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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發 노조추천이사제 파장에 금융권 '긴장'


입력 2020.01.31 06:00 수정 2020.01.30 22:28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낙하산 논란' 노사 갈등 해소 협상 카드로 급부상

부작용 우려 여전한데…靑 나서서 힘 실을까 촉각

김형선(왼쪽) IBK기업은행 노조위원장과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이 27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 사무실에서 노사 공동선언에 합의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IBK기업은행 노동조합 김형선(왼쪽) IBK기업은행 노조위원장과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이 27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 사무실에서 노사 공동선언에 합의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IBK기업은행 노동조합

IBK기업은행장을 둘러싼 갈등의 실마리로 노조추천이사제가 급부상하면서 금융권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윤종원 신임 행장에 대해 낙하산이라는 비난을 이어가던 기업은행 노동조합이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전제로 무력시위를 접으면서다. 아직 국내 금융사에서 시행된 사례가 없는 노조추천이사제가 현실화할 경우 노조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될 수 있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청와대가 제도 추진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31일 기업은행에 따르면 윤 행장은 지난 29일 서울 을지로 본점에서 공식 취임식을 치르고 본격 업무에 돌입했다. 지난 3일 신임 행장에 임명되고도 노조의 저지에 막혀 사무실 출근이 불발된 지 27일 만의 일이다. 이로써 윤 행장은 과거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이 기록했던 14일(2013년 7월 22일~8월 4일)을 넘어 출근 무산 최장 기간 기록을 다시 쓰게 됐다.


이전까지 기업은행 노조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출신인 윤 행장이 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해 왔다. 기업은행은 정부가 최대주주인 국책 은행으로, 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윤 행장 임명을 두고 극한 대립을 벌이던 기업은행 노사는 여당이 나서 유감의 뜻을 전한 것을 계기로 손을 맞잡았다. 기업은행 노조는 줄곧 윤 행장이 아닌 청와대·여당과 만나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내왔다. 과거 금융권 낙하산 인사 방지를 약속해 왔던 여당이 나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지난 2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업은행) 노사가 양보해 합의안을 마련하고 업무를 정상화하기로 했다"며 "한국노총과 우리 당은 낙하산 근절 및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로 정책협약을 체결한 바 있는데, 기업은행장 임명 과정에서 소통과 협의가 부족해 이런 합의가 안 지켜졌다는 지적에 대해 민주당을 대표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기업은행장 논란 해소에 금융권 전체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여당의 유화적 제스처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설 연휴 내내 계속된 윤 행장과 노조와의 협상 과정에서 제시된 협의 내용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를 통해 채택된 기업은행 노사 공동 선언문에는 ▲노조추천이사제 추진 ▲직무급제 도입 반대 ▲정규직 전환 직원에 대한 예산 확보 ▲희망퇴직 문제 해결 등이 담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내용은 노조추천이사제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말 그대로 노조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이사회의 사외이사로 참여시키는 방식을 일컫는 표현이다. 아울러 이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전 단계로 평가된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 인사가 사외이사를 넘어 직접 등기이사로서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해 사업계획과 예산, 정관 개정 등 경영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기업은행의 노조추천이사제 시행 시도에 금융권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우선 기업의 경영에 있어 노조의 입김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어서다. 이를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앞장서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가시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평이다.


금융권에서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노동추천이사제가 실시된 전례가 없다는 점도 상징성을 갖는 대목이다. 기업은행에서는 지난해 3월에도 노조추천이사제가 추진됐다가 상급 기관장인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국민은행에서도 2017년부터 세 차례나 노조가 추천 인사를 제시했지만 두 차례는 주총 표대결에서, 한 차례는 자격 미달로 낙마한 바 있다. 최근 수출입은행에서도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했지만 끝내 선임이 무산됐다.


이와 더불어 노동이사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단 점도 기업은행의 행보에 한층 눈길이 가는 배경이다. 노조는 물론 청와대 출신인 윤 행장 입장에서도 노동추천이사제를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여서다. 청와대로서는 노조와의 갈등도 풀고 공약도 지키는 모양새가 되면서 일석이조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노동이사제나 노조추천이사제에 대한 부작용 우려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금융사들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노조의 반대로 차질이 생길까 염려한다. 특히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노사 관계가 경직돼 있는 우리나라의 환경을 고려하면 노동이사제가 역효과를 낼 공산이 더 크다는 판단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책은행은 기업은행에서 이슈가 부각된 데다 청와대도 이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이전보다 노동추천이사제가 실현될 공산이 커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이미 은행법과 금융회사지배구조법 등 금융사 경영에 대한 견제 장치가 충분히 마련돼 있음에도, 굳이 노조가 추천한 이사가 필요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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