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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2020] 최악의 흑역사로 남게 될 준연동형비례제…힘 받는 비례폐지론

    [데일리안] 입력 2020.03.27 16:05
    수정 2020.03.28 11:47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비례제 도입부터 의도 불순, 권력사유물 전략

긍정적 측면 있지만, ‘시혜적’ 한계 여전

연비제 도입은 최악의 흑역사 기록할 듯

"연비제 폐지 수순, 새로운 제도 모색할 때"

연동형비례제 도입으로 4.15 총선 투표지는 역대 가장 길 것으로 예상된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연동형비례제 도입으로 4.15 총선 투표지는 역대 가장 길 것으로 예상된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과거 전국구(全國區) 의원이라는 명칭이 있었다. 지역구 의원의 대비되는 전국을 선거구로 하는 의미였다. 각 지역의 정당소속 후보자들이 얻은 득표수를 합산해 정당에 배분되는 구조였다. 상위 순번을 받은 후보들은 피 말리는 지역선거를 뛰지 않고도 손쉽게 배지를 달 수 있었다. 국민이 직접 뽑는 후보자가 아닌 권력자가 국회의원을 지명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다보니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권력자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됐다. 인물중심 정당이 주류였던 야권은 상위 순번을 매개로 공공연하게 ‘공천헌금’을 챙겼다. 돈으로 산 국회의원이라는 뜻에서 전국구(錢國區)라고도 불렸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물·계파 중심 정치에서 벗어나 분야별 전문가들의 진입 창구라는 명분으로 생명력을 유지했다.


전국구 제도가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은 16대와 17대 국회부터다. 명칭을 ‘비례대표’로 바꿨고, 여성할당제가 처음 도입돼 정치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이뤄졌다. 각 정당이 발탁한 참신한 정치신인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다. 또 17대 국회부터 1인2표제가 실시되면서 소수정당들이 원내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과 비교해 ‘국민 대표성’이 약했고, 정당의 공천이 곧 배지라는 인식 탓에 ‘시혜적’ 자리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그러다보니 국회에서 발언권도 약했고, 소속 정당에 쓴 소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서울의 한 지역구 의원은 사석에서 “우리는 필드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는 사람들”이라며 “지역에서 유권자를 만나 표를 끌어올 자신이 없으니까 비례에 연연해 당 지도부 주위를 배회하는 것”이라고 폄하했었다.


이에 비례대표를 이예 폐지하자는 주장도 없지 않았다. 전문성을 갖춘 지역구 의원이 늘어나면서 외부에서 전문가를 모셔와야할 필요성이 줄었고, 여성·청년 등 정치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각 정당의 지역구 공천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오히려 1회용 비례대표 보다 지역구 정치인으로 육성하는 게 진정성 있는 조치라는 이유도 있었다.


무엇보다 20대 국회에서는 비례대표 의원들의 당적 문제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비례대표는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지만 제명을 당하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당이 제명을 해주지 않자 적을 두고 다른 당에서 ‘당직’까지 맡아 활동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급기야 바른미래당 비례의원 8명이 ‘셀프제명’을 하고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았지만 법원의 취소 판결로 난장판이 됐었다.


적지 않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소수정당 배려 및 사표방지라는 대의명분은 비례대표 제도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민생당과 정의당 등 소수정당들은 더 많은 비례대표를 얻기 위해 민주당과 고위공직자비위수사처 설치와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맞바꾸는 거래에 응했다.


결과는 비례대표 선거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를 쓰게 될 전망이다. 소수정당 배려라는 취지는 사라지고 지역구는 물론이고 비례대표까지 거대양당이 휩쓸어갈 공산이 크다. 여성·청년 등 정치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급조된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공모·심사·투표 과정을 3일 만에 끝내는 번갯불 공천이 진행됐으며, 민생당은 후보등록 마감일인 27일까지도 순번을 확정 못하고 뒤바뀌는 등 혼란이 계속됐다.


연동형비례제를 밀어붙였던 정의당은 후회막급이다. 전날 광주를 방문한 심상정 대표는 “혼란과 염려를 드리게 된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다”며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해왔던 사람으로서 위성정당 출현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망가진 연비제의 폐지와 새로운 제도 모색은 불가피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63년 비례대표가 처음 도입됐을 때 의도가 순수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공천과정에서 총재들의 사유물이 돼 정치자금의 루트가 됐다”며 “최근에 와서는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다가 이번 연동형비례대표제로 그 취지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이나 정치적 약자의 대표성이나 비례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뒤틀리고 왜곡된 비례대표제는 안 된다”며 “현재의 연동형비례대표제는 100% 폐지해야 하고, 정치적 약자나 비례성을 보완할 것인지 아니면 병립형 같은 다른 형태의 비례대표제로 갈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할 시점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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