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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금융당국 샅바싸움, 곤혹스런 우리금융


입력 2020.01.13 07:00 수정 2020.01.13 10:37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DLF 제재심 앞둔 금감원, 손태승 회장 '연임 불가' 중징계 예고

"손 회장 지지" 금융위 메시지에 갈등 재조명…금융사는 눈치만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거취를 두고 벌이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샅바싸움 양상에 우리금융의 곤혹스러움이 커지고 있다.ⓒ뉴시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거취를 두고 벌이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샅바싸움 양상에 우리금융의 곤혹스러움이 커지고 있다.ⓒ뉴시스


"아무 말 안 하는 게 낫겠습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거취를 두고 벌이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샅바싸움 양상을 어떻게 바라보냐는 질문에 우리은행 본부 부서 관계자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이 같이 답했다. 두 곳 모두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우리금융의 곤혹스러움을 한 마디로 압축한 우문현답이었다.


손 회장의 거취를 두고 양대 금융당국 기관이 대립각을 세우게 된 발단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투자자 손실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두고 금감원은 손 회장을 상대로 문책적 경고 이상의 중징계 방침을 통보해둔 상태다. 최종 판단은 이번 달 16일에 열리는 금감원 DLF 제재심의위원회를 통해 내려질 예정이다.


문제는 손 회장이 이런 수위의 징계를 받게 되면 원칙적으로 연임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취임 당시부터 그 누구보다 소비자 보호를 강하게 외쳐 온 윤석헌 금감원장의 성향을 감안하면 일견 당연해 보이는 조치다. 윤 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도 "소비자 보호에 경영진 책임을 명확히 하겠다"며 못을 박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


그런데 금감원 제재심에 앞서 우리금융이 사실상 손 회장의 연임을 결정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우리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손 회장의 임기가 공식 종료되는 오는 3월 이전에 경영 상 불확실성을 없애겠다는 명문을 앞세워 손 회장을 차기 최고경영자로 단독 추천했다. 그러면서 금감원의 DLF 제재와 관련해 "중징계 사안이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는 사실상 금융위가 뒤에서 힘을 실어줬기에 가능했던 행보로 풀이된다. 금융위는 통상 예금보험공사를 통로로 활용해 우리금융에 메시지를 전달해 왔는데, 최근 이사회에서 예보가 손 회장의 연임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예보는 우리금융의 최대주주임과 동시에 금융위 산하기관이다. 우리금융 위에 예보가 있고, 다시 그 위에 금융위가 자리하는 구조다. 금융위가 손 회장의 연임이 탐탁치 못했다면 얼마든지 의견을 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금융위가 손 회장의 지원군이 된 데에는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다. 금융위는 손 회장 연임 시 그의 다음 임기가 막바지에 다다르는 2022년까지 우리금융 잔여지분을 모두 팔아 공적자금을 회수한다는 계획을 지난해 발표했다. 우리금융의 주가가 오를수록 금융위 입장에서는 헐값 매각 부담을 덜 수 있다. 금융위로서는 굳이 나서 우리금융의 경영권을 흔들며 논란을 만들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에 손 회장도 화답에 나섰다. 손 회장은 올해 시장이 열리자마자 우리금융 주식 5000주를 더 사들이며 우리금융 주가 부양의 전면에 나섰다.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은 통상 책임 경영의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이자, 기업 가치에 대한 신뢰를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이다. 이로써 손 회장이 보유하게 된 우리금융 주식만 6만8127주에 이르게 됐다.


이제 속이 타는 쪽은 금감원이다. 금융위와 우리금융이 손발을 맞추는 모습 가운데 손 회장을 상대로 한 징계 카드를 손에 쥔 금감원으로는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예고대로 중징계를 강행할 경우 금융위와의 알력 관계가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고, 반대로 한 수 접고 들어가자니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이 서질 않는다.


금융위와 오래도록 마찰을 빚어온 경험은 금감원의 부담을 더욱 키우는 대목이다. 지난해만 돌아봐도 6월에는 자본시장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특별사법경찰관, 이른바 특사경이 사실상 사문화된데 대해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둘의 관계가 다시 부각됐다. 금융위가 금감원의 권한 확대를 꺼려하는 탓에 그 동안 금융위원장이 특사경을 추천하지 않아 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같은 해 1월에는 금감원이 금융사에 대한 종합검사를 부활시킨데 대해 금융위가 우려를 표명하며, 금융사의 부담을 완화할 방안을 내라고 요구하면서 갈등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두 기관이 이렇게 서로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그 만큼 조직의 독립성이 보장돼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끔은 파워 게임을 벌이며 힘의 균형을 다시 조정할 필요도 있다.


안타까운 현실은 이런 줄다리기가 벌어질 때마다 해당 사안과 관련된 특정 금융사들이 이들의 전쟁터가 돼 왔다는데 있다. 그 누구에게도 감히 대들 수 없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고래 싸움에 낀 새우 격이다. 이번에는 우리금융과 손 회장이 이 소용돌이에 휘말린 모양새다.


이제 며칠 뒤면 금감원의 제재심이 열린다. 누구보다 우리금융에게 중요한 하루가 되겠지만, 다른 금융사들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자신들도 언제든 새우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본질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금융위는 금융 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 금감원은 금융 감독 전문 기구로서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 그만이다. 금감원이 어떤 솔로몬의 지혜를 내놓을지 기대해 본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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