자막에 대한 선택도 그렇다. ‘강철비2’에는 영어나 중국어 대사뿐 아니라 북한말이 나올 때도 자막이 나온다. 덕분에 배우들은 맘 놓고 대사를 하고 관객은 북쪽 사투리가 잘 들리고 영화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다.


“호위총국장이나 북 위원장 대사가 잘 들리지만 일부러 다 넣은 건 북도 외국이다, 국가라는 걸 표현한 거죠. ‘통일하실 겁니까’ 묻잖아요. 예스(yes)로 답해도 노(no)로 대답해도 북한이 외국이어야 하는 거죠. 통일하려면 분단부터 해야 한다는 겁니다.”


"강철비2의 주인공은 한반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강철비2의 주인공은 한반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가 깊어져야 하는데, 휴전 상태가 오래되면서 역사적 기본 지식을 아는 이도 관심을 지닌 이도 적어져 가는 게 현실. 영화를 보면 왜 북-미, 북-중은 한반도 평화 문제를 놓고 만나는데 대한민국은 주체가 아닌지 그 이유에 앞서 그렇다는 사실부터 알게 된다.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이 세상에 나와야 했던 이유였고, 정우성-곽도원 배우가 다시 합류한 배경이기도 하다.


“정우성 배우가 그러더라고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나 곽도원이 아니라 ‘한반도’이다. 치기 어린 도전이라는 분들이 많았어요. 남과 북 주인공이 바뀌어도 돼? 죽은 사람 살려내도 돼? 주인공이 한반도라는 말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틸레인, 철우. 1편에서는 두 주인공의 이름이었는데 이번엔 없어진 건가 했더니 박정우의 동생 이름이 ‘철우’이다. 미카엘 하네케 역시 영화가 바뀌어도 여성 안느, 남성 게오르그 이름을 가진 인물이 곧잘 등장한다.


“철우는 재앙의 의미로 강철로 내리는 비(鐵雨)를 뜻하기도 하고, 북으로 간 강철 같은 친구(鐵友)를 뜻하기도 해요. 원래는 영화에 등장하는, 북상하는 태풍 이름을 ‘스틸레인’으로 하려고 했는데. 곽도원 배우의 제안이었어요, 동생 이름을 철우로 하는 건. 마침 박정우니까 우자 돌림도 되고. 도원 배우가 제안하기를 나한테는 재앙의 의미다, 동생이 죽고 나서 폭주한다, 내 동생을 철우로 하자. 도원 씨가 이런 아이디어들을 잘 내요, 저는 100% 수용하죠.”


정우성과 신정근 정우성과 신정근 '찰떡호흡'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철비’ 1편에서 배우 조우진을 발견했다면, 2편에서는 신정근의 재발견이 이뤄졌다. 관람의 재미를 위해 배역을 밝힌 순 없지만, 연기자 김용림을 기용한 것도 대담한데 신정드 카드 역시 뻔한 카드는 아니다. 신정근은 오랫동안 연극과 영화를 통해 담금질해 놓은 칼날을 기회가 오자 맘껏 휘둘렀다. 무뎌 보이지만 묵직해서 더 힘 있는 한날의 ‘도(刀)’이다.


“시나리오 쓸 때 보통 배우분들 생각지 않고 써요. 이번에는 특수 상황으로 정우성 배우, 곽도원 배우는 정해 놓고 썼지만요. 부함장이 물음표였어요. 미국 배우로 치자면 토미 리 존스를 생각했어요. 토미 같은 한국배우 몇 분 없어요. 드라마 쪽에서 코믹연기 많이 하셔서 우려도 있었지만, 연극을 봤었어요, 워낙 연기는 잘하시니까 걱정 안 했죠. 원칙주의가 반-인본주의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품성으로 잘 표현해 주셨어요. 조선사 캐릭터에 북한 인민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면, 잠수함 내 사병들의 소망이 압축된 캐릭터가 신정근 배우가 연기한 장기석입니다.”


다음엔 어디로 향하십니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다음엔 어디로 향하십니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우석 감독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영화의 정말 작은 부분까지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모두 그의 기획과 준비, 계산과 실행 아래 있다. 과거 ‘강철비’가 그랬듯, 분명 차기작 구상도 이미 준비 중일 터.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보면 대외적으로 남북문제, 북핵 문제가 중요하죠. 대내적으로는 저출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어릴 적만 해도 1년에 100만, 120만명이 출생했는데 지금은 30만명이 안 돼요. 한 세대 만에 4분의 1로 줄었어요. 근본적으로 가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건데, 가족의 핵심이 ‘아기다’에서 ‘나다’로 바뀐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과 애정, 아이는 누가 키워야 하지?의 문제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아이한테 어른은 우주죠, 어느 순간까지는 우주입니다. 어른으로서 해야만 할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늦깎이 데뷔를 했다고 가능한 일일까. 그의 나이 이제 52세. 우리나라 대내, 대외의 핵심 문제를 고민하고 해법을 찾으려 애쓰고 그것을 이야기로 쓰고 영화로 만드는 양우석 감독. 위정자가 아니면서도 ‘위관객’의 마음이 ‘위민’에 이르는 좋은 어른, 깊은 장맛에 어울리는 뚝배기 같은 감독의 차기작을 벌써 기다린다. 우선은 판타지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할 진실을 전하고 진리를 찾아가는 ‘강철비2: 정상회담’부터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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