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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발도 못들인 靑 낙하산 행장… 기업은행 내홍 격화


입력 2020.01.03 09:53 수정 2020.01.03 10:33        부광우 기자

"독선·독단" 노조 극심한 반발에도 윤종원 전 경제수석 내정

10년 내부 승진 전통 깨져…"정부 논공행상 자리 전락" 비판

"독선·독단" 노조 극심한 반발에도 윤종원 전 경제수석 내정
10년 내부 승진 전통 깨져…"정부 논공행상 자리 전락" 비판


신임 IBK기업은행장에 임명된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3일 오전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으로 출근했지만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며 출근 저지 투쟁을 펼치는 노동조합에 막혀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뉴시스 신임 IBK기업은행장에 임명된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3일 오전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으로 출근했지만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며 출근 저지 투쟁을 펼치는 노동조합에 막혀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IBK기업은행장에 끝내 청와대 출신인 윤종원 전 경제수석을 앉히기로 하면서 낙하산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노조가 예고했던 대로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윤 수석은 첫 출근 날 자신의 사무실에 발도 들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청와대가 10년 동안 이어져 오던 기업은행장의 내부 승진의 전통을 깨면서 내홍을 자초한 모양새가 된 가운데 결국 국책 금융기관장이 정부 인사의 논공행상을 위한 자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3일 기업은행에 따르면 제 26대 신임 기업은행장에 윤종원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취임한다. 기업은행은 정부가 최대주주인 국책 은행으로, 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에 기업은행 노조는 투쟁 모드로 돌입하며 정부를 향해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이번 행장 인사를 앞두고 기업은행 노조는 ▲관료 배제 ▲절차 투명성 ▲기업은행 전문성 등 3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이런 원칙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물리적 행동에 나서겠다는 예고한 바 있다.

윤 전 수석의 행장 임명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기업은행 노조는 성명을 내고 "끝내 청와대의 낙하산을 새 기업은행장으로 임명했다"며 "아무런 설명도 없는 독선이고 독단"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와 청와대, 대통령은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인정했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그를 새 행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이미 지난 달 결의대회에서 낙하산 행장 임명 강행 시 출근저지 투쟁 및 총파업도 불사하기로 의결했고, 이제 행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날 오전 기업은행 노조는 서울 을지로 본점 정문과 후문을 모두 막고 윤 신임 행장의 첫 출근을 막으며 격렬히 반대했다. 이에 윤 신임 행장은 끝내 본점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다. 이 자리에서 윤 신임 행장은 "앞으로 노조의 얘기를 들어보겠다"면서도 "함량미달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당초 기업은행장 인사는 늦어도 지난해 안에는 이뤄질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노조를 중심으로 낙하산 논란이 제기되면서 인선이 차일피일 미뤄지다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청와대는 2010년 조준희 전 행장부터 얼마 전 임기를 마친 김도진 전 행장에 이르기까지 최근 세 번 연속으로 기업은행 수장으로 내부 인사를 발탁해 왔다.

불씨는 한 달여 전부터 붙기 시작했다. 지난 달 초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기업은행장으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말이 돌면서다. 그러자 기업은행 노조는 반 전 수석이 금융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인사라고 강력 비판하며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달 9일 김형선 노조위원장을 시작으로 청와대 앞 광장에서 1인 시위에 들어갔다.

그러자 반 수석 대신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윤 전 수석이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국제통화기금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 특명전권대사 등을 역임한 만큼 반 수석보다 경제·금융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청와대의 판단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기업은행 노조는 윤 전 수석 역시 또 다른 낙하산 인사라며 거세게 반발해 왔다. 그리고 끝내 윤 전 수석의 행장 임명이 강행되면서 기업은행은 당분간 혼란에 휩싸이게 됐다. 지난 달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2013년 당시 민주당은 관료 출신 기업은행장을 반대하며 관치는 독극물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침묵하거나 동조하고 있다"며 "3연속 내부 행장을 통해 성장일로를 걷는 기업은행에 낙하산을 고집하는 현 집권세력의 자기모순을 규탄한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내부 여론은 이제 기업은행을 넘어 정부 여당과 청와대로 향하는 모양새다. 이번 정권이 출범하기 오래 전부터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 모두 노동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과거를 감안하면, 이번 노동계의 반발은 현 정부에 남다른 부담 요인일 수밖에 없다.

같은 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허권 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함량미달 낙하산 인사는 촛불민심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청와대가 낙하산 인사를 강행한다면 금융노조는 출근저지뿐만 아니라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지지를 철회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내부 출신 행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온 지난 10여년 동안 기업은행은 외형으로나 실속으로나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왔다"며 "굳이 청와대 인사를 밀어 넣을 필요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사전 조율 없이 무리를 한 것 같다"고 평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애초에 기업은행 내부 인물에 대해서는 인사 검증조차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로 윤 전 수석 등 관료 출신을 임명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안다"며 "결과적으로 전 청와대 인사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국책 은행장 직을 내줬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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