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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광주형 일자리, 싫으면 깨끗하게 접어라


입력 2020.04.03 11:34 수정 2020.04.03 13:16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車 생산설비 이미 공급과잉..코로나19 사태 여파 수출악화로 더욱 심화

광주형 일자리 최대 수혜자는 근로자...좌초시 최대 피해자도 근로자

산업 측면 불필요한 잉여시설...노동계 반발시 전면 백지화가 해답

2018년 12월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김종훈 민주당 의원과 금속노조 현대·기아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이 '광주형 일자리' 일방 추진 중단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018년 12월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김종훈 민주당 의원과 금속노조 현대·기아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이 '광주형 일자리' 일방 추진 중단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전세계 자동차 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감염 확산을 우려한 각국의 조치에 따른 가동차질은 물론, 소비심리 악화로 수요 측면에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가동차질이 문제가 됐지만 지금은 수요 측면에서 타격이 더 크다. 완성차 5사는 3월 수출에서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고, 앞으로 얼마나 더 물량이 줄어들지 가늠하기 힘들다.


당초 2월 가동중단에 따른 생산차질을 만회하기 위해 특별연장근로를 고려했던 현대자동차는 수출 물량 감소로 계획을 철회했고, 특근 부활 관련 협의를 진행하던 기아자동차 노사도 협의를 중단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재고가 쌓여 인위적으로 가동률을 낮춰야 할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노동계의 참여 중단 및 협약 파기 선언으로 좌초 위기에 놓였다.


그동안 노사상생형 일자리 구축이라는 선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산업적 측면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있는 공장도 멈춰야 할 판에 새로운 공장을 지어놓고 생산할 물량을 달라고 아우성치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광주형 일자리 파기 선언에 앞서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원하청 상생 방안, 노사 상생, 사회통합 일자리 협의회 구성, 지난해 1월 31일 체결한 투자협약서 공개 등을 요구했다.


명목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요구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얘기가 다르다. ‘노사 상생’에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고 ‘원하청 상생 방안’에는 하청기업과의 연대임금제도를 도입하라는 요구가 들어있다.


근로자에게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조사에게는 경쟁력 있는 생산비용을 제공한다는 원래의 취지와 달리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고, 협력사 근로자들의 임금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상 초유의 ‘괴물기업’을 탄생시키려 하는 것이다.


노동계가 심각하게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산업적 요구보다는 고용확대 측면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것은 근로자들이지 기업이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공급과잉 상태다. 2년 전 한국GM이 일감이 없어 군산공장을 폐쇄한 마당에 공장을 더 짓는다고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광주형 일자리가 좌초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도 근로자들이다. 2대 주주로 참여한 현대차로서는 글로벌 수요가 악화된 상황에서 광주형 일자리 좌초가 오히려 생산물량 배정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호재다.


광주형 일자리를 강하게 밀어붙인 광주시장과,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노동계가 그걸 빌미로 협박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광주시장이 노동계의 모든 요구를 수용한다면 비용경쟁력이 크게 악화돼 그곳에 물량을 위탁할 자동차기업은 없을 것이다. 깡통 공장에 근로자들을 앉혀 놓고 놀게 하며 월급을 줄 만큼 광주시의 예산이 풍족한 건 아니다.


혹여나 일단 광주형 일자리가 출범하면 정부와 지자체에서 민간 기업들을 동원해 강제로 물량을 배정할 것이라는 착각은 말아야 한다. 그건 북쪽으로 수백km 떨어진 곳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광주에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싶으면 경쟁력 있는 생산비용을 노동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싫으면 깨끗하게 접으면 된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자동차 공장은 남아돈다. 굳이 불필요한 잉여설비를 지어 논란의 화근을 만들 필요는 없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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