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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보다 젯밥?'…은행 규제 완화 실효성 논란 가중


입력 2020.04.02 05:00 수정 2020.04.01 22:14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100% 넘는 은행 외화 LCR…하한선 70% 하향 '무용론'

'실질적 효과 無' 생색내기 정책 비판…명분만 챙긴 정부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이 3월 26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차관은 은행들에 대한 외환 건전성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뉴시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이 3월 26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차관은 은행들에 대한 외환 건전성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로 인한 금융 시장의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국내 은행들을 상대로 내놓은 외화 건전성 규제 완화를 둘러싸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외환 유동성 관리에 숨통을 틔워 주는 방안이란 입장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은행들 사이에서는 무용론이 나오는 실정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실질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규제 완화를 통해 정부가 은행들을 돕고 있다는 명분만 얻으려 한다는 지적마저 제기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다음 달 말까지 은행들에 적용되는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하한선을 현행 80%에서 70%로 한시 조정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외환 유동성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은행들이 겪을 수 있는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목적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금융기관 건전성 제고를 위해 다소 엄격하게 규율해 온 규제를 잠시나마 유연하게 운용하는 대응안을 적극 검토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기업과 금융사들이 외화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공급 체계를 구축해 시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외화 LCR 기준선 하향은 외화 운용에 있어 은행들에게 좀 더 여유를 주겠다는 취지다. 외화 LCR은 은행의 외화 건전성을 평가할 때 쓰는 대표적인 지표다. 기준 시점으로부터 향후 1개월 동안 벌어질 수 있는 외화 순유출 규모와 비교해 현금이나 지급준비금, 고신용채권 등 유동성이 높은 외화 자산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금융시장에 제대로 유동성이 공급될 수 있도록 은행들을 둘러싼 규제의 끈을 잠시라도 풀어줘야 한다는 지적에 따른 행보로 풀이된다. 코로나19 확산 장기화하로 달러를 중심으로 갑작스레 외환 수요가 불어나면서,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이 이를 제 때 소화할 수 있도록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왔다.


문제는 정부의 조치로 은행들이 체감할 수 있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주요 은행들의 외화 LCR이 규제 하한선을 크게 웃돌고 있어서다. 어차피 현재 외화 LCR이 빡빡하지 않은 건전성 지표인 만큼, 은행들이 현실적으로 도움을 느낄 만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신한·KB국민·우리·하나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들의 지난해 말 기준 외화 LCR은 평균 120.8%에 이른다. 기존 규제의 마지노선보다도 40%포인트 이상 여유 있는 수치다. 은행별로 봐도 ▲하나은행 152.0% ▲신한은행 110.5% ▲우리은행 110.5% ▲국민은행 110.0% 등으로 모두 세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석 달에 불과한 규제 완화 기간도 정부 계획에 비관적인 평가가 제기되는 이유 중 하나다. 수치만 놓고 보면 은행이 정부 방안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외화 LCR이 적어도 두 자릿수 대로 떨어질 만큼 외환 유출을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한시 적용되는 규제 시점 상 3개월 뒤에는 이를 다시 원래 수준으로 복구해야 한다. 은행들로서는 안고 가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큰 방안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이런 구조와 현상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생색내기용 정책으로 잠시 불만을 무마해 보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부도 금융권을 위한 규제 완화에 동참하고 있다는 메시지 이외에 다른 의도를 찾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아울러 은행들이 제대로 된 외화 조달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는 미봉책 성격의 대안보다, 근본적으로 외환 공급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최근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사이에 맺어진 통화스와프 한도를 확대하는데 정부가 외교적 역량을 집중해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은은 지난 달 미 연준과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을 발표했다. 통화스와프는 양국 중앙은행이 서로에게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내주고 언제든지 상대방의 외화를 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통화스와프를 맺은 국가는 계약 환율에 따라 자국 통화를 상대방의 통화와 교환하고, 일정 기간 후 최초 계약 때 정한 환율에 따라 원금을 재교환 할 수 있게 된다. 계약 규모에 따라 우리나라로서는 원화를 주고 그만큼의 달러를 받아올 수 있게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화 LCR 비율을 낮춘다고 해도 적용 기간이 워낙 짧아 이로 인해 은행들의 외화 운용이 바뀔 소지는 적다고 본다"며 "그보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국가에 속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외화 공급에 대한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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