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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선거법, 문제는 ③] '2중대'에 호부호형을 허하노라?

  • [데일리안] 입력 2019.11.11 03:00
  • 수정 2019.11.11 05:47
  • 정도원 기자

오랫동안 '음지'에 머물렀던 '2중대' 위성정당

선거법 바뀌면 공공연한 선거전략으로 양성화

오랫동안 '음지'에 머물렀던 '2중대' 위성정당
선거법 바뀌면 공공연한 선거전략으로 양성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7월, 당대표로 선출된 직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을 방문해 이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7월, 당대표로 선출된 직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을 방문해 이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간 우리 정치권에서 '2중대'라는 말은 진지한 언명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공격의 수단이었다.

유신 시절에 주야야여(晝野夜與·낮엔 야당 밤엔 여당)하던 정치인을 가리키던 '왕사쿠라''사쿠라'라는 표현부터, 5공 때의 본부중대 민정당·2중대 민한당·3중대 국민당, 2000년 국회를 파행시킨 김용갑 자유한국당 전 의원의 "새천년민주당은 조선노동당 2중대" 발언까지 '2중대'라는 말은 정치적 모욕에 가까웠다.

이처럼 오랫동안 정치적 음지에 있었던 '2중대'가 드디어 양지로 나설 기회를 얻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워져 내달 본회의에 부의될 예정인 공직선거법 개정안 덕분이다. 선거법 개정안에 따르면, '2중대'는 전면적으로 양성화될 뿐만 아니라 선거전략상 적극 권장될 전망이다.

선거법 개정안에 따르면, 지역구에서 국민들로부터 많은 의석을 얻은 정당은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얻은 표가 모두 사표가 된다. 지역구에서 100석을 얻은 A당이 정당득표율 30%에 그쳤다면 비례대표 후보자는 원칙적으로 전원 낙선한다.

문제는 정당득표 30%라는 게 '그쳤다'라는 말을 쓸 정도로 작은 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대 총선 기준으로 정당득표 30%는 733만 표에 상당하다. A당에서 비례대표 의석이 나오길 바라며 국민이 찍은 소중한 수백만 표가 단지 그 정당이 지역구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표로 만들어버리는 제도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민의를 사표로 만들 수 없으니 정치공학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실은 카드뉴스에서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서 효용을 극대화하려 한다"며 "정치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념이나 지역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선거전략을 채택하고 (유권자들은) 투표행위를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A당의 선거전략가들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다가, 자기 정당을 찍은 733만 표의 일부라도 위성정당에 몰아줘 사표를 살릴 수 있다면, 특히 이 위성정당은 지역구 경쟁력이 전혀 없는 정당이라 정당득표가 고스란히 의석으로 환원된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지역구 후보 사랑받으면 수백만 표 사표될 판
위성정당 거느려 쪼개갖는 게 의석 훨씬 이득


A당이 위성정당 a당에 정당득표 절반을 떼줘 20%씩 나눠가졌다면 A당의 의석은 103석으로 줄어드나 a당이 비례대표 33석을 얻어 합계는 136석으로 늘어난다. 40% 정당득표를 혼자 받았을 때는 A당의 비례대표가 25석이었으나, 당을 하나 더 동원하는 정치공학의 결과 전체 파이가 36석으로 늘어난 것이다.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실 제공A당이 위성정당 a당에 정당득표 절반을 떼줘 20%씩 나눠가졌다면 A당의 의석은 103석으로 줄어드나 a당이 비례대표 33석을 얻어 합계는 136석으로 늘어난다. 40% 정당득표를 혼자 받았을 때는 A당의 비례대표가 25석이었으나, 당을 하나 더 동원하는 정치공학의 결과 전체 파이가 36석으로 늘어난 것이다.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실 제공

A당이 선거운동기간을 전후해 '지역구는 A당, 정당투표는 A-1당'이라는 지속적인 캠페인으로 유권자를 설득해 자기 정당이 얻었던 30%의 정당득표 중 20%를 위성정당 A-1당에 몰아줬다면, A당은 지역구 그대로 100석, A-1당은 300석의 20%(정당득표율)에 연동률 절반이 적용돼 30석을 획득한다.

A당의 입장에서는 100석으로 끝나고 733만 표가 사표가 될 것을, 이 중에 300만여 표를 살려내 위성정당(A-1당)과 합쳐 130석이 되고, 어엿한 원내교섭단체마저 거느리게 됐으니 든든하게 됐다.

유민봉 의원실은 "지역구 의석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정당은 비례대표에 집중할 정당과의 연대를 고려하게 될 것"이라며 "유권자 입장에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의원 수를 많게 하기 위해서 지역대표 인물과 비례대표 정당을 분리해서 투표하는 게 유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실제의 선거에서는 위성정당을 통해 의석을 늘린다는 것은 총 의원 정수가 300석으로 고정된 상황에서 결국 남의 의석을 빼앗아오는 '제로섬 게임'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상대 정당도 동일한 전술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 서로 2중대·3중대 전술을 펼쳐놓는 목불인견의 꼴이 벌어지게 된다.

A당이 지역구 100석에 정당득표 40%로 125석, B당이 지역구 85석에 정당득표 35%로 108석, C당이 지역구 25석에 정당득표 15%로 41석, D당이 지역구 13석에 정당득표 6%로 18석, E당이 지역구 2석에 정당득표 4%로 8석을 차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A당이 위성정당 A-1당을 동원하면 전체 의석이 뒤바뀐다.

A당이 위성정당 A-1당에 정당득표 절반을 떼줘 20%씩 나눠가졌다면 A당의 의석은 103석으로 줄어드나 A-1당이 비례대표 33석을 얻어 합계는 136석으로 늘어난다. 40% 정당득표를 혼자 받았을 때는 A당의 비례대표가 25석이었으나, 당을 하나 더 동원하는 정치공학의 결과 전체 파이가 36석으로 늘어난 것이다.

당연히 이 의석은 다른 정당의 몫으로부터 나왔다. 최대 경쟁 정당인 B당의 의석은 7석이 줄어 101석이 됐으며, C당·D당도 각각 의석이 3석·1석씩 줄었다.

'2중대' 30% 득표로 비례 절반 이상 휩쓸 수도
잘 키운 '2중대' 하나에 부러울 것 없는 선거판


비례대표 정수가 75석인데 30%의 정당득표율로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46석을 비례대표 정수가 75석인데 30%의 정당득표율로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46석을 '싹쓸이'하는 과대대표의 결과, B당은 '2중대' b당과 합해 131석을 얻는다. 지역구에서 최다 당선자를 내고 정당투표에서도 최다 득표를 한 A당(111석)을 20석이나 압도하는 결과다.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실 제공

B당이 비례대표 전문 '2중대' 정당 B-1당을 동원하면 또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평소부터 전략투표에 익숙한 B당 지지자들이 B당에 갈 35%의 정당투표 중 대부분인 30%를 B-1당에 몰아준다고 하면, 정작 B당은 지역구 85석 외에 비례대표에서는 1석도 얻지 못하지만 B-1당이 30%의 정당득표율로 나머지 6개 정당을 압도하는 비례대표 46석을 휩쓸게 된다.

비례대표 정수가 75석인데 30%의 정당득표율로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46석을 '싹쓸이'하는 과대대표의 결과, B당은 '2중대' b당과 합해 131석을 얻는다. 지역구에서 최다 당선자를 내고 정당투표에서도 최다 득표를 한 A당(111석)을 20석이나 압도하는 결과다. A당은 B당의 2중대 전술에 따라 의석 14석을 잃어 최대 피해자로 전락했다.

이렇게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결국 A당과 B당 모두 '2중대'를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이 시점에서 이미 선거는 '진흙탕 국면'인 셈이다.

A당은 위성정당 A-1당, B당은 '2중대' B-1당을 동원해 C·D·E당과 함께 외견상 7개 정당이 참여하는 총선을 가정하면 A당은 지역구 100석, A-1당은 정당득표 20%를 떼받아 24석 교섭단체가 된다. B당은 지역구 85석, B-1당은 정당득표 30%를 넘겨받아 36석이 된다.

A당은 위성정당을 동원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선방한 결과다. 111석으로 줄어들 위기였던 의석을 A-1당과 합쳐 124석으로 방어해냈다. A 와 A-1 이란 두 정당의 연합은 124석, B 와 B-1 두 정당의 연대는 121석이며, C·D·E당은 각각 8석·2석·2석씩 의석이 감소한다.

서로 '2중대' 동원해 상대 의석 빼앗는 진흙탕
위장분당·선거연대…눈뜨고 못 볼 꼴 펼쳐진다


결국 A당과 B당 모두 결국 A당과 B당 모두 '2중대'를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이 시점에서 이미 선거는 '진흙탕 국면'인 셈이다.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실 제공

특정 정당이 자신의 '2중대' 정당에게 정당투표를 하라고 종용하는 선거캠페인이 가능할지, 또 유권자들은 그에 따라 전략적 투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 정당사에 선례가 있다. 1985년 2·12 총선에서 '김영삼의 아성'이라 불리던 부산에서는 한 지역구에서 두 명의 의원이 당선되는 중선거구제 하에서 의석을 나눠갖고 민정당을 3위로 밀어내기 위해 '아빠는 신민당, 엄마는 민한당'이라는 기이한 슬로건으로 선거운동기간을 일관했다.

그 결과 부산은 6개 지역구 12석에서 신민당이 6석(6개 지역구 전원 당선), 민한당 2석, 국민당 1석을 얻었으며, 민정당은 명색 집권여당이 3개 지역구에서 3등으로 내몰리는 수모를 겪으며 3명의 지역구 의원만 당선되는데 그쳤다.

전략투표를 하기 어려운 '1인 1표'에서도, 선거 슬로건에 따라 부부가 표를 쪼개 투표할 정도로 유권자가 성숙한데, 하물며 '1인 2표'에서의 전략투표·분리투표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2중대'가 드디어 오랜 음지 생활에서 벗어나 양지에서 당당하게 돌아다닐 일만 남은 셈이다.

유민봉 의원실은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치권은 정당 쪼개기·위장 분당·선거 연대 등 각종 '꼼수'를 동원해 합종연횡·이합집산을 이어나갈 것이 분명하다"며 "당초 취지였던 비례성 제고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국민에게 혼란만 주는 선거법 개악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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