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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올드무비④] 정우성은 몇 살까지 멜로가 가능할까, ‘호우시절’

    [데일리안] 입력 2020.07.19 17:18
    수정 2020.08.09 19:25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진위-판시네마 코로나19 극복 특별전 마련

‘호우시절’ ‘울지마 톤즈2’ 등 6편 14개 극장 상영

서른일곱, 사랑을 표현하기 좋은 시절 ‘정우성과의 재회’

'멜로의 진심' 배우 정우성 ⓒ NEW 제공

지난 2008년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좋은 놈’을 연기한 정우성을 보며 뿌듯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에게도 말달리며 장총 쏘고 밧줄 타고 날아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있다, 기럭지(긴 정도, 충청도 방언)도 유연함도 할리우드 카우보이 못지않다,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중국배우 고원원과 호연한, 평범하면서도 가슴 저린 일상멜로 ‘호우시절’을 보며 외국인과의 사랑도 이토록 자연스럽게 보이는 정우성이구나 감탄했다. 벌써 11년 전이다. 호우시절(好雨時節)은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뜻으로,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구절이다. 제목처럼 서른일곱의 정우성, 사랑을 알고 표현하기에 좋은 때라는 생각을 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침체한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고 판씨네마가 마련한 특별기획전을 통해 재개봉하는 6편의 영화를 보니 ‘호우시절’이 포함돼 있다. ‘울지마 톤즈2: 슈크란 바바’, ‘비행’, ‘바람의 언덕’, ‘울프콜’, ‘라라랜드’, 모두 다시 보면 좋을 영화들이다. 장마철이라 ‘호우시절’에 유독 눈이 갔을까. 22일부터 전국 14개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배우 정우성은 언제까지 멜로연기가 가능할까.


'호우시절' 속 정우성과 고원원 ⓒ NEW 제공

자신의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을 그냥 두는 배우, 사진에 보여도 보정을 원치 않는 남자. 늙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늙고 있는 정우성인 만큼 ‘언제까지나’라고 전망하고 싶다. 세월이 흘러도, 여린 심성에서 오는 그 촉촉한 눈빛만 여전하다면 환영이다. 외모만이 아니잖은가. 대중 앞에 보여온 인간 정우성의 사랑 모습도 ‘그레이 로맨스’(황혼의 사랑) 기대를 품게 한다. 한 여자와 오래 교제했고 대중 앞에 당당히 밝혔고, 오랜만에 찾아오다가 금세 마침표가 찍혔던 사랑 앞에서도 그는 솔직했다.


‘호우시절’을 개봉했던 당시가 떠오른다. 고원원 배우가 내한해서 함께 기자들을 만났다. 정우성은 감수성 터지는 멜로연기에 대한 극찬 속에 그 비결을 묻자 고원원에게 공을 돌렸다. “너무 예쁘지 않나요. 이런 상대를 만났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노력할 것 없이 감정이 절로 샘솟았어요”, “세밀한 감성연기가 대단한 배우예요. 내게 오는 그 감정에 대해 저는 리액션을 했을 뿐입니다”.


고원원에 대한 극찬만이 아니었다. 생수병 하나, 의자 하나까지 눈길과 손길로 상대배우를 챙겼다. 멜로 호흡을 맞춘 선남선녀, 스캔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행동에 대해 묻자 정우성은 의외의 답을 내놓았는데, 아량이 느껴졌다. “한국에 와 준 손님이잖아요. 손님 대접을 잘하는 게 집주인의 도리죠.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고원원 배우가 받아도 상관없어요”, “둘이 사귀는 거 아냐? 소리가 나온다는 건 연기가 좋았다는 것이고 영화에 고개가 끄덕여지셨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스캔들 나면 제가 영광이죠”.


좋은 비를 때를 맞춰 온다, 호우시절 ⓒ NEW 제공좋은 비를 때를 맞춰 온다, 호우시절 ⓒ NEW 제공

건설회사 팀장 박동하(정우성 분)는 중국 출장 첫날, 관광가이드로 일하는 메이(고원원 분)와 조우한다. 미국 유학 시절 친구였던 두 사람의 재회. 키스도 했었고,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 주었다는 동하, 키스는커녕 자전거를 탈 줄도 모른다는 메이. 같은 시간에 대한 다른 기억을 가진 두 사람은 청춘의 한때를 함께했던 힘으로 금세 가까워진다.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동하, 이대로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 귀국을 하루 늦춘 동하는 메이와 소중한 하루를 만든다. 이제는 메이도 부인할 수 없는 첫 데이트, 첫 키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두 사람. 놓쳐버린 첫사랑을 이번엔 잡을 수 있을까? 호우시절, 이번엔 때를 맞춰 찾아온 사랑일까.


맑은 눈을 가진 고원원과 정우성이어서 그런 걸까. 30대 배우가 빚어내는 첫사랑의 느낌이 20대 연기자가 그려내는 첫사랑 이상으로 풋풋하고 가슴 설렌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손길, 그를 따라 좁혀지는 마음의 거리. 허진호 감독은 배우들의 눈짓 하나, 몸짓 하나에 우리를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멜로맛집 허진호의 명작, ‘호우시절’. 촉촉한 비와 함께 마음을 따뜻이 데우는 영화를 보기 좋은 시절이다. 좋은 영화는 때를 맞춰 온다, 2009년에 못 봤다면 이번엔 놓치지 말자.


'호우시절'의 감독 허진호(맨왼쪽) ⓒ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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